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콜은 10년 후에도‘명품’일 수 있을까
애니콜은 10년 후에도‘명품’일 수 있을까
  • 연사숙 한국경제 기자
  • 승인 2005.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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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명수’ 동화제약 ‘애니콜’ 삼성전자의 공통분모를 찾아라
100년 전통도, 현재 최고 명성도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8월 31일 서울세관에서는 진품과 모조품을 구별해 내기 위한 ‘가짜진짜 상품 전시회’를 열었다. 육안으로는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핸드백과 구두, 수입양주, 골프채 등이 부스에 일렬로 전시돼 있었다.
관세청이 이같은 전시회를 처음 연 것은 2002년. 젊은층의 명품에 대한 무분별한 선호현상이 급증하면서 이러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전시회가 열리고 나면 이른바 짝퉁 상품은 보다 더 명품과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명품 같은 짝퉁은 육안으로 구별하기 조차 어려울 만큼 잘 만들면서 진짜 명품은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이러한 모조품의 문제는 비단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유통되는 핸드백 가운데 가장 모조품이 많은 것은 루이 뷔통이다. 루이 뷔통은 1854년 자신의 가게를 연 이후 자신의 가방의 모조품이 유행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빨간 스트라이프 무늬나 격자무늬 등을 고안했다.

1896년 그의 아들인 조르주 뷔통도 모조품 성행을 막기 위해 모노그램 캔버스를 개발해 그의 아버지 이름의 첫 글자인 L과 V에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경향의 꽃과 별무늬를 결합한 디자인으로 선보였다. 당시 모노그램 캔버스는 루이 뷔통을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자리 잡았고 세계 최초로 제품에 회사마크를 도입한 사례였다. 이렇게 모조품을 따돌리기 위한 가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50년이 지난 지금 이른바 짝퉁과 진품은 계속 상존하고 있다.

루이 뷔통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렇게 명품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회사의 제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그 제품을 통해 보다 나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값비싼 진품을 가질 수 없는 한계가 있기에 모조품 시장규모가 커지고 있다.

홍콩, 중국 등과 함께 대한민국도 그 반열에 올라있고 모조품시장에서는 홍콩산이나 중국산 보다는 한국산이 가장 정교하게 잘 만든다고 인정받고 있다. 심지어 동대문에서 산 모조품 지갑을 뉴욕에 있는 매장에서 교환했다는 경험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니 국내에서 핸드백을 만드는 기업주가 들으면 대성통곡할 일이 아닌가.

모조품이라도 갖고 싶은 루이 뷔통을 만든 배경은 무엇일까. 루이 뷔통의 마케팅 전략을 살펴보면 답이 있다. 소품종 소량생산, 고가전략, 철저한 품질관리, 전통의 브랜드 이미지 이 네 가지를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최고급 가죽을 선정해 장인들이 직접 손으로 가죽을 자르고 바늘로 꿰맨 후 8번의 품질검사 과정을 거친다. 루이 뷔통에는 총 7가지 디자인 라인이 있다. 이 가운데 루이 뷔통 디자인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창업자인 루이 뷔통이 만든 모노그램과 그의 아들이 고안한 모노그램 캔버스이다. 이 두 가지 디자인을 바탕으로 색상과 소재를 바꿔가며 루이 뷔통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비단 대한민국의 젊은이만이 명품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출장차 파리에 갔다가 프랑스인 친구가 있어 잠깐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만나자마자 그 친구는 ‘애니콜’ 얘기부터 꺼내며 파리에 있는 20대 젊은이들 사이에 애니콜이 가장 갖고 싶은 휴대폰이라 했다.

파리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는 그 친구는 MP3와 휴대폰 등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의 전자제품을 예전에는 그저 싼 맛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 애니콜은 비싸도 사고 싶은 휴대폰이란 것이었다. 그야말로 젊은 파리지앵의 새로운 부의 상징으로 애니콜이 자리 잡았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삼성이라는 기업이 더 이상 대한민국의 기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새로운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애니콜

애니콜의 이러한 성공신화의 배경은 10년 전 삼성전자의 구미사업장에 걸려있던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는 현수막이 말해준다. 당시 구미사업장에서는 “시중에 나간 제품을 모조리 회수해 공장 사람들이 전부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라”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전 생산라인을 세우고 500억원대의 ‘애니콜 화형식’을 거행했다. 10년 뒤 먹거리로 생각했던 휴대폰사업이 생각만큼 진행되지 않고 불량품이 쏟아지자 내린 이 회장의 특단 조치였다.

