순식간에 식어버린 ‘뜨거웠던’ 감자
순식간에 식어버린 ‘뜨거웠던’ 감자
  • 안형진 기자
  • 승인 2010.08.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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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형연봉제·임금피크제 실탄 ‘불발’…지방선거 후폭풍?
한숨 돌린 공공부문 노동계…현장의 불씨는 남았다
[현장] 성과형연봉제 도입 논란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2008년부터 시작된 공공기관 ‘선진화’ 폭풍이 2010년 들어 잦아든 모양새다. 현 정부가 출범한 뒤 줄곧 정부가 추진하는 선진화 정책을 둘러싸고 공공기관 노·사간 갈등 상황이 이어져온 것을 감안하면 현재는 다소 ‘소강상태’인 셈이다.

지난해까지 지속된 갈등 속에도 공기업 선진화는 ‘강단있게’ 추진됐다. 공공기관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1만9천여 명의 정원을 감축했고, 267개 기관이 대졸 초임을 삭감했으며 금융공기업은 5%의 임금을 삭감했다. 몇몇 민주노총 산하 공공기관 노조의 경우 단협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에 이어 단체협약 해지 사태가 속출했다.

이렇듯 정부의 선진화 정책에 속절없이 밀리던 공공부문 노동계는 지난해 말부터 2010년 정부가 내놓을 선진화 ‘카드’로 ‘성과형연봉제의 전면 도입’과 ‘임금피크제 도입’을 지목하고 밀렸던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6월 30일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기획재정부는 “성과연봉제는 간부직에 한해 도입한다”며 급작스럽게 한 발짝 물러섰다.

‘성과형 연봉제 도입을 총력으로 막아내겠다’고 공언하며 분위기를 만들어가던 공공부문 노동계 역시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올해 공공부문의 가장 뜨거웠던 감자는 그렇게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차일피일 미루던 ‘표준안’의 정체는?

공공기관의 성과형연봉제 도입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08년 12월 19일 발표됐던 제4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공공기관 효율성 향상 방안으로 ‘연봉제, 임금피크제 등 경쟁·성과 중심 운영시스템 도입’이 언급된 뒤다. 기획재정부는 “전 기관에 연봉제·임금피크제 도입을 유도하겠다”며 “연봉제 표준모델, 임금피크제 표준모델을 추후 별도 제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말했던 ‘추후’는 이후 1년 반 동안 오지 않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 해 말부터 공공부문 노동계에는 기획재정부가 연봉제 표준모델·임금피크제 표준모델을 완성해 놓고 발표할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다는 소문만 파다했다. 원래 기획재정부가 내놓으려 했던 ‘표준안’의 정확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지만 그간 언급된 내용을 통해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지난 3월 9일 기획재정부와 공공기관 정책연구센터가 개최한 ‘공공기관 선진화 우수사례 워크숍’에서는 성과형연봉제를 도입한 한국수자원공사의 예가 비중있게 다뤄졌다. 지난해 12월 29일 노사가 합의한 수자원공사의 연봉제는 ▲ 기존 2급 이상의 간부직에 적용됐던 연봉제를 전 직원에게로 확대 ▲ 호봉테이블 폐지, 직급별 상·하한제 운영 ▲ 총연봉 차등폭을 현행 8%에서 20%로 확대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연봉제 표준안이 곧 발표될 것이라는 예상이 팽배했던 시기에 발표된 ‘우수사례’인 만큼 본래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려 했던 표준안 역시 이와 유사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임금피크제 표준안 역시 올해 7월부터 선택형 정년연장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한국전력의 사례를 통해 예상해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전력 노사는 기존에 58세였던 정년을 조합원이 선택적으로 60세까지 늘릴 수 있으며, 정년을 연장한 조합원은 기존 임금의 80% 수준의 임금을 유지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이 정년연장의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정년연장이 청년층의 취업을 막는다는 윤증현 장관의 발언도 이때 나왔다. 적어도 한국전력의 정년연장은 정부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패가 안 좋은거야? 뻥카야?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최종적으로 내놓은 카드는 당초 포부에 비해 초라했다. 지난 6월 30일 열렸던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의결된 ‘김빠진’ 결과는 성과형 연봉제는 간부직을 대상으로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임금피크제 표준안은 발표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공공연맹 관계자는 “각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공공기관의 ‘간부직’으로 일컬어지는 1급, 2급 직원 대부분은 연봉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 공공부문 노조가 3급까지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일단 한숨 돌린 상황이 된 셈이다.

