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윤리는 자본주의의 희귀한 꽃인가
기업윤리는 자본주의의 희귀한 꽃인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0.09.0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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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오일뱅크 매각한 IPIC, 1조 9천억 투자이익…이익분배 가능할까?
외국자본 투자유치 이전에 사회 환원 구체적 방안 요구 마련해야
[현장]현대오일뱅크 경영권 이동 사태

ⓒ 현대오일뱅크노조

11년 만에 현대오일뱅크의 경영권이 현대가(家)로 되돌아갔다. 2009년 국제중재재판소는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가 보유한 현대오일뱅크 주식 전량을 주당 15,000원에 현대중공업에 매도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2010년 7월 서울중앙지법은 이를 재차 확인하고 가집행 판결을 내려 현대중공업은 현대오일뱅크의 경영권을 다시 가져오게 됐다. IMF 이후 경제위기의 파고에 눈물을 뿌리며 정유 계열사를 포기해야 했던 현대가는 3년여의 법정투쟁 끝에 현대오일뱅크를 다시 품에 안았던 것이다.


경영권은 다시 현대중공업으로

지난 1999년 12월, IPIC는 현대오일뱅크 지분 50%를 인수하면서 최대주주가 됐다. 이어서 2003년, 차후 지분 매각 시 현대중공업에 우선 매수권을 부여한다는 조건으로 나머지 지분 20%에 대한 콜옵션을 매입한다. 콜옵션이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다. 매입자는 해당 옵션을 매도한 사람에게 일정한 프리미엄을 미리 지불해야 하며, 이에 따라 옵션매입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경우이면 그 권리를 행사하여 이익을 누리고 아니면 권리행사를 포기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된다.

2006년 IPIC는 콜옵션을 행사해 총 70%의 지분(1억7,155만7,696주)을 확보했으며 현대오일뱅크의 경영이 호전됐음에도 배당금을 받아가는 대신 지분의 일부를 제3자에게 매각하려 시도했다. GS칼텍스, 호남석유화학, STX 등 4개사에서 입찰제안서를 제출한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측은 지분 매각 시 우선매수권 부여 조건을 내세워 이에 반발했고 국제중재재판소에 IPIC를 제소함으로써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결국 국제중재재판소는 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줬으나 IPIC 측은 국내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간을 끌었다.

사상 최대규모 이익, 액수에 비해 이익률은 그럭저럭

IPIC와 현대중공업간의 주식양도와 경영권이동 과정에서 화제가 됐던 것은 IPIC가 벌어들인 1조 9천억 원에 달하는 투자이익금 액수다. 이는 1999년부터 4차례에 걸친 배당금 2천억 원과 주식매각차익 1조 7천억 원을 합친 액수로 뉴브릿지캐피탈이 제일은행을 매각해 얻은 1조 1,500억 원을 넘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그러나 11년간 총 투자이익률은 232%로 전문가들은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수준의 이익률”이라고 평가한다. 금융경제연구소의 김명록 연구위원은 이번 경영권 이동에 대해 “제일은행이나 외환은행처럼 매각과정의 불법성이 다분히 존재하는 것과는 다르다”며 “부실의 위험을 동종 업계의 외국기업이 모두 떠안고 인수한 것이니 사후 높은 수익을 얻는 것은 시장의 논리상 당연한 과정”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현대오일뱅크는 2001년을 기준으로 누적 적자가 5천억 원에 달하는 등 부도위기설까지 나돌 정도로 경영상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오일뱅크노조 김태경 위원장 역시 “지분 매각 당시 회사의 위기 상황을 몸소 겪었던 만큼 232%의 이익률이 터무니없는 폭리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냉정히 판단하자면 경영을 정상화시킨 IPIC의 성과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의미다.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희생 감수한 노동자들에게도 수익배분 필요

전통적으로 노사화합을 강조했던 현대오일뱅크노조는 1999년 지분 매각 당시 경영 위기상태에 대해 회사와 위기의식을 공감하고 있었다. 구조조정이나 임금 동결과 같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노사 간 의견이 일치된 것이다.

1999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500여 명의 인력을 구조조정 했고, 회사는 분기별로 노사협의회와 경영설명회를 열어 경영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노조의 희생에 부응하려 노력했다. 이후 노조와 회사는 2002년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해 회사는 근로자의 고용안정에 최선을 다하고,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일방적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했으며 노조는 직원들에 대한 효율적인 인력활용과 생산성 향상 등 경영방침에 적극 협력한다는 것을 상호 약속한다.

▲ 현대오일뱅크 ‘비전 2012’ 포스터 

현대오일뱅크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시기였던 2008년 한 해를 제외하고 노사 간 희생과 협력의 산물로 2002년부터 매년 흑자를 기록했다. 또한 현대오일뱅크 노사는 ‘비전 2012년’라는 슬로건 아래 고도화 설비 증설과 영업 네트워크 효율 전략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IPIC의 지분매각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일각에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매각과 관련한 법정공방이 진행되면서 전임 대표이사를 제외한 여타 임원진들조차 과정에 대한 정보에서 배제돼 언론보도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거나 도리어 노조에 정보를 문의하는 경우까지 생기면서 조합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높아졌다.

