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아이에게 ‘하고 싶다’는 동기 만들어주는 방법
무기력한 아이에게 ‘하고 싶다’는 동기 만들어주는 방법
  •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 승인 200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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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 없는 말 한마디 “다 너를 위해서야” VS 쓸모 있는 말 한마디 “나 좀 도와줄래?”

위대한 예술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일 처음 그 예술에 빠져든 동기를 알고 나서 피식 웃게 됩니다. 그 동기란 것이, 옆집에 사는 여자 아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연주를 시작했다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모습이 너무 근사해서 자기도 따라하기 시작했거나 하는 사연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제 경우를 돌아봐도, 맨 처음 동기란 것은 다르지 않더군요. 산수를 잘 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그때 저는 알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시고 새로운 저녁 반찬을 만들어주면서 ‘네가 자랑스러워서’라고 말해주시는 걸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조금 더 열심히 산수 공부를 했으니까요.

교회를 다니면서 중고등부 회장을 맡았던 것도, 처음으로 돌아가서 가장 단순한 동기를 찾다보니, 제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여자 아이들 앞에서 나를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또래 남자애들 사이에서 믿음직하고 책임감있는 멋진 녀석으로 나를 보이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랬더군요.

부담을 주면 ‘시늉’만 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을 두고 교육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동기의 위기’입니다. 배가 고플 걱정도 없고, 공부를 하겠다면 부모가 원 없이 지원해주고, 다니고 싶은 학교에 보내줄 수도 있고, 필요하다고 하면 못 사줄 게 없는데, 내 아이를 보면 도대체가 뭐든지 하고 싶어 하는 자세가 보이질 않는다는 푸념이 점점 늘어납니다.

교사도 비슷한 말을 하지요. 온갖 정보를 분석해주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자재를 써서 학습 효과를 높이려고 하고, 틈나는 대로 상담도 하면서 길찾기 지도를 해주는데, 아이를 보면, 그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느껴진다고, 이렇게까지 학습 의욕이 없으면 교사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소용이 없다며 무기력을 호소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고 실제로 무엇이든 해주고 있는 부모와 교사들이 아이에게 하는 공통된 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건 다 너를 위해서야. 이걸 하면 넌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네가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무엇이든 해줄 수 있어” 하는 식의 이야기이지요. 얼핏 생각해보면, 부모나 교사가 이보다 더 멋지게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은 듣는 아이 입장에서는 전혀 멋진 말이 아니랍니다. 부담만 주는 말이 됩니다. 기껏해야 억지로, 부모나 교사가 날 위해 너무 애쓰는 걸 아니까,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체면 차리게 해주려고 ‘시늉’을 하게 됩니다. 이런 아이의 표정과 눈빛을 볼 때 그것이 자발적으로 생기 있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는 더욱더 센 강도로 같은 말을 아이에게 해주는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먼저 부모가 멋져 보여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말했지만, 학습과 성장의 동기란 것은, 한마디로 내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는 일입니다. 아이가 부모와 교사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본은 내가 ‘사랑 받는다는 기분’입니다. 이것이 되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보기에 부모와 교사가 멋져 보여야 합니다. 근사해 보여야 한다는 말이지요. 닮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부모와 교사는 묻겠지요. 그게 뭐냐고. 아이와 눈높이 한다고, 아이가 원하는 것 다 해주는 건 아닐 겁니다. 본질만 말한다면, 그건 부모와 교사가 자신의 현재 삶과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즐기고 있다는 분위기와 이미지입니다. 그때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아우라가 퍼져나가고, 아이는 그것에 매료되고 좋은 자극을 받게 되지요.

이런 상태가 된다면, 제가 더 이상 덧붙일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때부터 서로 느끼는 대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 ‘동기의 위기’는 사라집니다. 다만, 한 가지 팁을 더한다면, 제 경우를 돌아보건대, 나이 스물을 한참 넘겨서까지 부모나 교사 그리고 선배가 저에게 ‘너 자신을 위해서’라고 해준 말보다는 ‘날 좀 도와줄래’라고 한 말에 더 이끌려서 무언가를 열심히 했고, 그것이 저의 성장과 학습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볼 때 멋진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늘 바라볼 수 있고 같이 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동기는 충족되는데, 나아가 그 사람이 나에게 도와달라고 할 때,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동기가 되어줍니다. 그런 부탁을 받으면, 저는 정말 그 사람의 기대와 요청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억지로 할 수 없이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기쁘게 그 일을 하게 되거든요.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

지금 주변에 아이가 있습니까? 의욕이 없고 매사 무기력하고 뭐든지 건성으로 하고 있다면, 그 아이의 두 눈에 생기와 총기가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빅 프로젝트의 첫 출발은, 바로 부모와 교사가 멋진 사람이 되는 겁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현재 하는 일을 즐기고 있으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행복감을 표현해주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아이에게 평화로운 목소리로 그러나 진지하고 정중하게 “날 좀 도와줄래?” 하고 말을 건네는 겁니다. 이 말은 아무리 수시로 해도 질리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것이 당장 자신을 위해 어떤 학습이 되고 밑천이 되는지 모를 수 있지만, 멋진 당신을 위해 열심히 도와주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사람의 생애에서 최고의 동기란 바로 내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경험입니다. 게다가 그 누군가가 바로 내 눈에 멋지게 보이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지요. 소중한 내 아이에게, 내가 먼저 멋진 사람이 되어서 도와달라고 말하기보다, “이게 다 널 위해서야!”를 반복 주입하면서 무엇이든지 해주겠다고 덤빈다면, 뭘 하려던 아이라 하더라도 곧 풀이 죽지 않겠습니까?

동기의 위기, 이것은 바로 아이가 ‘지금 여기에서’ 쓸모 있는 존재로 자신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저기에서’ 넌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하는 말은 동기의 실종을 더욱 부채질하게 됩니다. 나를 잘 보이고 싶어하게 만드는 사람, 그냥 그 자체로 근사해 보이는 사람, 아이에게는 그런 거울이 필요합니다. 이 거울 하나 제대로 장만하는 것이 교육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그저 장식일 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