이후 애니콜의 성공신화를 만든 이기태 사장은 세계 각지를 누비며 당시로서는 일천한 원천기술을 찾았고 한편으로는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공장 라인을 세우는 ‘라인 스톱제’가 도입됐다. 문제가 있으면 하루든 한달이든 해결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손을 놓고 그 일에 매달리는 것이다. 지금은 모든 휴대폰 공장에서 이러한 라인 스톱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당시 24시간 가동하는 공장을 멈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이는 결국 시장 수요를 맞추지 못해 기업의 신뢰가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최고경영자의 결단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노력은 지금의 애니콜이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평균 200달러를 호가하는 고가 휴대폰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5년 뒤, 50년 뒤 애니콜의 명성이 유지될 것인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삼성 임직원들은 오늘도 뛰고 있지만 아직은 물음표이다. 지난 5월 국내 한 경제연구원이 조사한 결과 국내기업의 평균 나이는 23.9세이다. 유럽과 일본의 경우는 우리 기업보다 더 짧은 13년에 불과하다.
또 다른 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1965년 국내 100대 기업에 속했던 곳 가운데 지난 95년까지 여전히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15곳에 불과했고, 그나마 은행권의 인수합병으로 2개 기업은 사라졌다.

1982년 톰 피터스의 ‘초우량기업의 조건’은 당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지만 놀라운 것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책에 소개됐던 초우량기업 가운데 6개 기업만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100년 이상 기업이 살아 숨쉰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 가운데 하나일까?

대한민국 최장수기업 동화약품의 위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은 한국인이 578년 일본 오사카에 설립한 건설회사 콩고구미(金剛組)로 무려 1428세이다. 일본 쇼토쿠 태자의 초청으로 백제에서 건너간 목수 유중광이 시텐노지라는 절을 지으면서 설립된 이 회사는 일본 전역의 절과 성을 건축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을 맡고 있다. 1995년 일본 고베시를 강타한 대지진 때 무너지지 않은 건물이 바로 세계 최고 장수기업 콩고구미가 지은 대웅전이였다.

국내의 기업역사라고 해봐야 구한말 이후 100여 년이지만 꽤 오랜 세월을 견뎌온 장수기업이 있다. 국내 상장기업 1호로 109세의 나이를 자랑하는 동화약품은 1897년 당시 궁중 선전관이던 민병호 선생이 궁중비방에 서양의학을 혼합시켜 국내 최초의 양약인 활명수를 만들면서 창업한 회사이다. 1962년 현재의 이름으로 상호를 바꿨다.

활명수와 후시딘 등으로 한때 매출액 업계순위 5위까지 올랐던 동화약품이었지만 의약분업 이후 고속성장을 한 다른 제약회사와는 달리 위기를 맞게 된다. 주력품목인 일반의약품의 매출부진과 해외신약 도입의 외면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문제점으로 부각됐다.

결국 동화약품은 지난 3월 윤희준 경희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가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위기의 기로에서 새로운 CEO는 그 어느 때보다 세간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윤광열 동화제약 회장의 장남인 윤 부회장은 취임사에서 “100년을 넘겨온 장수기업으로 다시 한번 새로운 100년을 약속하는 변혁기를 맞고 있다. 개선과 혁신을 추구해 나갈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변화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경영계는 대한민국 최장수기업으로서 위기를 겪고 재기를 준비하고 있는 그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좋은 조직을 위대한 조직으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조건’ 의 저자인 짐 콜린스는 그의 비즈니스 경험과 학문적 연구 등을 통해 2001년 10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또 한권의 책을 냈다. ‘Good to Great’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어떻게 사느냐에 논점이 맞춰져 있다. 좋은 조직을 위대한 조직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핵심을 찾는 것이다.

