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노사관계
소통과 노사관계
  • 참여와혁신
  • 승인 2010.09.0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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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 앞둔 지금 소통문화 재점검 호기
불만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상급자 소통은 ‘지시’
Special Report 이제는 복수노조다 [특별기고] 복수노조 대비 조직 진단 방법

ⓒ 참여와혁신 포토DB
“문제는 소통이 잘 안 된다는 것이고, 원인은 소통을 잘 안했기 때문이며, 대안은 앞으로 소통을 잘해야 된다, 뭐 이런 얘기 아닙니까?”

복수노조 시대를 대비하는 어느 회사의 조직문화 워크숍에서 구성원들의 토론결과를 듣고 난 후 공장장이 한 말이다. 소통이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매번 그렇게 동음반복적인 말이 되풀이 되는 것에 대한 짜증 섞인 코멘트였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그 회사만의 문제일까?

복수노조 시대, 조직진단 통한 대비 늘어

복수노조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많은 회사에서는 조직문화를 점검하면서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어쨌든 바람직한 일이다. 소통이 잘되는 조직문화가 발전되면 회사나 구성원들을 위해 좋은 일이다.

우리는 소통이 잘 안 됨으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짜증과 스트레스, 답답함과 분통 등등. 전통적으로 우리사회에 화병이라는 독특한 개념이 생긴 것도 소통의 문제와 관련이 깊으며, 지금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각종 탈선과 우울증, 자살률의 급증 역시 그와 무관치 않다. 소통의 부재가 일으키는 사회적 질병의 위험수위가 도를 넘어서고 있는 듯이 보인다.

따라서 복수노조의 허용이 소통의 조직문화를 만드는 계기가 된다면 정말 고무적인 일이다. 탁 트인 대화의 공간에서 구성원들은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조직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야말로 노사 모두에게 이로운 Win-Win 게임이 아니겠는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팔봉선생’이 한 말이 떠오른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재미있게 일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복수노조의 허용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세상의 어떠한 것도 일방적으로, 긍정적인 효과 아니면 부정적인 효과만을 일으키는 법은 없다. 그 안에는 항상 명암이 공존하며, 양날의 칼이 숨어 있다. 때문에 어떤 제도를 도입할 때 찬·반 토론을 부추기기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 경영진들이 새삼스레 조직문화를 점검하고 소통에 대한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것을 보면 복수노조의 허용이 기업문화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소지는 많다. 이러한 가능성을 보고 앞으로 이를 가꾸어 나갈 역량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지금 유행처럼 번지는 ‘소통경영’에는 자칫 역효과를 낼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어 이를 인식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소통’이란 단어의 역효과

앞서 언급한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소통을 안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소통을 잘해야 한다’는 동음반복적인 되풀이는 구성원들이 조직문화의 핵심은 소통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은데, 이를 어떻게 풀어갈지 구체적인 대안이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적, 조직적 차원에서 소통을 위해 많은 실천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 중재하는 정부 및 시민단체의 각종 위원회 또는 기구가 설치되어 있음은 물론 대다수의 기업에서는 대화 및 협상, 갈등해결에 관한 교육을 지겨우리만치 많이 실시해 왔다. 그럼에도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 이러한 노력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왜 그랬을까?

모든 인간사가 그러하듯 소통 역시 인위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수없이 많은 각종 사회적 위원회 또는 기구들이 대화의 테이블을 마련했다고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마음가짐이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억지로 테이블에 앉힌다고 소통이 되겠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실시한 교육의 오류는 소통의 문제를 기법 또는 기술적으로 풀려고 했다는 데 있다. 소통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소리를 서로 들을 줄 알 때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를 표면적인 대화나 협상의 기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너무나 짧은 생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협상 때 마다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나아지는 것이 없어요. 말이 안 통해요.”

어느 회사의 노사관계 담당자가 한 말이다. 그렇게 많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그리고 그렇게 많이 만났음에도 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반쪽짜리 소통으로 조직 진단은 금물

현재 많은 회사에서 실시하고 있는 조직문화 진단에 있어서도 적잖은 문제점이 드러난다. 진단의 목적은 원활한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 결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 올 때가 많다. 많은 경우 진단의 결과를 보고 불만과 갈등이 많은 부서 또는 계층을 파악하여 집중적인 관심과 소통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은 복수노조의 시대가 오면 새로운 노조를 만들 수 있는 잠재세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통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소통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조직의 ‘문제아’로 찍혔다는 것인데, 누가 이를 반기겠는가?

소통은 당사자들 간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소통이 안 된다면 그것은 어느 일방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 모두의 문제다. 그래서 당사자 모두가 자기성찰이 필요한 것인데, 경영진들은 자신의 잘못은 생각지 않고 일방적으로 하급부서나 직원들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리고는 소통을 강화하려 한다.

그러나 이렇게 일어나는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문제아를 ‘설득’하려는 것이다. 착각하면 안 된다. 설득은 소통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전제로 타인에게 내말을 듣고 네 생각을 고쳐야 한다는 일방적인 강요다. 더더구나 상급자와 하급자라는 조직 내 힘의 구조 속에서 대화가 이루어질 때 경영진의 말은 거부할 수가 없다. 경영진이 말하는 소통은 결국 쌍방향의 대화가 아니라 회사의 방침을 거역하지 말고 그대로 따르라는 위로부터의 명령인 셈이다. 소통을 강화할수록 설득을 당해야 하는 구성원들은 점점 더 답답증을 느낀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를 이용한 소통방법이 유행이다. 이메일, 휴대전화, 인터넷, 트위터 등을 통해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공유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소통인가? 대부분 업무지시나 보고 또는 회사의 경영방침 내지 경영진의 생각을 전달, 선전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흔히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면 소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매우 이기적인 생각이다. 이것은 소통이 아니다. 기껏해야 반쪽자리 소통이라고나 할까?

