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만이 능사는 아니다
추방만이 능사는 아니다
  • 배민정 기자
  • 승인 2010.10.0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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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가 불법이주노동자 늘려
‘밥그릇 빼앗는 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
[현장] 고용허가제, 대안은 없나

ⓒ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의 실효성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과 2009년 각각 3만여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추방됐지만, 매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7만~18만여 명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추방하는 수만큼, 한편에선 새로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2010년 현재 정부가 추정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7만4천여 명으로 합법적인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이주노동자 16만4천여 명보다 1만 명이 많은 수준이다.

정부는 G20 개최를 앞둔 지난 6월1일부터 8월 31일까지 석 달을 ‘미등록 이주노동자 집중 단속 기간’으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해 7천 명 이상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간에 정부는 집중단속을 통한 ‘추방’과는 반대로 이주노동자 도입규모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 30일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이주노동자 도입규모를 당초 2만4천 명에서 3만4천 명으로 1만 명 확대키로 결정했다.

한편에선 강제추방이 벌어지고 한편에선 이주노동자를 늘리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고용허가제의 탄생까지

ⓒ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시점은 1980년대 후반이다. 88올림픽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에 알려지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임단가가 상승하는 상황이 맞물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이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면서 3D업종 기피 현상이 만연되고 인력난이 심화된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당시 외국인인력을 관리할 법·제도가 없었던 한국은 1991년에 들어서야 ‘산업기술연수생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분명히 노동자 신분인 이들이 인력난에 허덕이던 중소영세사업장에 ‘연수생’란 이름으로 취업하자 현장 관리자들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해부족과 값싼 노동력이란 잘못된 인식으로 이들에게 저임금을 강요하고 인권을 유린했다.

이에 견디지 못한 연수생들이 사업장을 이탈하자 정부는 노동자 보호의 입장보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감시·감독 강화의 방법을 택해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등 연수생 제도는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악명을 떨치게 됐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상당 금액을 지불하는 문제도 불거졌다. 한국으로 오기 위해 지게 된 빚을 체류기간 동안 갚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은 그대로 국내에 머무르며 미등록 신분으로 남게 됐다.

이러한 연수생 제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자 정부는 2003년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전의 연수생 제도가 훈령에 의해 실시된 것이라면, 고용허가제는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에 의해 시행된 점이 큰 차이였다. 이로서 연수생 신분으로 남아 있던 이주노동자들이 법에 의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라는 말에도 드러나듯 이 제도는 노동자보다는 철저하게 고용주의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이주노동자들과 지원단체들의 주장이다. 미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은 “현행 고용허가제가 오히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강압적인 단속추방만을 일삼아 이주노동자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과연 고용허가제의 어떤 조항들이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로 내몰고 있다는 것일까?

ⓒ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강제근로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어

고용허가제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것은 사업장 이동의 제한이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이동할 수 있는 경우는 회사의 부도 및 폐업, 임금체불, 상해 및 산재 등 회사의 귀책사유가 분명할 때로 국한된다. 또한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 직장을 옮기고자 할 때도 이주노동자 스스로 회사의 책임을 입증해야 한다. 미셸 위원장은 “직장을 옮기고 싶어 고용지원센터에 가면 회사 쪽 말만 듣고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아 다른 직장에 갈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는 상황에선 직장 내 폭력과 차별 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이하 외노협) 사무처장도 사업장 이동 제한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조항이라 동의한다.

“회사의 귀책사유를 명시해놓긴 했지만, 실제로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대우는 이보다 광범위하다. 예를 들어 사장이 ‘주말에 우리 집에 와서 이삿짐 날라’라고 했는데 이주노동자가 거절하니까 사장이 그를 해고했다고 치자. 그런데 사장이 고용노동부에 이탈 신고를 해버리면, 이주노동자는 꼼짝없이 사업장에서 무단으로 도망간 것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사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가 고용기간 중에 사업장을 이동하려면 고용주의 동의서가 있어야 한다. 고용주가 선뜻 이를 작성해주지 않으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사업장 이동 제한 조항은 곧 이주노동자의 강제근로를 수반하는 것이다.

