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복수노조는 필연
현장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복수노조는 필연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09.0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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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성·이념·직종·외부조건 … 복수노조 가능성 높아
문제 있는 사업장에 복수노조 생기는 것은 당연
Special Report 이제는 복수노조다 ② 어떤 사업장에 복수노조 생길까?

ⓒ 참여와혁신 포토DB
내년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부분의 노사 관계자들은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데에 동의했다. 일단 주변 상황을 관망하며 지켜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대기업 사업장 중심으로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중소 사업장의 경우 복수노조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는 일은 극히 드물 것이란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은 지난 2009년 <참여와혁신>이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의 노동조합 가입 근로자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와 일치한다. 당시 조사대상의 절반인 50.3%가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결국 복수노조가 생길 것’이라고 답했는데 ‘즉시 설립될 것’이라고 본 응답자는 8.4%로 미미했다.

특히 100인 이하 기업체 응답자의 59.4%는 단수노조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 반면 5천인 이상 기업체 응답자의 20.6%는 즉시 노조가 설립될 것으로 보았다. 결국 복수노조가 생기긴 하겠지만 당장 내년에 요동치지는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업장에서 복수노조가 생길까? 이를 예측한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며 비현실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체로 이전까지 복수노조가 생겼던 사업장들을 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는 있을 것 같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1. 조직내 비민주성에 따른 분화

많은 노동계 관계자들이 꼽은 이유다. 비민주성이란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시킨다면 노동조합 간부의 전횡, 조합원과의 소통부재, 간선제 등을 통한 조합원 권한 규제 등으로 구분될 수 있겠다.

지난 2008년 한국노총 금속연맹 사업장이었던 D노조는 6선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과 조직형태 변경에 관한 투표에서 모두 95%가 넘는 찬성으로 민주노총 금속노조로 상급단체를 변경했다. 당시 조합원들은 “임금과 단체협약을 위원장이 임의로 합의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회사를 그만두게 하거나 배치전환 등의 불이익을 주는 등 현 위원장의 18년 장기집권에 조합원들은 고통 받아 왔다”고 주장했다.

올해 8월, 한국노총 자동차연맹 소속 K노조 산하 조합원 400여 명은 노조 내 차별과 노조 집행부의 임단협 교섭 임의체결 등을 이유로 민주노총 운수노조 버스본부 K지회를 설립했다. 이번 사건은 64년간 무분규 사업장으로 노사관계가 원만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던 K노조 내부의 비민주성이 곪아 터진 것으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한국노총 내 대규모 사업장 중 하나인 L노조, C노조 등은 현재 위원장을 대의원 간선제로 선출하고 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간선제를 실시하고 있는 노조의 경우 대의원들만 장악하면 위원장 선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조합원과의 소통보다는 대의원 관리에 신경 쓰는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복수노조가 허용됐을 때 기층 조합원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 다른 노조가 생길 여지가 많다”고 경고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노총 조기두 조직본부장은 “간선제가 비민주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간선제로 위원장을 선출하는 노조에 대해 직선제로의 전환을 권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 기존 노조들은 조직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조직내 비민주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조합원과의 소통 부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관성적인 조합 활동으로는 변화하는 조합원들의 생각을 따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조직내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소통을 강조하는 신규노조에 조합원을 뺏길 수도 있다.

반대로 기업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영진의 불법과 전횡, 일방적 의사표현, 내부 구성원에 대한 배려 부족 등은 전체 기업의 90%를 차지하는 무노조 사업장에 노조가 형성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무노조 사업장에 대한 조직 확장 사업에 대해 설명하며 “대기업 무노조 사업장이 중심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내부 구성원과의 소통 부재로 인해 회사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사업장이 주 타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2. 이념적 지향의 차이에 따른 분화

어느 대기업 인사노무 담당자는 “복수노조가 생긴다면 그 이유는 이념적 대립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조직적 세력 확장 전략과 각 정파의 활동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연합노련 소속 D노조의 경우 현재 노조내 의견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는 민주노총 성향의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이하 노민추)’를 중심으로 복수노조를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장의 경우 기존 온건·합리적 노선의 노조가 계속 집행부를 이어가며 노민추의 노조 집행부 진출을 저지해왔으나,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노민추를 중심으로 기존 노조와는 다른 노조가 생길 것으로 노동계 관계자들은 전망했다.

또 다른 한국노총 소속 대규모 사업장인 C노조의 경우도 노조 내 성향을 달리하는 그룹에서 복수노조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C노조의 경우 앞에서 언급했듯이 위원장을 대의원 투표에 의해 선출한다는 점과 전국에 사업장이 분포해 각 지역별로 세밀하게 나누어져 있다는 점에서 몇몇 지역을 장악할 경우 새로운 노조 결성도 가능할 것이라는 소문이다.