소통이란 쌍방향 대화를 말한다. 상대방의 피드백을 받고 그에 대한 대답을 다시 주면서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통은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을 서로 주고받는 피드백의 과정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피드백의 기회를 넓혀준다. 그러나 한 번 보라. 과연 소통의 피드백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자신들이 받은 메시지에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솔직한 생각과 느낌을 숨기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다. 물론 답글과 댓글을 통해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소수일 뿐만 아니라, 그 반응도 회사의 방침, 경영진의 생각과는 상반되지 않는 긍정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불만과 비판적인 반응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이를 두고 우리는 잘 단합된 조직이라고 평가한다면 그야말로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불만과 비판이 없는 조직은 있을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조직은 각기 다른 사고의 소유자들이 모여 같이 일하는 곳으로 언제나 일사불란한 행동을 기대할 수는 없다. 불만과 비판은 조직의 정상적인 현상이며 또한 이것이 조직혁신의 원동력이 된다.

때문에 조직진단에서 불만이 많이 나타난다고 문제조직이라고 보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오히려 이러한 조직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덜 권위적인 조직이며, 그래서 더 혁신적인 조직일 수가 있다. 불만과 비판이 없는 조직은 많은 말해봤자 소용없고, ‘찍힌다고’ 생각해서 속마음을 숨기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조직의 구성원들 간 대화를 보면 의례적이고 표면적이며, 조직의 혁신을 위한 열성이 없다. 만약 경영진이 소통의 목적을 불만과 비판이 없는 조직으로 만드는 것에 둔다면 이것은 정말 큰일이다. 그 조직은 다양성과 혁신의 동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명확성, 사실성, 정당성, 진정성

진정한 소통의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소통을 통해 문제를 푼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즉, 소통의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는 소통의 조건으로 명확성, 사실성, 정당성, 진정성 등 크게 4가지를 말하고 있다. 이 조건이 채워질 때 소통을 통한 문제해결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당사자 간 자율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진정한 소통의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명확성’은 언어적 이해성과 연결되는데, 무엇을 타인에게 지시 또는 전달할 때 언어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 수가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만약 어떤 팀장이 팀원에게 ‘마실 것 좀 갖다줄래?’라고 요청했을 때 그 팀원은 헷갈린다. 그 ‘마실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치가 않기 때문이다. 생수? 콜라? 커피? 차? 등등. 이 때 팀원이 눈치껏 하나를 가져왔으나 팀장이 생각한 것과 다르면 헛수고를 한 셈이다. 두 사람 다 짜증나는 일이다.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듣는 사람이 다시 물어보아야 한다. 하급자가 상급자의 지시를 눈치로 때려잡지 말고 항상 재차 물어볼 수 있는 조직문화가 형성되어야 일의 실수가 적고 효율성이 높아진다.

둘째 ‘사실성’은 말하는 것이 사실과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경우 재 질문을 통해 팀장이 요구한 것이 생수였다고 치자. 그런데 그 팀원은 팀장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유는 생수기에 물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때 팀장이 팀원의 거절을 인정할지 말지는 정말 생수기에 물이 다 떨어졌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면 된다. 사실이 그렇다면 팀장은 팀원의 거절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합의는 항상 긍정적인 피드백만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피드백이라 하더라도 사실관계가 맞으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 자신의 요구나 지시를 거절한다고 무턱대고 화부터 낼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태도가 소통의 문화를 만든다.

셋째 ‘정당성’은 말하는 것이 사회적 권리 또는 가치, 규범 등과 부합하느냐의 문제다. 위의 경우 팀원은 “팀장이 나에게 물을 가져오라 시킬 권리가 있어? 그건 내 업무가 아닌데.”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 팀원이 여성일 경우는 더 심각하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직장에서 상사의 심부름을 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아무튼 팀장은 자신에 한 말에 대한 정당성을 획득해야만 한다. 예컨대 자신이 말한 것은 윗사람으로서 내린 ‘지시’가 아니라 고객과 상담 중에 자리를 뜰 수 없어 어쩔 수 없는 ‘부탁’이었다면 팀원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팀장이 물을 가져오라 했다면 이는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해 팀원은 반감이 생긴다.

물론 이 때 팀장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물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꺼이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가 팀장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즉, 정당하지 않음에도 힘의 구조 속에서 어쩔 수없이 하는 일이다. 마음속의 불만은 그대로 남아있다. 조직이 겉으로는 잘 돌아가는 것 같은데, 속은 반감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마지막으로 ‘진정성’은 말하는 것과 의도하는 바가 일치하느냐의 문제다. 위의 예를 다시 보자. 팀원은 정말 팀장이 목이 말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혹시 평소 나를 무능하게 생각해 물 나르는 일이나 하라는 뜻으로 그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팀장이 정말 목이 마른 것이 아니라 나를 폄하하려는 의도로 그런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 그가 팀장이 오랫동안 고객과 상담을 해 정말 목이 말랐고,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에게 시킨 것은 그 때 내가 가장 정수기에 가깝게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팀장의 말을 듣게 된다면 마음속의 오해는 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으면 조직은 불신의 덩어리가 된다. 어떠한 정책을 세워도 그 뒤에는 무슨 딴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무슨 일을 해도 즐겁지 않고, 항상 손해 보는 느낌으로 일한다.

소통은 캠페인, 이벤트 또는 기법이나 기술적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히려 이런 것들이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고 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명확성, 사실성, 정당성 및 진정성이라는 기준을 갖고 우리의 소통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복수노조가 지닌 양날의 칼을 진정한 소통의 조직문화를 꽃피우는 쪽으로 가게 하려면 여기서부터 출발함이 옳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