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을 뜨겁게 달군 ‘전태일 정신’
서울광장을 뜨겁게 달군 ‘전태일 정신’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11.08 14:14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정규직 문제,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심 다시 세우고 우리가 전태일이 되자
전태일 열사 40주기 추모문화제에서 만난 사람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40년 전, 한 청년노동자가 자신의 몸을 불살라 노동자도 인간임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교섭대표로 협상장에 나온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한국의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전태일 열사 40주기 추모문화제 ‘2010 전태일의 꿈’이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석했던 7천 명의 전태일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이들에게 전태일은 어떤 의미일까? 서울광장을 지나다 우연히 추모문화제에 참석했던 이들은 전태일이라는 이름에서 무엇을 떠올릴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7천 비정규직, “내가 전태일이다”

지난 10월 30일 저녁,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와 민주노총이 주최한 추모문화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추모문화제에 앞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철폐 전국노동자대회’를 같은 장소에서 개최했다. 이날만큼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7천여 명의 비정규직이 서울광장의 주인공이었다.

이날 추모문화제는 같은 장소에서 열린 모 지자체의 장터 행사와 겹치면서 다소 어수선하게 시작됐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장터 행사가 마무리되자 서울광장은 온전히 추모문화제에 모인 노동자들의 공간이 됐다.

때로는 엄숙하게, 때로는 흥겹게 문화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7천여 비정규직은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채 끝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하나가 되어 싸우면 못할 게 없다”며 단결을 호소했고, 광장을 메운 노동자들은 “다시 전태일로 돌아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관광객 에이다 가브릴로스카 씨는 “40년 전에 죽은 한 사람의 노동자의 이야기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다니 놀랍다”며 부러워했다.

서울광장을 지나던 은행원 남 모씨는 “은행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어서 비정규직 문제가 나오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정규직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결합해야 하는데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이 처리하라는 식의 태도 때문에 화가 난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평등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

옛 청계피복노조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친목모임인 ‘청우회’ 정경숙 씨는 “오랜만에 모여 모처럼 어머니를 뵈니 직접 노조 활동을 하던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면서 “우리만 싸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청춘을 바쳐 싸웠기 때문에 오늘 이런 자리도 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정 씨의 얼굴에서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양 모씨도 “오늘 비정규직노동자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나왔는데 집회에 참가하면서 전태일 열사에 대해 다시 알게 됐다”면서 “비정규직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당한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던 당시와 지금이 전혀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에서 참석한 김재윤 씨는 “우리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노동자들”이라며 “전태일 열사가 평등을 외치면서 산화해간 것을 후세의 노동자들이 기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태일 열사는 대학생 때 평전과 영화를 통해 접했다”면서 “열사가 살아생전에 고민하던 평등의 문제는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한 숙제”라고 강조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G20 대응 실천단이라는 대학생 모임을 꾸려 문화제에 참석했다는 외국어대 하윤정, 박이랑 씨는 “<전태일 평전>을 읽고 눈물이 날 만큼 감동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들은 “요즘 학생들은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자신의 문제라고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다”면서 “구조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개인의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해 더 공부하고 노력해서 정규직 일자리로 취업하면 된다고 여긴다”고 꼬집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 모씨는 이날 오후 1시부터 평화시장을 돌면서 당시 시다들의 활동을 체험하는 행사에 참여했다. 이 씨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버들다리가 ‘전태일다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면서 “이런 내용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야 하는데 언론의 관심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따졌다. 스스로도 “취직하기 전에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지만 이런 날만큼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이런 문제를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앞으로 언론에서 관심을 기울여서 이런 부분을 계속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머리로 가슴으로 투쟁할 때

이날 진행된 추모문화제에서 공연을 했던 문화인들의 감회도 남다르다. 전태일 열사의 아픔을 몸짓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는 춤꾼 이삼헌 씨는 “오늘 공연이 전태일 열사를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수줍어했다. 그는 “전태일 열사가 결국 이뤄내고 싶었던 것은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삶이었고, 자신을 희생한 것도 그 이유였을 것”이라면서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의 삶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가수 박준 씨는 “서울광장을 함께 사용하게 돼 오늘 공연의 전체적인 흐름이 축소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전태일 열사 앞에서 누구도 당당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전태일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나로서는 조금이라도 당당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어머니 손을 잡고 무대에 오른 것은 영광”이라고 덧붙였다.