노조는 지난 2009년부터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투기자본감시센터, 사설 노무법인을 통해 매각이 진행될 경우 이익분배와 관련한 법적 소송이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했다. 그러나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이 제3자로의 매각이 아닌 주주 간 주식이동에 관한 내용이었으므로 법적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김태경 위원장은 “IPIC의 이익금 환수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노조가 이익금 환수를 위해 강경 대응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며 “그보다는 당시 IPIC측과의 유일한 접촉 창구였던 전임 대표이사(서영태)와 노사협력 관계에 대한 일정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리적인 협상을 통해 최대한 성과를 가져오는 것이 노조의 전략이었다”고 밝혔다.

OB맥주 매각과는 사뭇 달랐던 상황

외투기업, 특히 사모펀드를 통한 M&A 과정에서 항상 등장하는 이익금 환수에 관한 문제는 매번 논란이 됐다. 노조의 파업 투쟁으로 매각 과정에서 외국 자본의 이익금 분배 문제를 해결했던 OB맥주 상황을 보자.

지난 2009년 미국계 사모펀드인 콜버그 크레비스 로버츠(KKR)는 안호이저부시(AB) 인베브와 주식양수도계약(SPA)을 맺고 OB맥주를 인수했다. 당시 OB맥주노조는 매각이 진행되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 양해각서(MOU) 체결 30일전 우선협상대상자와 인수조건 문서를 통보 △ 고용, 노동조합, 단협 승계를 명문화 △ 설비, 영업 재투자 약속 및 이행 명문화 △ 구조조정 요건 발생 시 합의 및 조기퇴직제도(ERP) 합의 시행 △ 위로금 지급 등과 같은 5대 조건을 사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OB맥주 노사 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노조는 파업을 단행했고 결국 사측이 비대위의 5대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합의를 이뤘다. 이로써 OB맥주 조합원들은 KKR로부터 1인당 1,600만 원의 위로금을 이익배분 받았다. 노조에서 매각 결사반대 투쟁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면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좋을 리 없으니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이익배분을 시행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외투기업이 제3자로 회사를 매각할 경우 노조의 강경 투쟁은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반면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법원 판결로 인해 한 주당 15,000원씩 강제집행이 결정된 상태였다. 다시 말해 매각과 매수 협상을 둘러싼 눈치싸움이 전혀 없었던 와중에 노조의 방해전략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소송이 언제 끝날지, 어느 쪽이 승소할지에 대해 불확실한 상황이었고, 서울중앙지법의 가집행 판결 이후 IPIC는 법적 분쟁이 장기화될 것을 언급하며 항소제기를 했다.

전임 대표이사는 항소제기 이후 법적 공방이 길어진다면 협상을 통해 노조와 IPIC 간의 중계역할을 하면서 이익분배를 위해 노력하기로 노조와 합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IPIC는 항소제기 중에 유일한 접촉창구이자 정보의 출처였던 전임 대표이사를 배제한 채 신속히 현대중공업과 협상을 마무리 지어 노조 측이 미처 대응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 현대오일뱅크노조

기업윤리 차원의 사회적 참여 방안 필요

김태경 위원장은 “그동안 파트너십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IPIC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며 “11년간 회사를 함께 이끌어온 ‘동반자’임을 생각하면 성과를 홀로 독식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지난 8월 16일, IPIC측 담당 상무이사인 알 쿠바이시에게 이메일을 통해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은 철학도 가치도 없다”라며 “투자이익에 대한 공정한 분배와 사회 환원”을 요구했다.

노조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기금을 조성하거나 향토 기업으로서 지역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준비해 IPIC가 노조의 요구안을 이행토록 다양한 루트를 통해 압박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IPIC측에서 노조의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법적 하자가 되는 부분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장하식 정책운영위원장은 “애초에 투자약속 이행이나 사회 환원 이행과 관련된 사항이 약속돼 있다면 정부 차원에서 감세나 보조금 등 특혜를 취소하거나 투자이익금에 대해 중과세를 부과하는 등의 대처가 가능하겠지만, 현재 투자이익이 합법적인 상황에선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나 지자체에서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할 때 위와 같은 사항이나 기업윤리적인 측면을 충분히 고려해 허가를 내줘야 한다”며 “반면 최근 현실은 일단 투자를 유치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후일을 대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금융경제연구소 김명록 연구위원도 “당시를 되짚어보면 현대그룹이 경영상 궁지에 몰려 장래성 있고 필요한 기업을 헐값에 매각하도록 정부가 방조했다는 점을 고려해봐야 한다”며 “유동성위기에 처한 기업이 자회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좀 더 높은 협상력을 갖도록 정부의 금융적 지원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내기업의 매각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세차익에 대한 조세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국가 간 조세협약을 개선해 국부 유출을 제한하는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IPIC가 외환은행을 매각했던 론스타나 앞에서 언급한 KKR처럼 ‘먹고 튀는’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동안의 이익에 대한 내부 구성원의 노력을 중시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통해 기업 윤리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지만 이를 제어할 방법은 윤리에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이 현재 현대오일뱅크노조나 지역사회가 답답해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