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 무성하지만 준비는 걸음마
공중전 무성하지만 준비는 걸음마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09.0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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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사업장 노사, 뭘 어떻게 준비할지 모른다
사업장 사정 따라 준비도 제각각
Special Report 이제는 복수노조다 ③ 노사의 복수노조 전략

ⓒ 참여와혁신 포토DB
복수노조에 대한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하지만 이런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내년 7월이면 사업장 단위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된다. 노사는 사업장 단위에서 허용되는 복수노조에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이해관계 따라 입장 달라져

복수노조를 둘러싼 노사의 이해관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은 교섭창구 단일화가 노동3권 중의 하나인 단체교섭권, 나아가 단체행동권을 제약할 수 있다며 자율교섭제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노조가 난립하게 되면 교섭비용과 노무관리 비용 등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만큼,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조 난립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방안이라며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승철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당초 노동계가 요구했던 복수노조는 자율교섭을 전제로 한 복수노조였다”면서 “현행 노조법에서 강제하고 있는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조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인 교섭을 심각하게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노총도 교섭창구 단일화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동감하나 전면적인 자율교섭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조기두 한국노총 조직본부장은 “과반수 노조의 대표교섭권으로 인해 복수노조 간 조합원 확보 싸움이 치열해질 경우 오히려 경영계에 이득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혀 교섭창구 단일화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반면 남용우 경총 노사대책본부장은 “사업장 단위에서 노조가 난립하게 되면 교섭비용과 노무관리 비용 등이 급격하게 상승해 기업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면서 “복수노조 허용 시 예상되는 이 같은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교섭창구 단일화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복수노조 반대 = 기득권 지키기?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노동계에서 제기하는 우려는 결국 기득권을 지닌 노조들이 그 기득권을 잃을 것에 대한 우려라고 볼 수도 있다.

한국노총 자동차노련 소속인 경기고속노조 변병대 부위원장은 “얼마 전 금호고속에 민주노총 민주버스 소속 지부가 생겼는데,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민주버스가 치고 들어오는 경우가 늘어날까 우려된다”며 “불필요한 노노갈등으로 현장이 쓸데없는 혼란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좀 더 직설적이다. “상급단체와 정파조직들은 노동자 대중의 요구와 다르게 복수노조 허용을 방치하며 ‘교섭창구 단일화 저지’에만 칼날을 세우고 있다”면서 “이는 기존 노조의 기득권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조합원 대중들의 본능적인 직관과 판단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 시 노조 조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결국 기존에 노조가 확보하고 있는 기득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 다름 아니다.

이승철 국장은 이와 관련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노조 조직력이 약화되리라는 우려는, 단위사업장 내에서의 노노간 경쟁이 경제적 조합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우려”라면서도 “그런 우려 때문에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려되는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지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경영계에서도 각 기업들 사이에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은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됐을 때 자사에 유리한가 불리한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처럼 자사에 ‘강성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온건 성향의 노조가 필요하다.

반면 삼성처럼 기존에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나 온건 성향의 노조가 설립돼 있는 다수의 사업장에서는 복수노조 허용이 곧 강성노조의 등장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런 유·불리에 따라 복수노조 허용에 대한 찬반 입장이 나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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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전략조직화사업으로 미조직 조직화에 박차

이 같이 복수노조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노동계와 경영계는 내년부터 허용될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에 대해 어떤 대응책을 가지고 있을까?

민주노총은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을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의 계기로 활용하는 한편, 교섭구조의 변화 등 복수노조 허용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변화 양상에 적절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미조직 노동자 조직을 위해 기존의 전략조직화사업을 더욱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된 제1기 전략조직화사업은 금속노조의 하청노동자, 공공운수연맹의 공공서비스 부문, 민간서비스연맹의 유통업, 건설연맹의 건설일용노동자, 보건의료노조의 보건의료부문을 5대 핵심부문으로 설정하고, 이들 부문의 조직화를 위해 민주노총 차원에서 조직담당자를 훈련시켜 각 산별연맹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를 더욱 확대해 올해부터 제2기 전략조직화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구상이다. 특히 제2기 사업에서는 제1기 사업이 부문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것에 비해, 지역의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는 데 힘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오는 9월 중에 전략사업지역을 선정해 지역 중심의 조직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승철 국장은 “이 과정에서 양대 노총뿐만 아니라 여러 세력들 사이에 조직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전제한 뒤, “조직경쟁은 막을 수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누가 옳은지는 이후의 활동을 통해 증명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조직경쟁이 늘어나겠지만, 전략조직화사업은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총의 경우도 민주노총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아직 구체적인 안이 제출되지는 않았지만 한국노총도 대기업 무노조 사업장을 집중 공략하며 조직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이다. 한국노총 조기두 조직본부장은 “현재 여러 사업장 노동자들과 접촉 중”이라며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내년까지는 일단 관망하다가 7월 1일 이후 노조 조직화를 본격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기존 조직에 대한 점검과 교육도 진행될 예정이다. 한국노총은 단위 사업장에 대해 민주노총에서 치고 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조직 점검을 실시하고 미진한 부분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이를 위해 오는 9월부터 단위대표자 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교육에서 한국노총은 현재 간선제로 되어 있는 사업장의 경우 직선제로 전환하는 작업과 함께 조합원과의 소통을 강화해 이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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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 복수노조 막는 게 능사 아니다

경영계도 복수노조 허용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경총은 오는 9~10월 중에 내부 워크숍을 통해 복수노조에 대한 대응방안을 토론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10~11월 중에는 회원사의 의견을 수렴해 대응방안을 정리할 예정이다. 특히 경총은 이미 2006년에 이 같은 작업을 한 차례 진행한 적이 있어, 당시의 내용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은 이 같은 토론을 통해 매뉴얼을 정리한다면서도 일률적인 지침을 제시하지는 않겠다는 점이다. 남용우 본부장은 “각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중앙단위에서 복수노조 허용에 찬성 또는 반대하라는 지침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면서 “다만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지가 매뉴얼에 담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총은 또 복수노조 교섭지원단을 꾸려 실제로 복수노조가 설립된 개별 기업들의 교섭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사관계 안정 컨설팅도 고려하고 있다.

남용우 본부장은 “경영계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생산 등 차질 없는 기업활동”이라며 “복수노조를 포함한 노사관계의 문제들도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노무시스템을 정비하고 공정한 관리를 통해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앙단위에서 경총은 이와 같은 준비를 하고 있지만, 개별 기업들은 말을 아꼈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한 한 대기업 노무담당 임원은 “많은 기업들이 내년에 시행될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 않겠느냐”면서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기업은 없을 것이고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노동연구원 이성희 연구위원은 “내년 7월부터 사업장 단위에서도 복수노조가 허용되지만 정작 노사 당사자들은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답답해한다”며 “이는 그동안 복수노조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법률적인 문제에 치우쳐 있어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논의된 바가 드물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한 사업장에서 복수노조가 생길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노사관계는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를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노사 당사자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