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준비하자
현장에서 준비하자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10.04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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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인식 변화와 미래지향적 정책 대안 준비해야
노사가 은퇴자 문제 먼저 고민해야
Special Report 은퇴, 미리 준비하자…④ 노사가 나서야 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은퇴자 문제는 점차 개인의 영역을 떠나 사회적 문제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은퇴자 문제, 고령자 문제는 걱정과 근심거리 정도에 머물고 있을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체계적인 사회보장 시스템이나 프로세스는 태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결국 고령자 문제, 은퇴자 문제는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또한 은퇴라는 먼 이야기보다 지금 당장이 급한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은퇴를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인식 전환은 필수다. 이를 위해 정부뿐 아니라 기업,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종합적 은퇴 관리가 필요하다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문제는 은퇴자, 고령자들을 위한 종합적인 관리 프로세스의 확립이다. 여기에는 당장 발생하는 은퇴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은퇴를 앞두고 있는 세대까지 겨냥한 대책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지만 퇴직자의 연령이 50대로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중에’ 닥치면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또한 은퇴 자금이라는 재정 문제에만 국한된 은퇴 준비는 자칫 은퇴 후 삶 자체에 대한 회의로 빠져들 공산이 크기 때문에 종합적인 은퇴 관리가 필수다. 여기에는 현재와 앞으로의 은퇴자들이 과거와 달리 교육 수준이 높고 건강하기 때문에 노후에도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라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 개선과 함께 고령자에 대한 복지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현재 한국의 은퇴자들은 사회참여형 구직자보다 생계지향 구직자가 많다. OECD보고서에 따르면 회원국의 50~64세 경제활동참가율을 비교했을 때 한국은 65%로 미국(68%), 덴마크(69%), 독일(59%) 등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65세 이상 연령층에서는 한국의 경제활동참가율이 30%로 미국(15%), 덴마크(5%), 독일(3%)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결국 노령인구에 대한 복지 문제가 정착되지 않은 한국에선 65세 이상 고령자들이 생계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증이며, 이로 인해 정부는 장기간의 정책과 예산이 소요되는 복지 문제보다 고령자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고 있는 형상이다.

물론 현재 한국의 상황이 복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일할 수 있는 고령자에겐 일자리를 제공해 생계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일할 수 없는 고령자에겐 사회 복지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고령자 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과 사회적 인식은 대단히 협소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견전문인력고용지원센터 임수정 선임 컨설턴트는 “은퇴에서부터 생애 끝까지 고령자를 위한 종합적인 프로세스가 없고 따라서 이에 대한 매뉴얼도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뿐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도 은퇴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당장 닥친 현실의 주택, 교육비 문제 등으로 회사 다닐 때 다 받아내야 한다는 의식이 노동자들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퇴 문제를 여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 어려워 보인다. 이로 인해 회사에서도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져 은퇴 교육 등 퇴직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일단 조합원이 원하는 것은 미래가 아닌 현재”라며 “은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현실은 이것까지 고민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숙련자 우대 풍토 조성해야

ⓒ 참여와혁신 포토DB
현장에서의 무관심은 현실이지만 은퇴 문제는 곧 닥칠 미래라는 점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관심과 그에 따른 참여를 이끌어내는 문제는 중요하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 노사가 준비해야 할 일은 많다. 일단 정년 문제에 대한 노사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정년연장형 혹은 고용연장형 임금피크제를 통해 아직 충분히 일할 수 있는 현장 내 ‘숙련자’들이 계속 근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년을 앞둔 ‘숙련자’들을 생산 현장에 다시 배치함으로서 안정적인 생산과 숙련기술의 전수라는 2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은 비록 임금 저하는 불가피하지만 퇴직 후 삶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조직의 틀 안에서 일정부분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노사 양측이 WIN-WIN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으로 숙련자들이 우대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숙련자’란 고임금에 경력 많은 ‘쓸모없는’ 존재처럼 치부되지만, 실제 숙련자의 기술이 계속 전수돼야 안정적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또한 숙련 노동자도 오랜 경력을 ‘이제는 쉬어야 할 때’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전수하고 보다 높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쌓아둔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현장 매뉴얼화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렇게 숙련 노동자가 대우받는 사회, 기업이 된다면 퇴직자에 대한 대우뿐 아니라 퇴직 후에도 회사에 필요한 인재로 사용가능한 프로그램이 도입될 것이며 사회적으로 이들의 경력전환, 전직지원까지도 가능한 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희망제작소 해피시니어의 ‘행복설계 아카데미’는 전문직 혹은 경영 일선에 있던 전문가들이 퇴직 후 사회공헌에 참여할 수 있는, 즉 숙련자들이 다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은퇴 설계, 교육 프로그램이 사회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노사가 나서야 한다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퇴직자들이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았던 기업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이 은퇴자 문제에 앞장서야 한다. 특히 노동조합의 경우 퇴직자 문제는 노동조합의 주요 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외면했었지만, 향후 노동조합 활동에 있어 퇴직자 및 조합원들에 대한 은퇴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 노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현실에서 당장 급한 임금,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벅찬 마당에 은퇴자 문제까지 고려해야 하느냐는 조합원들의 비판도 있었다”며 “은퇴 교육과 관련된 프로그램 설치에 대해 집행부 내에서 이야기는 있었지만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곧 조합 내에서도 가시화될 것이란 예상은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이 은퇴자 문제까지 고민하기에는 현실적 한계, 즉 조합원들의 호응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의 평균연령은 40대를 넘어가고 있다. 특히 대기업 노동조합의 경우 이러한 조합원 고령화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노동조합의 서비스는 현실의 임금과 학자금과 같은 복지 문제에 귀결되고 있다.

분명 이 또한 현실에서 중요한 문제지만 조합원들의 고령화에 따른 미래도 준비해야 한다. 그때 가서 준비하면 이미 늦는다. 40대부터 은퇴를 대비한 교육이 진행되어야 한다. 30~4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은퇴 교육이 비현실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 이들 고민의 한 귀퉁이는 은퇴 이후를 이미 준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희망제작소 해피시니어에서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아니라 직장인을 위한 은퇴 교육인 ‘퇴근 후 Let’s’라는 은퇴 교육 프로그램이 지난 5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이런 활동을 주도해야 하는 것은 노동조합과 기업이다. 왜냐하면 기업과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젊음을 공유하고 있는 두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노사가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