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면 일터 지킬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일터 지킬 수 있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0.08.0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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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노조 박한배 위원장이 제시하는 매각 대응 6원칙
[Special Report] ④ 한국항공우주노동조합 박한배 위원장이 말하는 매각 대처법

▲ 한국항공우주노동조합 박한배 위원장 ⓒ 참여와혁신 포토DB

경남 사천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KAI)는 국내 유일의 완성 항공기 제조업체로 국제적으로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보잉과 에어버스의 기체 조립과 아파치 헬기의 동체 조립, F-15K의 날개 등을 제작해서 납품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은 설계부터 제작까지 맡았다.

국내 항공기 제조 기술의 현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KAI는 항공산업 분야가 아닌 매각과 관련한 각종 뉴스에 단골로 등장해 왔다. 이는 KAI의 탄생 배경에서 출발한다. KAI는 1999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 항공분야를 통합해 출범한 회사다. 당시 외환위기의 여파로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의 철도차량 분야를 합친 한국철도차량(현 로템)과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KAI의 지분 구조는 독특하다. 산업은행이 27.9%를 갖고 있고 통합 전 기업들을 이어받은 삼성테크윈, 현대자동차, 두산인프라코어가 각각 20.5%를 보유 중인데 민간기업들은 경영권이 제한돼 있다. KAI가 논란에 휩싸인 것인 정부가 산업은행 지분 매각을 통해 민영화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이다.

지난해에는 대한항공 인수설이 나왔다가 무위로 그친 바 있고, 최근에는 에어버스의 모회사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KAI노동조합 박한배 위원장은 KAI 매각 논란이 있을 때마다 성공적으로 대처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박한배 위원장으로부터 매각에 대응하는 노동조합의 자세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갖춰라

KAI는 매각 논란이 있을 때마다 언론, 지역 주민 및 기관, 국회의원까지 ‘우군’이 많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매각의 문제점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박한배 위원장은 “항공산업 분야의 개발도상국들이 대부분 국가가 항공기 제조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 항공산업의 현재와 발전 전망,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고용 문제 등에 대한 설득력 있는 데이터를 항상 제시한다”고 밝혔다. 누가 보더라도 수긍할 수 있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동조자를 모으기 쉽다는 것이다.

전 구성원을 동참시켜라

지난해 매각 반대 투쟁 과정에는 KAI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했다.
팀장급의 회사 중견 간부들은 물론이고 임원들까지 알게 모르게 참여한 것이다. 박한배 위원장은 이 부분을 특히 강조한다. “기업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조합원은 전체 종업원의 2/3 수준”이라며 “이들을 모두 동참시킬 때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회사의 중견 간부나 임원들의 전문지식과 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든든한 우군이 될 수 있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지 못하더라도 심정적인 동조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박 위원장은 회사 임원 및 간부들과 수시로 만나 의견을 듣는다.

MOU 체결 전에 나서라

일반적으로 매각이 진행될 때는 채권단이나 최대주주가 인수의향을 가진 기업과 MOU(양해각서)를 체결한다. 매각 대응은 MOU 체결 전에 해야 한다는 것이 박 위원장의 주장이다. “MOU가 체결된 후 실사를 나오는 시점이면 사실상 ‘게임 끝’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그 전에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매각 초기에 있는 기업의 경우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여론과 언론을 움직여라

박한배 위원장은 지금까지 뉴스에 모두 30차례 정도 등장해 인터뷰를 했다. 주로 지역 뉴스인 경우가 많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꾸준히 KAI 매각의 문제점을 알릴 수 있었다. 박 위원장은 또 20여 명이 넘는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단위 노조 차원에서 힘들 때는 상급단체의 도움을 얻어 그들을 만나고 설득했다. 이는 큰 힘이 된다.

지역과 일상적으로 교류하라

KAI를 지켜낸 버팀목 중 하나는 지역 주민들이었다. 시민단체는 물론 이·통장협의회, 시청, 그리고 경찰서, 소방서까지 힘을 보탰다. 사천지역 전체가 KAI노동조합과 함께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 위원장은 “지역 주민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 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필요할 때 부르는 대상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교류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KAI노동조합은 체육관을 빌려 시민 대상 대규모 문화행사를 갖기도 하고, 또 시민단체의 일상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원칙을 분명히 하라

매각과 관련한 노동조합의 입장은 정부 지분 유지이다. 하지만 이것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박 위원장은 “정부가 지분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팔겠다고 하면 막지 않겠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그러려면 제대로 된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이 제시한 원칙은 ▲ 조합원 생존권 보장 ▲ 근로조건 유지 ▲ 투자할 능력이 있는 회사 ▲ 글로벌 마케팅 능력이 있는 회사였다. 박 위원장은 “KAI를 지속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원칙”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