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비춰볼거울, 전태일 정신
노동운동 비춰볼거울, 전태일 정신
  • 참여와혁신
  • 승인 2010.10.0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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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실천으로 굳히는 진정한 연대
힘겨울 때마다 초심 돌아보게 만들어
[내 인생의 전태일 9] 김동만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2010년, 한국의 노동운동은 전임자 임금 금지와 복수노조 시행과 같은 제도적 변화는 물론 지난 시절 피와 땀으로 어렵게 일구어온 노동조합과 노동기본권을 일거에 뒤엎으려는 거센 도전에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이에 맞선 한국의 노동운동은 뚜렷한 방향성과 단일한 대오를 갖추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진 채 개별 전선에서 힘든 싸움을 전개하는 듯합니다.

노동운동의 초심을 말하며, 습관처럼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지난 40년 전 동료 노동자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눠주고 결국엔 자신의 삶마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불살랐던 전태일이라는 청년입니다. 노동운동에 쌓인 관료화와 형식주의의 번지르르한 기름기 대신 노동운동의 정수인 인간애와 현실 개척의 강인한 의지를 전태일에게서 다시 찾고자 합니다. 이는 전태일 열사의 40주기를 평범하게 보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 인생의 전태일’이라는 주제로, 내가 알고 이해하는 전태일 정신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여겨졌기에 부끄러운 글 솜씨임에도 불구하고 펜을 들었지만 사실 한 글자 한 글자 써나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거울에 비친 내 적나라한 모습이 부끄러울 때가 있듯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통해 내 운동과 인생을 돌아보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무겁게 하기 때문입니다. 전태일 기념재단의 이사직을 맡고 있고, 전태일을 기념하는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해오고 있음에도 전태일의 이름 앞에 저는 항상 부족함을 느낍니다.

평범한 은행원에서 노동운동 길을 걷기까지

노동운동의 길을 걷기 시작해 지금은 한국노총의 상임부위원장이라는 직까지 맡고 있지만 애초에 전 평범한 은행원이었습니다. 창구에서 또 영업현장에서 고객들을 만나고 상대하며 직급을 올리고, 살림을 키우는 데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열악했던 금융 노동환경 속에서 제도적 불합리를 느끼며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활동에 발을 들여 85년부터 노조 상임간부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천성 또한 그 판단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금융노련 소속 각 노동조합은 임금인상과 금융민주화를 위한 강력한 투쟁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고, 그 시기 여러 사업과 투쟁 속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역할과 원리를 배워나갔습니다. 전태일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던 듯싶습니다. 지인의 추천으로 우연히 읽게 된 『전태일 평전』은 이제 막 노동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저에게 동료 노동자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 노동운동의 핵심 가치라는 것을 가슴 깊숙이 심어주었습니다.

최초의 산별노조 결성과 금융산업 100년 역사상 최초의 총파업투쟁의 과정을 거치며 마음 한편에 ‘우리가 승리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제 불안을 달래고 의지를 곧추 세우는 데 전태일이 큰 힘을 주었습니다.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제 한 몸을 내던졌던 전태일의 항거와, 막강한 공권력과 외국자본으로부터 우리 노동자의 생존과 권리를 지키는 금융노동자의 투쟁이 하나로 겹쳐보이게 된 것입니다.

실천하는 전태일 정신이 노동운동의 근간

97년 무렵부터 해마다 11월에 열리는 전태일 추도식에 개인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알게 된 이소선 어머님의 격려와 당부, 특히 손을 꼭 쥐시며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하나 돼서 태일이의 뜻을 함께 실천해 주기를 바란다”는 말씀은 제 필생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2004년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으로 파견되어 전태일기념사업회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기념사업회 이사로서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며 여러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전태일 정신이 한국노총의 더 많은 조직과 조합원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의 가슴에 전파될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이후 금융노조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또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으로 현재까지 오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전태일 정신의 전파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아직도 전태일 정신이 널리 확대되고 있지 않으며, 노동운동 스스로도 전태일 정신을 바로 실천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책감이 들곤 합니다.

40년 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제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은 도시락도 준비할 수 없던 어린 여공들을 위해 자기 몫을 모두 건네던 나눔과 연대의 실천가였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며 동료들을 조직했던 연구자이며 조직가였습니다. 자신의 빵을 지키는 것에만 몰두하는 이기심이 아니라 동료와 이웃의 아픔을 먼저 돌보는 이타심이 바로 노동운동의 근간임을 자신의 온 생애로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애와 연대성, 노동자 사랑의 정신과 과감한 실천이 시대 속에서 변치 않는 노동운동의 가치여야 합니다.

전태일 서거 4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기획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버들다리로 불리는 평화시장 앞 청계천 다리를 전태일다리로 명명하자는 캠페인이 한창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전태일의 ‘사람세상’의 꿈을 더 많은 노동자와 국민이 함께 꿀 수 있는 공간인 전태일 기념관도 조속히 건립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전태일 정신을 오늘 한국사회에, 그리고 노동운동 현장에 다시 퍼뜨리기 위함입니다. 박제된 전태일이 아닌, 살아있는 노동운동정신의 전태일을, 그를 통해 한국의 노동운동을 자랑스러워하고 또 언제든 현재의 모습을 비춰보며 반성할 수 있는 거울로서 전태일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김동만

1959년 생
1978 마산상업고등학교 졸
1978 (구)한일은행 입행
2000 금융노조 조직본부장 및 상임부위원장
2000 7.11 금융노동자 총파업 및 12월 국민주택은행합병반대 총파업 관련 구속
2004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전태일열사 기념사업회 이사
2006 금융노조 위원장
2007 UNI-KLC(국제사무직노조연맹 한국협의회)의장
2008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김동만 1959년 생 1978 마산상업고등학교 졸 1978 (구)한일은행 입행 2000 금융노조 조직본부장 및 상임부위원장 2000 7.11 금융노동자 총파업 및 12월 국민주택은행합병반대 총파업 관련 구속 2004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전태일열사 기념사업회 이사 2006 금융노조 위원장 2007 UNI-KLC(국제사무직노조연맹 한국협의회)의장 2008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