서울지하철노조의 경우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정연수 현 위원장이 이끄는 ‘새희망노동연대’ 그룹은 노조를 따로 결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운동방식 모두를 거부하고 있는 정연수 위원장은 공공연히 서울지하철노조와 다른 노조 설립 의사를 밝혀왔었다. 서울지하철노조 관계자들에 따르면 노조 내에서 약 40%를 점하고 있는 온건 성향의 조합원들 중 일부가 정연수 위원장과 함께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이와는 달리 통신업계 최대 조직인 K노조의 경우 노조의 온건·합리적 노동운동에 반대하는 강경 노선의 소수 의견그룹인 ‘민주동지회’가 복수노조 시행 시 노조를 결성할 것이란 소문과는 달리 현재 노조 안에서 활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의견그룹의 한 관계자는 “복수노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조합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복수노조를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소문을 일축했다.

지난 7월 8일, 민주노총은 가맹산하조직 전략조직화 사업계획 설명회를 통해 240여 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복수노조 시대를 맞이해 각 지역, 산업별 조직화 방안을 다룬 이번 설명회는 비공개로 진행됐으나 무노조 사업장을 비롯해 한국노총 사업장에까지 침투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도 조직본부를 중심으로 대기업 무노조 사업장 일부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올해에도 이미 건국대병원노조, 인하대병원노조 등 민주노총 사업장 혹은 중간노조 일부를 받아들이며 지속적인 조직 확대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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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직종에 따른 분화

경영계에서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중 하나다. 특히 현재 노동계가 제조업 생산직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복수노조 시대가 되면 생산직노조로 인해 상대적인 박탈감에 빠져있던 사무직, 특히 연구직 중심의 노조가 형성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 등 비정규직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측면에서 고용형태 차이에 따른 노조 결성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으로 떠올랐다.

국내 완성차 사업장의 한 인사노무 담당자는 “우리 회사에서도 사무직 노조 결성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며 “해당 근로자의 경우 특별 관리를 하고 있지만 이에 동조하는 사무직 근로자는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해 사무직 노조 설립 가능성이 있음을 밝혔다.

실제 기아자동차의 경우 지난 2005년 사무직 노조가 결성돼 2007년 생산직 노조와의 통합을 이루었지만 이후 활동은 저조한 상황이다. GM대우자동차의 경우에도 지난 2007년 ‘사무노동직장발전위원회’를 노조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진행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사무직 노조의 경우 결성 주체들이 회사에 불만을 품고 있는 승진탈락자 정도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어 세를 규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사무직노조의 설립 가능성은 높으나 그 파괴력에 있어서는 미지수”라고 예측했다.

현재 경영계에서 가장 고심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연구직 노조인데, R&D 분야 종사자들은 회사에 대한 아이덴티티가 약한 반면 그가 습득하고 있는 기밀이 많다는 점에서 이들이 만약 노조를 결성했을 경우 회사에 중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경영계 한 관계자는 “연구직의 경우 이직도 많고 조직 내에 융합하기보다는 개별적인 특성이 있어 종잡기가 힘들다”면서도 “그러나 이들이 ‘목숨 걸고’ 노조를 만들만큼 절박한 상황이냐면 그런 것도 아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무직과 함께 폭풍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비정규직노조다. 일부 민주노총 소속 정파에서는 아예 비정규직 노조 결성을 조직적 과제로 설정했다는 소문이다. 현재 제조업 내에서 비정규직, 즉 기간제, 파견, 사내하청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정규직과 대등하다는 점에서 이들을 조직할 수 있다면 상당한 파급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 이 정파의 주장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경우 현재도 조직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설립이 가능하다는 점, 장기적인 조직화에는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인해 파급력은 크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좀 더 우세한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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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외부적 조건에 의한 분화

하나의 사업, 사업장이지만 지역별로 공장이 나누어져 있거나 전국적 사업장이 있는 경우 각 지역별로 노조가 결성될 가능성도 높다.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우 원래 금속노조 사업장이었지만, 창원공장은 현재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별 노조를 구성하고 있다. 이에 대해 두산인프라코어지회는 사측의 탈퇴 공작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각 지역의 생산품이 다르고 그에 따른 근로조건 등이 다르다는 점과 지역지부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각 지역지부의 특성에 따라 지회와 상급단체의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공장별 노조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산별노조 소속의 사업장에서 기업별 노조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산별노조 중앙교섭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업장 단위별로 핵심사항이 다르다보니 산별노조의 지부나 지회보다는 기업별 노조가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조합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근래에 보건의료노조 건국대병원지부가 상급단체를 탈퇴하고 한국노총 의료산업연맹의 기업별 노조로 재편한 것이 비근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건국대병원노조는 산별노조의 투쟁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건국대병원만의 노사관계 형성이 조합원의 권익신장에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건국대병원 사측이 민주노총 탈퇴를 미끼로 승진, 임금인상 등을 보장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90%가 넘는 찬성률은 이러한 의혹을 일소해버렸다.

이러한 형태의 복수노조는 결국 기업별 노조의 이익과 사업장의 현안에만 매몰되어 노사관계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있지만, 어쨌든 조합원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근로조건 상승과 권익 신장, 고용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기업별 노조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는 상태에서는 지속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보인다.

앞의 4가지 유형만이 다는 아닐 것이고 한 유형이 아닌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복수노조 결성이 이루어질 것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이 모든 상황은 예측이지만 결국 사업장내 소통의 문제가 복수노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이든 노동조합이든 내부구성원과 조합원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복수노조는 어쩔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