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농사에도 ‘때’가 있다
자식 농사에도 ‘때’가 있다
  • 송종대 놀이전문가
  • 승인 2005.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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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놀아줄게”라고 미루지 말라
자식은 성장을 멈추고 기다리지 않는다

“아빠 언제 들어와”
오늘 체험학교에 숙박하는 손님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출근을 한 탓에 나를 기다리던 가족을 대표해서 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빠를 기다리기 보단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사이 우리 가족이 즐겨하는 놀이는 ‘딱지 던지기’이다. 원래는 나와 아들 둘이서만 딱지치기를 하고 놀았는데 소외된 딸아이를 위해 시작을 했다.
방법은 먼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바닥에 있는 딱지를 하나씩 가져간다. 바닥에 있는 딱지가 사라지면 순서를 정해, 들고 있는 딱지 하나를 벽에 던진다. 벽에 가장 가까이 있는 딱지 주인이 나머지 딱지를 먹는 놀이인데 9살 난 아들과 5살 된 딸아이의 실력차이가 많이 나는 ‘딱지치기’와 달리 실력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 최근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로 자리매김 하였다.
우리 가족이 재미있게 ‘딱지 던지기’를 한다고 해서 다른 가족에게도 똑같이 재미있다는 보장은 없다. 부모의 역할과 놀이에 대한 훈련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되었다.

지금 9살인 아들이 3살 때 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는 나를 반가이 맞이하지 않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내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려야겠다며 도착하기 10분전에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시내버스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려 주었다. 며칠 전, 2000년도 일기장에 끼워져 있는 낙서를 옮겨본다.

비 오는 퇴근길 104번 시내버스가 불로동 정류장에 들어섰다.
두 사람의 네 눈이 내리는 사람들을 확인하느라 반짝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씨익 웃었다.
마누라는 나에게 우산을 주고 가방을 받았다. 아들놈은 토끼가 되어 폴짝폴짝 뛰었다.
며칠이 지난 오늘도 시내버스 정류장엔 내리는 사람들을 확인하는 네 눈이 반짝이고 있다.

아들과 자전거 타고 동네 한바퀴

아들이 5살 때 둘째 효민이가 태어났다.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는지 짜증을 자주내고 나들이를 하면 따로 떨어져 혼자 깊은 시름에 잠기곤 했다. 어떤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아 자전거를 한 대 구입해 아들을 태우고 하루에 한 번씩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자전거 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여러 가지 말놀이를 했다. 처음에는 내가 데리고 나갔지만 나름대로 재미를 느끼자 아들이 나를 데리고 ‘동네 한바퀴’를 돌게 되었다.

4년이 지난 오늘도 아들은 자전거를 타자며 피곤한 나를 데리고 가까운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실컷 자전거를 탔다. 4년 전에는 1대의 자전거였지만 이제는 2대가 되었다.

가족에게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란 없다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족의 행복’을 꿈꾼다. 그러나 그 행복이 현재를 담보한 미래가 될 수 없다. 가족관계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각오는 어리석다.
작년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세무사 한 사람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자살의 직접적인 동기는 ‘우울증’이고 이 우울증의 원인은 가족들과의 관계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회인으로는 남부럽지 않는 성공을 했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는 인정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사실 하나는 자녀들이 성장을 멈추고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농사에도 시기가 있듯이 자식농사에도 시기가 있다. 거름을 주어야 할 시기에 거름을 주어야 하고 풀을 뽑아 줄 때 풀을 뽑아 주어야 작물이 잘 자라듯 아이들에게도 가족놀이의 시기를 놓치면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기 점점 어려워진다.

아이들이 어리면 어릴수록 더 좋다. 자녀들이 중학생이 되어서 지난 일을 반성하고 ‘그래 오늘부터 아이들과 잘 놀아 주어야지’라며 다짐을 해도 “애들아 지금까지 아빠가 못 놀아 주어 미안하다. 오늘부터 잘 놀아줄게”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고 막상 꺼냈다고 해도 자녀들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두렵기까지 하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미래로 미루어 놓는다고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핑계일 경우가 더 많다.


  필자는 매년 아빠랑 아이가 함께하는 ‘부자캠프’를 진행하고 있는데 저녁에 아빠들끼리의 친목 프로그램은 알아서 잘 만들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아이는 아이대로 놀고 아빠는 그늘에 앉아 담배만 피우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방법을 모를 때는 두려움이 되고 그 두려움이 지나치면 방종이 되기도 한다. 조그마한 참고가 될까 해서 몇 년 전 지역신문에 실은 글을 옮겨본다.

● 부모가 먼저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라
자녀들과 놀이하는 것을 노동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 부모의 얼굴에 그런 기색이 보이면 자녀들은 금세 흥미를 잃어버린다. 술래잡기 정도만 해도 좋다. 부모 역시 자녀와 함께 놀이의 구성원이 돼야 한다. 놀이 속에서 친구가 되면 자녀들은 금세 장난을 걸어올 것이다.

● 몸에 익도록 자주 하라
전래놀이는 명절 때만 하는 게 아니다. 일년에 한두 번 씩 하는 놀이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자녀들이 쉽게 달려들지 않는다. 평소 생활 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가능한 자주 하는 게 중요하다. 식사 후 곧바로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는 자녀들이라도 윷놀이나 산가지 놀이 등을 몇 번만 함께 해 보면 밥을 먹으면서도 놀이를 기대하는 눈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아이의 입장과 기준에서 놀이를 하라
스스로 놀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놀이를 통해 교육 효과가 생기고 건강이나 정서 발달에 좋다는 이야기는 부차적일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놀이를 즐기는 데는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 자녀들이 가장 재미있어 하는 놀이, 가장 즐거워하는 방법과 벌칙 등을 통해 먼저 놀이를 하고 싶어 하도록 한다면 성공이다.

● 가까이 있는 물건을 활용하라
놀이에는 거창한 도구가 필요한 게 아니다. 도구가 전혀 필요 없는 놀이도 많고 주변에 보이는 어떤 물건이든 활용하기에 따라 훌륭한 놀잇감이 될 수 있다. 놀이를 하기 위해 놀잇감을 찾기보다는 주변의 물건들로 어떤 놀이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

● 승패에 연연하지 말라
이기고 지는데 따라 기분이 엇갈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에 매달리면 놀이는 의미를 잃고 만다. 놀이에도 승패는 있지만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놀이의 목적이 즐거움이라는 점을 중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판마다 이리저리 편을 새로 짜 보거나 어떻게 편을 짤 때 잘 이기고 지는지, 이유는 뭔지 생각해보게 하는 것도 좋다.
오늘 당장 신문지로 딱지를 접어 아이들과 딱지치기라도 시도 해 보는 실천가로서의 머리띠를 동여 메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