지방 선거 바로 전까지만 해도 공공부문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성과형연봉제·임금피크제 표준안을 내놓고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 등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대부분 시각이 여당의 압승을 점치고 있었다는 점도 지방선거 이후 표준안이 발표되리라는 전망에 힘을 싣고 있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 노동계는 바쁘게 움직였다.

한국노총 공공연맹과 금융노조,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은 연대전선을 정비하기 시작했으며, 4월 새롭게 출범한 공기업연맹도 공기업노조들이 참가하는 정책포럼을 개최해 정부표준안에 대응할 방안을 활발히 논의했다.

그런데 막상 지방선거의 뚜껑이 열리자 상황은 급속히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지방선거 이후 발표될 것이라 예상됐던 표준안의 행방은 다시금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심지어 기획재정부는 지난 6월 6일, “6월 23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표준안이 발표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가자 “현재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및 임금피크제 도입방안에 대해서 내부 검토 중으로 확정된 바 없으며, 공공기관 운영위원회 개최시기도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곧바로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이른바 ‘신의 직장’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던 정부가 이처럼 꼬리를 내리게 된 것은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패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국공기업노동조합연맹 전형석 정책실장은 “여당이 6·2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원인 중 하나로 공공기관이나 공무원 사회의 반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목하지 않았나 싶다”며 “단기적으로 한꺼번에 밀어붙이면 향후 재보선이나 장기적으로 정권 재창출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에 반해 기획재정부 이준균 과장은 “내부적인 논의 과정까지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성과연봉제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성과 평가 시스템이 도입돼야 하는데 전 직원까지 연봉제를 도입시키기에는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의 성과평가 시스템이 구비되지 않아 현장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는 당초 노동계가 성과형연봉제 시행이 불가하다며 펼쳤던 논리 중 하나다.

공은 현장으로 넘어갔다

일단 정부가 한 발 빼는 분위기지만 현장에서의 고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 이상무)산하 사회연대연금지부(지부장 홍성대)와 국민연금공단 사측은 성과형연봉제 도입을 두고 기획재정부가 언급했던 ‘간부직’의 범주를 어디까지 설정하느냐를 두고 노사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간부직’에 대해 사회연대연금지부 박내선 정책실장은 “자신의 특정 업무영역 없이 하나의 사업을 총괄하는 직위로 2급 직원까지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반면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조직 내에서 직원을 통솔하는 직위가 가능한 직급으로 3급이 포함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논란이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면 향후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악재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대부분 공공기관 노조가 3급 직원들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역시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가 정년연장 자체에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어 원칙적으로 임금하락이 없는 정년연장을 주장하고 있는 공공부문 노동계와는 입장이 다르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갈등양상이 표출된 예는 없지만 향후 정년연장을 이슈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려는 공공기관은 난항이 예상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다시 밀려올 ‘개혁’의 파고, 과제는 남았다

공공부문 노동계가 삽시간에 ‘조용’해질 만큼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 후퇴했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6월 30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의결을 통해 하반기부터 성과연봉제 권고의 주요 내용을 경영평가의 주요 지표로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상태다.

이에 대해 공공연맹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 공공기관 이사장이 ‘낙하산인사’로 임명되는 경우가 많아 정부 정책에서 한 발 더 나가 성과를 내고 싶어 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영진이 앞서 설명한 국민연금공단과 같이 보수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향후 진통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는 공공부문노동계가 감당해야 할 단기적 과제다.

한편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공기업 개혁 이슈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인지는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장기적 과제다. 이번 이슈에서 정부가 한 발짝 물러선 것은 공공부문 노동계의 역량이라기보다 지방선거 등 외부 요인이 크다는 평가가 많다는 사실은 공공부문 노동계가 반성해 봐야 할 지점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공기업 개혁 이슈가 다시 수면위로 부상한다면 노동계가 다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란 반증이다.

무엇보다 공기업 개혁 정책이 국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부문 노동계가 가진 ‘아킬레스건’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한 일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대통령 취임 후 가장 잘한 일로 ‘공기업 등 공공부문 개혁 추진’을 꼽았다. 정부 출범 1년에 맞춰 실시된 조사에서도 공공부문 개혁은 부동의 1위였다. 결국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정부의 ‘개혁’에 반발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철밥통 지키기’로 인식될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공부문 노동계는 대국민 인식 제고를 위해 ‘공공기관의 민영화=공공요금 상승’ 외의 별다른 의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공공서비스 질의 저하를 불러온다는 주장 또한 노조 스스로 공공서비스 질 향상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대국민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다시 다가올 공기업 개혁의 파고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 여론을 공공부문 노동계의 쪽으로 끌어올 다양한 의제 개발과 실천이 수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