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좀 봅시다
얼굴 좀 봅시다
  • 배민정 기자
  • 승인 2010.09.0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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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정 mjbae@laborplus.co.kr
병원은 제게 가장 익숙한 공간 중 하나입니다. 어렸을 때는 독감 시즌마다 어김없이 40도를 향해 솟구치던 고열로 병상에서 링거를 맞았고,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엔 교통사고를 당해 3개월 동안 입원했던 전력이 있으니 병원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집이나 다름없죠.

어른이 된 지금도 종종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두통으로 종합병원에 실려 가곤 하는데, 응급실 문이 열리는 순간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스쳐 가면 일단 안도감에 마음이 탁 놓입니다. 아, 다시 돌아왔군.

응급실에서 잠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밤새도록 불은 환하게 켜져 있고, 여기저기서 낮은 신음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와요. 그런 밤이면 기억은 점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아침마다 왕진을 돌던 의사선생님, 주사기를 들고 있던 간호사언니의 “따끔할 거야”라는 목소리,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아줌마가 부르던 양희은 노래, 사고로 오른팔을 못 쓰게 됐다는 또래아이의 보라색 손가락….

그런데 기억의 세세한 부분까지 들춰봐도 결코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병원의 청소노동자들이죠. 3개월 간 입원해 있었다면 분명히 숱하게 봤을 텐데, 저는 최근까지도 병원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밀대를 든 아주머니들은 빠르게 사라졌고, 누구도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저는 ‘청소노동자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캠페인을 통해 처음으로 아주머니들과 마주보게 됐습니다. 병원 로비에 서서 아주머니들은 입을 열었습니다. 살인적인 업무량과 턱없이 낮은 임금, 도시락을 먹을 휴게실조차 없어 화장실에서 아침밥을 먹는 노동환경에 대해서요. 병원을 오가는 환자와 보호자들, 직원들은 비로소 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이후 저는 일상 공간의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청소노동자들이 움직이고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도시의 색깔을 닮은 회색 제복과 머릿수건에 가려진 당신, 얼굴을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