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선진국엔 장애인시설이 없다
복지 선진국엔 장애인시설이 없다
  • 배민정 기자
  • 승인 2010.10.0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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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친환경 복사용지 생산·판매로 환경까지 고민
Attention! Social Enterprise 3 리드릭

ⓒ 리드릭
장애인을 위한 최상의 복지는 무엇일까? 장애인연금이나 활동보조 서비스 같은 제도들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리드릭은 한 발 더 나아가 장애인 스스로 일을 해서 급여를 받고,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드릭이 말하는 ‘장애인을 위한 최상의 복지’는 바로 ‘일자리’다.

장애인을 위한 최상의 복지는 무엇일까? 장애인연금이나 활동보조 서비스 같은 제도들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리드릭은 한 발 더 나아가 장애인 스스로 일을 해서 급여를 받고,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드릭이 말하는 ‘장애인을 위한 최상의 복지’는 바로 ‘일자리’다.

 

장애인 권익 위해 20여 년 한 길 걸어

사회적기업 ‘리드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87년, 한국사회를 휩쓸었던 민주화 열풍 속에서 장애인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 보다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소장 신용호)는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장애인 인권운동 단체로 꼽힌다.

장애인고용촉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현재 우리가 아는 장애인 관련 법·제도 중 많은 부분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노력으로 제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비장애인 시민들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식 개선 운동을 전개하고, 공익 소송 활동 등을 통해 장애인 권익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2006년, 중증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인쇄사업에 뛰어들어 ‘리드릭’이란 회사를 창립하게 된다. 신용호 소장은 “우리가 정책운동도 하고 법 제정을 위해 힘써왔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남아 있는 장애인들이 많았다”며 “특히 정신지체나 발달장애 등 중증장애인을 위한 대안일터의 필요성을 절감해 리드릭을 만들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지난 2008년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은 리드릭의 직원은 총 60명으로 29명의 지적장애인을 포함해 신체장애인과 사회복지사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리드릭의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출판물과 카달로그, 명함 등을 제작하는 인쇄 사업이다. 디자인 같이 비교적 몸을 쓰지 않는 컴퓨터 작업은 신체장애가 있는 직원들이 맡고 있다. 공기관에서 발행하는 홍보 카달로그나 출판서적 등 리드릭이 제작한 인쇄물은 어느 인쇄소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일각에서는 사회적기업 제품의 질이 낮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리드릭에 제품을 맡겨본 기관이나 기업들은 이것이 편견임을 깨닫게 된다.

둘째는 친환경 복사용지 생산이다.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들은 주로 용지 재단, 수량 파악, 박스 포장, 운반 등 복사용지 생산 공정에서 일한다. 특히 공정과정 전체를 자동화하지 않고 지적장애인들이 손으로 할 수 있는 몫을 남겨놓은 ‘반자동화 시스템’이 리드릭의 특징이다. 자동화 기계를 들여오지 않는 이유는 지적장애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 리드릭

 

또한 국내 복사용지 판매기업들 대부분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동남아 등지에서 복사용지 자체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것에 비해, 리드릭은 펄프를 수입해 공장 내에서 직접 복사용지를 생산한다. 펄프 수입과정에서도 밀림 훼손을 최소화하는 기업을 선정해 제품을 납품받는다. 신 소장은 “당장의 비용 절감보다 사회적기업으로서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옳다”며 “밀림을 훼손하고 장기적으로 인류에게 피해를 주는 종이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종이를 공급하는 것이 생명중심, 인간중심 리드릭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인간중심·환경중심 사회적기업으로 리드릭은 질 좋은 제품뿐 아니라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으로 이미지를 확고하게 다지고 있다.

덕분에 리드릭의 매출은 영세기업 수준을 뛰어넘는다. 올해 리드릭이 예상하는 매출액은 40~45억 원 정도다. 다른 사회적기업에 비해 직원들의 임금도 높은 편이다. 리드릭의 중증장애인들은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받고, 디자인 등 전문직은 동종 업계 종사자들과 같은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숙제는 남아 있다. 그 중 하나가 판로의 다양화다. 현재 리드릭의 매출 대부분은 공공기관의 ‘장애인 생산제품 5% 이상 구입’ 등 제도에 기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원가가 높은 것도 문제다. 신 소장은 “매출액은 적지 않아도 60명의 직원 인건비와 지하 200평, 지상 200평의 공장 임대비가 있기 때문에 운영이 쉽지 않다”며 “민간시장을 뚫고 싶은데 가격경쟁이 고민”이라고 말한다. 리드릭이 판매하는 복사용지만 해도 일반 복사용지보다 가격이 높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선뜻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 리드릭

 

또한 이익뿐 아니라 공익을 함께 추구해야 하는 사회적기업으로서 일반 기업보다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신 소장은 “가치를 지킨다는 것이 참 어렵다”고 한다. 현재 리드릭은 서울시 구로구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 보면 서울 외곽에 가건물을 지어서 공장을 운영하는 편이 훨씬 경상비가 덜 들겠지만, 리드릭은 장애인들이 반드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장 이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신 소장은 “미국 같은 장애인 복지 선진국은 장애인시설이 따로 없다. 장애인이라고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 떨어져 살지 않는다. 또 정부로부터 일방적으로 보조를 받는 게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가 생산 활동을 하고 정부에 세금을 낸다. 장애인시설에 빵을 갖다 주고 장애인들 목욕시켜주는 것은 어떻게 보면 후진국형 장애인 복지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인 스스로가 전문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안에 주민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들이 일방적으로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생산 활동을 하며 세금을 내고, 또 이런 세금이 장애인 복지에 재투입되는 선순환구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삶의 질 향상에도 보조금보다는 일자리 제공이 훨씬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장애인은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리드릭의 굳은 신념이다.

‘착한 소비’는 소비자의 의무

향후 리드릭은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적기업’으로 거듭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물론 매출을 극대화하고 규모를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기업의 목적에 걸맞은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뜻이다. 신 소장은 이를 위해서 정부의 제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민간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시되는 요즘, 사무용품 하나를 선택해도 ‘착한 소비’를 고민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 개개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제품 구매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늘어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이것을 소비자의 의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착한 소비’는 우리 사회 소외계층을 돕기 위한 것뿐 아니라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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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매목록

  △ 친환경 복사용지 △ 봉투 △ 인쇄물

- 온라인 판매

  리드릭 홈페이지(http://www.crpp.co.kr)로 들어오시면 다양한 제품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