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건 열악할수록 만족도 높다?
노동조건 열악할수록 만족도 높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08.19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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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고용 실태조사 결과 역설적 현상 드러나
간접고용 노동자, ‘희망 없는 철새’ 전락

 

▲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간접고용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간접고용 철폐를 위한 운동방향 토론회'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네트워크, 민주노총 등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주최로 열렸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조건이 열악할수록 노동조건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역설적인 조사결과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주축이 된 간접고용 실태조사 연구팀은 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간접고용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노동조건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더 열악한 조건에 있을수록 만족도가 높고 보다 좋은 조건에 있는 노동자일수록 만족도가 낮은 역설적 현상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여 있는 중소영세기업에서 만족도가 높은 것은 현장이 하향평준화 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무의미해진 것을 반영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완성차공장 등 대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노동자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이 처한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이 높은 반면, 중소영세기업에 근무하는 간접고용노동자들은 노동조건에 있어서는 비교대상이 되는 정규직과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또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압도적으로 저임금을 가장 시급히 해결할 문제로 뽑고 있다”면서 “이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는 고용안정이 부차적인 문제가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연구팀의 조사결과, 조사대상 간접고용 노동자들 중에서 최근 5년 내에 이직을 경험한 경우가 60%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이에 대해 “중소영세기업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에 고용안정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것”이라며 “임금만 조금 높으면 바로 이직하는 ‘철새 노동자’ 신세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가 노동의 간접화를 통해 세계 최대의 회사를 만들고자 했지만, 최근 도요타 모델은 도요타 자체에서 지속 불가능한 체지임이 입증됐다”면서 “간접노동을 통해 만든 차는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고, 지나친 자본 중심의 구조조정은 반인간·반노동일 뿐만 아니라 자본 자체의 존재도 위험케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 5~6월 동안 구로, 평택, 인천, 구미, 파주지역과 현대차(울산, 아산, 전주공장), 기아차(소하리, 화성공장), GM대우(인천공장) 등 완성차공장, 인천공항 등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방식으로 실시했다. 회수된 설문지 중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답한 561부만을 분석대상으로 했다.

이번 실태조사가 전 산업과 전국에 걸쳐 진행된 것은 아니므로 조사결과를 전적으로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을수록 노동조건 개선이나 고용안정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다는 조사결과는 ‘희망 없는 노동자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간접고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간접고용으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또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전반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