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단상
귀향 단상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0.10.01 18:42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하승립
정확히 셈할 수는 없지만, 스무 몇 해 만이었습니다.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오랜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날, 뜻밖에도 ‘시내’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굳이 동네나 거리 이름으로 불리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보통명사 ‘시내’가 고유한 자신의 이름인양 당당하게 붙는 바로 그 곳을 스무 몇 해만에 나가보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시내는 번화가를 뜻하는 말이었고, 시의 중심부이자 상징이었습니다. 비록 지방도시라고는 하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도시였기에 그 도시의 시내는 새로운 것들을 가장 빨리 받아들이는 별천지 같은 곳이었습니다.

주말이면 서울의 명동이나 강남역 못지않게 인산인해를 이루고 그래서 걷는 것조차 쉽지 않은, 흥청거림마저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는 노선 번호 하나 없어 묻고 물어 버스를 갈아타고 찾은 ‘시내’가 내게 재회의 선물로 준비한 것은 당혹감이었습니다. 명절 대목의 왁자함은커녕 시골 소읍의 밤풍경처럼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초저녁이라는 시간을 느끼기 힘들 정도의 적막감이 감돌았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밟혔던 것은 마치 스무 몇 해 전부터 시간을 정지시켜놓은 듯한 주변 상가의 풍경들, 심지어 으스스함까지 느껴지는 뒷골목 지름길의 스러져가는 옛집들 같은 너무나도 변하지 않은 그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만남의 광장인양 약속의 대명사였던 그 ‘양과점’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좀더 세련된 인테리어로 바뀌었고, 서민스러운 그 이름과는 달리 가격이 만만찮아 쉽게 들어서기 힘들던 선술집에서 거하게 술잔을 기울일 정도로 우리의 모습도 변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찬미합니다. 특히나 ‘고향’이라는 이름이 붙을 경우 변함없음은 우리에게 안식 같은 편안함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북적거리는 그 길 한복판을 술 취한 젊은 치기로 어깨동무하고 활보하던 ‘시내’는, 이제는 너무나 좁아져버린 늙은 아버지의 뒷모습마냥 아렸습니다.

‘반드시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은 가끔씩 ‘절대로 변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변화를 절대선으로 믿는 시대와 맞서면서 불변이 절대가치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투쟁하지 않으면 노동운동이 아니라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신봉하면서, 정작 투쟁할 때와 기다릴 때에 대한 판단, 투쟁할 힘을 기를 변화에 대한 고민은 잘 안 보입니다. 경쟁에서의 생존과 효율을 위해서는 변화만이 살 길이라고 믿으면서, 정작 그 변화에 인간과 노동의 가치라는 변할 수 없는 근본이 있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철학 있는 변화와 가치 있는 불변의 공존, 이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새로운 발전모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