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낮추는 법부터 배우는 아이들
목표를 낮추는 법부터 배우는 아이들
  •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 승인 2005.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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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 만족” 34% 뒤 씁쓸한 현실

작년 이맘때였습니다.
문화관광부의 요청으로 한시적인 연구팀이 구성되어 ‘청소년문화의 새로운 개념정립에 따른 정책연계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야 했지요. 저는 모바일과 인터넷이라는 주제를 담당했습니다. 그때 89년생에서 84년생까지 219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것이 있었답니다. 문화연대에서 조사를 했는데, 남성, 여성 각각 1055명, 1135명을 대상으로 했고, 서울, 부산, 경기 지역이 전체의 50%를 차지했답니다.

이 설문조사는 이제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조사들과 다르게 비교적 최근의 변화된 시대상에 맞추어 새로운 질문들을 많이 던지고 있어서 여러 면에서 재미있고 살펴볼 대목들이 많았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학교생활에 대한 부분만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이제 슬슬 한해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때라, 내 아이의 올 한해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드렸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장래 희망 1위는 선생님

먼저 학교생활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더군요. 그랬더니 요즘 신문 방송이 마구 쏟아내는 온갖 학교 문제에도 불구하고 무려 34%의 청소년이 ‘그렇다’고 했답니다. ‘아주 그렇다’는 3.7%였구요. 반면 ‘그저 그렇다’는 41% 정도였고 ‘아니다’라고 답한 청소년은 23.5%였습니다. 부모에게는 내 아이, 단 한 명의 청소년이 중요하니까, ‘아니다’라고 말한 23.5%의 청소년에게 어떤 대안을 제시할 지 무척 고민거리가 되지 싶어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그저 그렇다’를 만족한다고 대답한 경우와 합치면 학교생활이 어쨌거나 그럭저럭 견딜만하거나 다닐만하다는 청소년이 75%에 육박하는 셈이지요. 교장 선생님, 학교 선생님,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환영할만한 소식일까요. 이뿐이 아닙니다. 선생님들이 더 좋아할만한 소식이 기다립니다.

장래의 직업 희망에 대해서 물어보았더니 이렇더군요. 장래 희망 1위가 바로 선생님으로, 17.4%가 나왔거든요. 여자 아이들은 약간 더 높아서 25.5%였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공무원 7.4%, 의사 6.5%, 사업가 6.2% 순서로 나타났더군요.

만약 그 꿈을 이룰 수 없다면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청소년의 73.6%가 “희망을 이룰 수 있다”고 대답해서 매우 놀랐답니다.

이런 조사 결과를 두고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끼리 가볍게 토론을 했었지요. 결론은 요즘 청소년들이 대단히 안정지향적인 직업을 희망하고 있다, 그래서 다들 마음 속에서는 저만치 높은 꿈이 있는데 대학 지원처럼 하향 조정되었는지라, 이 정도 직업이라면 열심히 노력해서 되지 않겠는가 하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것 같다는 데 모아졌답니다.

낮춰 잡은 목표도 무색케 하는 현실의 벽

그래놓고 나니까 슬퍼지더군요. 선생님 되기가 어디 쉬워야 말이지요. 2위, 공무원과 1위, 선생님을 합하면 공무원 예비 지망생이 24.4%에 이르렀거든요. 요즘 공시생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줄임말이지요. 이게 사시나 행시에 버금가는 시험이 될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소리입니다.

더 슬픈 것은 우리나라에 직업이 10개 있으면 이중 7개는 대졸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랍니다. 고졸 학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고학력자들이 우르르 하향 지원을 하고 있어서 고졸자들의 취업 시장도 연달아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설문 조사에 응한 청소년들이, 자신의 장래 희망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73.6%의 아이들이, 저희들 짐작이 옳다면, 그조차 대폭 내려 잡은 현실적인 지망이라서 낙관하고 있다면, 곧 마주하게 될 실망감과 좌절이 얼마나 클지 걱정입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지요. 어차피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실패하는 것과, 이쯤이면 되겠지 내려잡은 목표에 실패하는 것의 차이.

고민상담 대상은 친구, 부모·선생님은 많지 않아

다른 이야기도 들려드리지요. 해외 어학연수 경험을 가진 청소년은 4.7%에 불과했습니다만, 외국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는 ‘그렇다’고 대답한 청소년이 47.4%로 급상승했고 ‘그저 그렇다’까지 합하면 수치는 훨씬 높아졌습니다. 된장찌개보다 피자가 좋은가를 물었더니 60%가 아니라고 대답해서, 외국 대학에 대한 선호는 단순한 동경보다 교육 문제에 대한 청소년들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민이 있을 때는 예상대로 학교 친구와 이야기하는 청소년이 46.4%로 가장 많았고요. 동네 친구는 6.4%, 온라인 친구는 2.1%로 나왔지요. 2위는 부모와 가족 구성원으로 26%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선생님은 0.8%(17명)에 불과했지요. 그 외에는 선배 0.7%(16명), 종교활동 종사자 0.6%(14명), 학원 강사 0.3%(6명), 상담 전화 0.2%(5명), 사회활동 종사자 0.2%(5명) 순서로 나타났습니다.

참 안타까운 결과이지요. 선생님의 경우가 특히 그렇고요. 사회활동 종사자로서 청소년 고민을 나눠듣는 경우가 나머지를 다 합해도 1.8%에 불과하니까 만만치 않습니다. 한마디로 청소년은 친구와 엄마 빼면, 그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친숙한 관계의 대상이 없다는 소리 같아서, 우리 어른들이 내 자식 빼면 과연 뭘 하고 있나 싶어집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허락하라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이런 조사 결과를 놓고서 주관적 상상을 해봅니다. 요즘 청소년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어른들은 학교가 문제투성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럭저럭 다닐 만해요. 하지만 외국 대학에 갈 수 있다면 당근 그게 더 좋지요. 선생님과 고민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장래 직업은 선생님 같은 안정적인 공무원이 최고라고 봐요. 연예인? 좋아는 하지만 그딴 꿈 허황되게 꾸지 않는 편이죠.’

여전한 고민은, 그럭저럭 다닐 만하거나 견딜 만하다는 학교생활이 실은 꿈을 꾸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극히 현실적인 장래 계획들로 채워졌기 때문에, 그조차 달성이 힘겨운 목표들이지만, 학교생활을 통해 기대하는 것들이 대폭 줄어들어 있기 때문에, 나오는 대답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전쟁을 겪은 소년은 소년이 아니라는 말이 있지요. 요즘 아이들은 총성 없는 전쟁 뒤의 폐허를 지켜보며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번에는 좀 밝은 소식, 역시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가지고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