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현실, 협력 통한 준비에 나서자
변화는 현실, 협력 통한 준비에 나서자
  • 김관모 기자
  • 승인 2010.10.04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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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과 편의성 상승…업무압박과 높은 노동 강도로 이어질 수도
고용형태 아닌 일의 완성도 위한 스마트워크가 중요
Close Up왜 스마트워크인가… ③ 스마트워크는 신천지인가?

ⓒ KT
정부의 스마트워크 확산 계획에도 불구하고 앞서 살펴봤듯이 개별 기업과 노동자들은 스마트워크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유연근무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스마트워크가 근무형태의 다변화를 가져와 고용안정에 신경 쓰지 않고 업무에 매진할 수 있다는 장점을 높이 평가한다. 반면, 반대 입장에선 스마트워크가 현재도 줄지 않고 있는 노동시간의 장기화를 부채질할 것이며, 이제 집과 회사 구분 없이 업무에 몰두해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구실로 작용할 뿐 아니라 유연근무제 확산으로 질 낮은 일자리만 늘어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스마트워크가 실제 생산성 향상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의 계획에 무턱대고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인 반발이 있지만 스마트워크는 한국사회 근무환경의 신천지를 열어줄 수 있을까?

재택근무는 불이익 대상?

먼저 우리나라에 뿌리박힌 대면(對面) 중심의 근무문화는 스마트워크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집단적 업무형태를 중시했기 때문에 현장 관리자의 감독 아래 일을 처리하는 것에 익숙했다. 또한 직급제에 따른 군대식 수직문화는 명령과 이행이라는 대면 중심 근무문화를 더욱 고착화시켰고 창의성 발전에 역행한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이에 일부 대기업들이 직급제 폐지를 통한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업이 아직까지 직급에 따른 수직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는 사원들이 상사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을 중시하고, 스스로 일을 구상하고 처리하기보다 지시사항을 처리하는 업무에 익숙하게 했다.

따라서 직원들은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하게 될 경우 직무의 축소와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 이를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예로 KT는 스마트워킹센터를 올해 9월부터 오픈했지만 이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직원들은 3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KT노조의 한 관계자는 “회사에서는 사내방송과 이메일 등을 통해 기존 사무실 근무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직원들 사이에서 결국 인사평가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로 참여를 기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윤인식 행정안전부 유비쿼터스담당 주무관도 “스마트워크가 문화로 정착되려면 긴 호흡으로 정책부분과 인사 및 조직부분이 함께 가야 한다”며 “무엇보다 대면 보고나 대면 회의 등에 익숙한 근무문화를 바꾸려는 관리자의 의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마트워크=비정규직?

스마트워크를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느냐도 문제다. 아직까지 스마트워크라는 사업은 아직 우리나라 현장에서는 너무 낯설다. 게다가 그 개념을 광의적으로 잡을 경우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효율적으로 업무를 하는 모든 근무형태를 의미할 수 있어 그 한도와 유형을 어떻게 분리하고 수집할 것인지의 논란도 생긴다. 윤인식 주무관은 “아직 학계나 기업들에서는 스마트워크에 대한 개념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며 “스마트워크협의회나 포럼 등을 통해 스마트워크에 대한 대안을 계속 모색해 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스마트워크가 어떤 근무형태를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는 비정규직 논란이다. 회사 사내망과 접속된 재택근무나 원격근무의 경우 보안의 문제상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중요도가 낮다. 따라서 기업들은 업무 중요도가 떨어지는 업무에 대해 근태관리 등 여타 인력관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계약직이나 시간제 파트타임 업무가 더 적절한 고용형태로 스마트워크를 인식하고 있다. 경총의 한 관계자도 “스마트워크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지휘감독 아래 시간급으로 임금을 지급’받는 제조업 생산직 근로자를 전제로 구성된 근로기준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반면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스마트워크가 비정규직 확대나 단시간 근로에 따라 임금 저하나 복지 축소, 고용불안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며 “노동현실을 고려하는 것이 먼저”라며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스마트워크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노사간의 갈등이 촉발될 우려가 있다.

하루 업무시간 = 24시간 가능성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또 스마트워크가 노동자들의 업무강도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256시간으로 OECD국가 평균인 1,764시간보다 500시간이나 많다. 하지만 평균 노동생산성은 OECD국가 평균보다 49.7%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되레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급여는 동결하거나 줄이는 부작용도 늘고 있다. 즉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작업장 혁신, 다시 말해 생산적 참여와 그에 따른 보상, 업무환경의 변화보다 노동자 관리 제도의 변화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중소기업 L씨의 이야기처럼 회사 사내망과 접속된 노트북은 L씨의 근무를 더 편하고 효율적으로 이끌어주기도 했지만 회사가 L씨를 일에 더 옭아매는 결과를 가져왔다. S통신사 K사원의 스마트폰도 빠른 업무처리와 직원들 간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는 장점이 있지만, 직원들의 행동을 강제로 통제하는 무기로도 사용됐다. 또한 중요한 내용은 결국 회사에 직접 가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 보고체계도 여전하다.