짐 콜린스는 이 책에서 위대한 조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성공하리라는 확신과 동시에 냉혹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규율을 갖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 최고, 경제엔진, 당신이 열정을 가진 일이라는 공통분모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결국 원칙을 고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혁신을 시도하는 것. 그리고 기업의 생존 자체보다는 인류발전에 기여하는 업적이 있는지 냉철하게 판단하고 이 원칙을 고수하는 기업들은 날로 가속도가 붙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돌아가 보자. 루이 뷔통은 150년 이상 패션계에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목공소집 아들로 태어나 파리 귀족들의 짐을 구김 없이 꾸려주는 일을 하다 여행용 가방으로 첫 출발한 루이 뷔통은 경영이론은 공부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짐 콜린스가 말한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혁신을 시도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장에서 제작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 한편으로 자존심 강한 프랑스 기업에서 1997년 뉴욕출신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수석디자이너로 영입하는 등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며 클래식을 바탕으로 한 세련미로 세계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결국 루이 뷔통의 장인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IT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휴대폰은 더 이상 전화를 걸고 받는 기능이 아니다. ‘내 손 안의 PC’ ‘손 안의 TV’ 라는 광고 카피가 말해주 듯 IT는 컨버전스(융합)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결국 애니콜이 모조품이라도 갖고 싶은 명품으로 계속되기 위해서는 휴대폰 하나하나도 중요하지만 ‘애니콜’이라는 브랜드가치를 높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포춘지는 창간 75주년 기념 특집호에서 삼성전자의 블루 블랙폰Ⅱ 탄생의 전 과정을 깊이 있게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디자인 기간만 1년이 걸렸지만 조립시간은 단 8초에 불과하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며 전세계 1000만명 이상의 손에 쥐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유력 경제전문지가 한국의 휴대폰에 6개월 취재를 투자할 만큼 애니콜이 명품반열에 올라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도 법석을 떨만한 일은 아닌 것이 1957년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지금 생존기업이 3분의 1도 안된다는 점을 상기해 봐야 한다.

장수기업의 비결에는 왕도가 없다

그렇다면 장수기업과 최고의 기업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많은 경영학자들은 장수기업들 사이에 구체적인 실행차원의 공통점은 발견하기 힘들다고 한다. 한마디로 장수기업의 비결에 왕도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포기한 그룹 계열화가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이라는 형태로 성공했다. 재벌은 영어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해외 언론들은 결국 ‘Chae-bol’이라는 한국어 발음 그대로를 영어로 표기해 쓰고 있다. 또 선진국에서 통하는 경영전략이나 지배구조, 노사관계, 임금구조 등이 국내에 그대로 통용되지 않는 것을 봐서도 왕도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중에 “옛 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이라는 구절이 있다. 역사를 배우고 옛 것을 배움에 있어 옛 것이나 새 것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김장독에서 발전된 김치냉장고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 경영계에서 유행하는 ‘한우물 경영’이나 ‘블루오션 전략’도 이 ‘온고지신’이 그 내면에 깔려있는 경영기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0년 동안 오로지 손으로 가죽을 재단한 루이 뷔통의 수많은 노동자들. 반도체와 휴대폰을 양대 축으로 ‘세계속의 삼성’을 만든 사람들. 이들은 결코 책 속에서 답을 찾지 않았다.

IMF를 겪으며 우리 기업들은 한차례 몸살을 앓았다. 개방의 물결로 무한경쟁에 돌입하며 재벌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책임경영’ ‘윤리경영’ ‘상생’ ‘혁신’ 등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뇌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가기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1000년이 지나도 위대한 기업으로 그 기업의 제품을 갖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는 인식을 세계인의 머릿속에 심어주는 것은 과히 대단한 일이다. 100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1000년 후에도 모조품 시장은 여전히 생존해 있을 것이다.

‘한국형 모델’을 찾아라

장수기업의 왕도가 없다 하더라도 장수기업은 모조품을 진품처럼 만드는 기업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지만 이는 농담이나 광고 문구가 아니다. 세계 각국의 국가경쟁력순위를 발표하는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IT기술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인프라 순위에 대한민국을 2위로 꼽았다. 신기술을 시험하기 좋다는 것은 한국인이 그만큼 까다롭다는 뜻이다. 까다로운 한국인의 입맛을 만족시키며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휴대폰을 양대축으로 10여 년 만에 10배 이상의 가치를 일궈냈다. 10년 전 소니와 삼성의 관계는 흘러간 옛노래가 됐다.

또 다른 편에서는 평균 서른 살을 넘기지 못하는 세계 기업사에서 상장기업 1호로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갖고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동화제약이 있다. 세계 최고의 감별사들이 모인 대한민국. 어쩌면 이 두 기업의 공통분모를 찾아 ‘한국형 모델’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아닐까. 

_  연사숙 기자 (한국경제TV 산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