직장을 옮길 경우 구직기간이 두 달로 한정돼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아울러 이주노동자의 업종 전환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들이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에 어려움을 더한다. 김해성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대표는 “우리나라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에게 가능하면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라는 암묵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며 “그렇지만 공사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한 공사가 끝나면 곧장 다른 사업장을 찾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업종 전환까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두 달 안에 새로운 사업장을 찾지 못한 이들은 출국을 하거나 미등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고용허가제의 조항들이 이주노동자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행정, 숙련자 필요한 고용주

ⓒ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일각에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편의주의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법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고용계약기간이 끝나고 재계약을 할 경우, 3년 동안 근무한 이들은 체류 만료기간 45일 전, 3개월 이상 3년 미만 동안 근무한 이들은 체류 만료기간 15일 이전에 고용주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재고용을 신청하도록 정해져 있다.

개정된 고용허가제에 따라 올해 4월 10일부터 이러한 제도가 시행됐으나, 문제는 이를 숙지하고 있는 고용주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고용계약의 전권이 고용주에게 귀속돼 있는 상황에서 고용주가 재고용기간을 놓친다면 외국인노동자는 곧장 미등록이주노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영 외노협 사무처장은 고용노동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외국인고용등에관한법률안에 보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고용주도 일정한 교육을 받도록 명시돼 있는데,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 재고용기간에 대해서도 공문을 팩스로 보내거나,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자기들의 역할을 다했다는 식이다. 고용주가 공문을 받았는지, 문자를 봤는지에 대한 확인절차도 전무하다.”

미처 제도를 숙지하지 못한 고용주가 재고용신청기간을 놓칠 경우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계속 고용하고 싶다 하더라도, 이주노동자는 더 이상 합법적으로 이 땅에서 일할 수 없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현재 팜플렛 등을 통해 고용허가제를 홍보하고 있고, 문자나 팩스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며 “문자나 팩스를 고용주가 확인했는지 재확인하는 절차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것은 한편에서는 고용주들의 요구 때문이기도 하다. 고용주들은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문제로 숙련된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다는 점을 꼽는다. 고용계약기간이 최장 4년 10개월로 정해지기 때문에,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고용주의 의사와 상관없이 업무에 능숙한 이주노동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기 위해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국내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결국 고용주의 요구와 이주노동자의 필요가 맞닿는 지점에서 계속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언제까지 음지에 남겨둘 텐가

고용허가제가 시행되고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체 이주노동자의 50%가 넘는 인구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단속과 강제추방이라는 정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김해성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대표는 “고용주에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이유를 물으면 저임금이라는 답변은 10% 밖에 안 되고, 70% 이상이 인력난 때문이라 답한다”며 “정부는 무조건 이주노동자를 추방하면 그 자리에 한국인들이 채용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라고 강조했다.

3D업종 기피현상과 더불어 갈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현 추세를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인력난은 심화될 수밖에 없고, 이런 현실에서 이주노동자를 ‘한국인 일자리를 빼앗는 사람들’로 인식하는 것은 미시적인 시각일 뿐이란 주장이다. 이영 외노협 사무처장 또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성화시키는 것이 강제 추방보다 사회적, 경제적 편익이 높다고 말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존속하는 이유는 시장경제가 이 사람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단순히 추방한다면 공백을 누가 메울 수 있겠나. 지금 정부 차원에서 이주노동자 숙련인력 활용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국내에 남아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다 숙련인력이다. 새로운 인력을 데려와서 그 사람들을 숙련인력으로 교육하는 것보다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활용하는 것이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금처럼 단속과 강제추방에 의존하는 상황이면 미등록이주노동자 문제는 해소할 방법이 없다.”

앞서 지적됐던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인식 변화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를 배타적으로 여기는 풍조는 자칫 노노 갈등만을 야기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김해성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대표는 “오래전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외쳤던 ‘노동자는 하나’라는 구호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건설현장에서 한국인과 이주노동자의 갈등이 빚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더 큰 틀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가 하도급인데, 예를 들어 누가 100억 짜리 공사를 발주하면 대행사가 100억을 받고 80억에 하청업체에 넘기고, 여기서는 또 60억에, 40억에 재하청을 주는 구조가 만연하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부실공사가 나오는 것이다. 100억짜리 공사면 100억에 해야하는 것 아니겠나. 그럼 노동자들이 적절한 시간만큼 일하고, 적절한 임금을 받게 되고 일자리도 늘어나게 된다. 한국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를 다 쫓아내자고 주장할 게 아니라 이런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대 노총의 역할이 중요한데, 현재까지 이주노동자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아서 안타깝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결국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은 ‘인식의 전환’이다. 지금과 같은 관리와 규제 중심의 시스템으로는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미등록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주노동자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밥그릇 빼앗는 사람’으로 여기는 배타적인 풍조 역시 결과적으로 한국노동자의 손해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고용허가제 시행 6주년, 이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