결국 업무 중요도가 성과주의로 가고 있기 때문에 물리적인 업무시간은 줄었을지 몰라도 실제 노동자들이 받게 될 스트레스나 업무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은 줄지 않게 된다. 이는 결국 개인적인 영역까지도 일이 침범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 부처간 논의부터 활성화해야

이렇다보니 정책을 꾸려나가기 위한 숙제도 만만치 않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국내에서 스마트워크를 통한 일처리는 여전히 미비하다. 행정안전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스마트워크 보급율은 1% 미만이다. 아직 국내 사업장들이 이 새로운 개념의 근무형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는 스마트워크센터 도입 시 교통유발부담금을 감면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한국형 스마트워크 모델을 개발해 기업들이 해외진출을 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겠다는 구상까지 내놓았다. 또한 민관이 협의체를 구성해 기업의 스마트워크 확산을 지원하는 한편 포럼을 설립해 지속적인 정책연구와 글로벌 협력을 추진하고, 대국민 홍보를 강화해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문화로 정착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삼성SDS나 SK텔레콤, 현대중공업 같은 대기업들은 정부의 정책과 상관없이 이미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인사 개편과 통신망 설비 등으로 스마트워크를 위한 기반을 마련한 상태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통신기기 설치 등 비용문제와 스마트워크를 관리할 인력 부족으로 이 같은 정책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또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업들도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이유도 큰 고민이다. 김준영 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 의장은 “현재 스마트워크 업무를 위한 장비 마련에 적지 않은 돈이 들고, 아직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가 아니면 이용하기도 힘들다”며 “결국 육체노동이 아닌 통신분야나 영업직, 콜센터 등에 한정될 수밖에 없어 중소기업에서 활성화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부문도 마찬가지다. 행정안전부는 스마트워크 직무적합도 조사를 통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한 곳에 우선적으로 시범운영을 하고, 이후 협업이 필요한 업무에 확산시키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현재 이를 주도적으로 맡고 있는 곳은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 불과해 전 부처의 연계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준현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스마트워크가 공공부문에서 우선적으로 시행되기는 하지만 이후 민간 확산이라는 목표와 인사제도의 개편, 출퇴근문화의 변화, 출산 및 육아문제 해결 등과 연계된 만큼 고용노동부와 국토해양부, 여성가족부 등 다른 부처들과 같이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재택근무나 원격근무처럼 감독 및 관리가 힘든 업무를 진행할 경우 산업재해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지, 일과 개인 활동의 경계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아직 논란이 많다. 따라서 행정안전부가 준비하고 있는 ‘스마트워크 촉진과 지원을 위한 법률안’ 역시 다른 부처들과의 연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변화에 대응하는 노사간 협력 필요

현재 정부의 스마트워크 정책은 기존의 유연근무제와 이미 존재하는 통신기기의 접목 그 이상을 바라기 힘들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따라서 현 정책이 통신기술의 변화라는 이름으로 대기업과 통신업체 밀어주기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조성주 연구원은 “지금 스마트워크의 방향은 소비자나 노동자,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으로 집중되어 있어 기존 노동시장과 전혀 다르지 않다”며 “스마트폰 혁명으로 기존 낡은 체계에 균열을 내고 개개인의 창의성을 중시하는 상생구조에서의 생산성 향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근무형태가 아닌 근무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에 대한 변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준현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스마트워크는 단순히 정보통신기기를 이용하는 근무형태가 아닌 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직원의 의사결정권을 높이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며 “업무재설계(BPR)를 통해 조직구조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정 교수는 “철저한 성과 위주의 평가를 통해 파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파이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면서도 “아웃소싱을 통한 계약관계가 아니라 전문직 중심의 인소싱을 통해 고용안정을 담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마트워크 사업을 위해 노사간 협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자면 노사가 서로를 신뢰하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SK텔레콤이나 KT의 경우 스마트워크 활성화를 위해 노사가 함께 고민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차완규 KT노조 정책실장은 “KT의 ICT역량과 지난 1년 9개월에 걸쳐 노사가 새롭게 변화시켜온 olleh 기업문화가 정착되어 있다”며 “이를 통해 스마트워크의 원래 취지대로 경직된 대면 문화나 수직적 상하구조를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까지 스마트워크 정책이 사업장에 어느 정도 혁신을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노동력을 최소화시키고 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업무환경을 만든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워크가 이전의 조직문화, 업무구조, 생산성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현장에서 이를 준비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