박 씨는 “실천 없는 무늬만 투쟁이 난무하고, 조합 이기주의 때문에 많은 비정규직이 힘들어 하기도 한다”면서 “장투 사업장이 초반엔 서로 연대하다가 결국엔 장투 사업장만 남는 것을 보면 참 슬프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모두가 함께 깃발을 들어야 한다”며 “전태일을 기억한다면 노동운동의 중심을 다시 세우고, 머리로 가슴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래 집회에서는 공연을 잘 하지 않는다는 가수 윤선애 씨는 “전태일이라는 인물은 역사의 도전”이라면서도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어린이들과 시민들이 모두 함께 알아가는 데 함께 하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다”고 동기를 밝혔다.

전태일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한 윤 씨는 “다 똑같은 사람인데 우리 주위에는 행복하지 못한 이웃이 너무 많다”면서 “이웃을 챙겨주고 고민을 들어주는 존재, 그런 존재가 전태일이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행동이 합일된 인물이 전태일이었던 것처럼 정당을 세우고, 이념이 있는 것도 결국은 모든 사람들을 잘 살게 하려는 것 아니냐”며 “다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필요한 때”라고 이야기했다.

노래패 꽃다지 멤버인 조성일 씨는 “공연을 하다 보니 40년의 시간이 체감으로 느껴지는 듯했다”면서 “참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는데, 무엇보다 내 마음에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환기시켜준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뿌듯해 했다.

조 씨는 “노동자의 삶과 문화가 우리 사회의 비주류인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소외된 이들의 몫은 너무 적고, 힘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태일의 정신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야 하고 또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타임오프, 소규모 노조 어렵게 만들어

이날 추모문화제에 앞서 열렸던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 참가했던 비정규직들은 추모문화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내가 전태일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김 모 조합원은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금속노동자대회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느꼈는데, 서울광장 문화제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놀랐다”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아 희망을 갖는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들어 조합원들도 많이 늘고 있고 현장의 분위기도 매우 고무적”이라면서도 “일부 언론에서 최근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고액임금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듣고 썼는지 모르겠지만, 제발 기자들이 현장으로 찾아와 보고 듣고 기사를 써달라”고 주문했다.

이효동 씨는 “예전에는 기륭전자나 쌍용차 문제 때도 찾아가곤 했는데 이제는 지쳤다고 할까. 그런 문제에 참여하기 힘들어진다”면서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이런 집회에만 오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에서 비정규직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손소희 씨는 “이주노동자나 영세한 사업자들에서 보듯, 근로기준법이 지켜지더라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그래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는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씨는 또 “전체 운동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전체적으로 함께 못한다”며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함에도 당장 문제가 터지지 않으면 조직하기도 힘들고, 요즘은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농협중앙회 비정규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홍석환 씨는 “정부는 타임오프가 하후상박이라더니 우리 같은 비정규나 소규모 노조부터 활동이 어렵게 되었으니 순 거짓말 아니냐”며 “비정규 조합원들은 항상 임금차별이나 고용불안 때문에 힘들어 하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도 없다고 호소한다”고 밝혔다. 홍 씨는 이어 “예전에는 사회적인 문제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지금은 그런 열기가 많이 식어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추모문화제에 함께한 이들의 참여 동기는 저마다 달랐지만, 이들은 “전태일 열사가 풀빵을 사줬던 시다들이 지금은 비정규직”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규직이 함께 풀어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말처럼 어딘가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는 한 누군가는 전태일이 되어 그들을 도울 것이다. 주변의 어려움을 보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풀어가려는 바로 우리가 전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