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경력? 그 정도는 우습지”
“이십 년 경력? 그 정도는 우습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0.11.0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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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과정의 옷 만들기…단순작업도 결코 쉽지 않아
베테랑들의 일하는 모습은 조화롭고 유기적

바늘과 실을 갖고 하는 일이라…. 아무리 <전태일 특집>이라지만 눈이 어두운 어머니께서 부탁하시면 바늘귀에 실을 꿰는 것밖에 해본 적이 없는 기자 입장에서 봉제공장 체험을 하라는 것은 절로 한숨이 나오는 소리다. ‘국민학교’ 실과 시간에 단추 다는 법을 배운 적은 있지만 평소 옷소매 단추라도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적당히 풀어헤치고 다니는 주제에 말이다.

다림질은 또 어떤가? 자취 십년 경험에 의하면 가사노동 중 제일 고난이도 작업은 다림질이 분명하다. 심지어 각 잡아 다린 휴가복이 생명이었던 군 생활 동안에도 선·후임들에게 초코파이를 건네며 다림질을 부탁하던 나였으니까. 이것은 다 기자가 막내이기 때문이리라.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봉제공장, 낯선 장소에 대한 첫인상

체험 장소를 섭외하는 것부터가 부담이었다. 봉제공장에서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공연히 바쁘게 일하시는 분들에게 폐나 끼치는 일이 아닐지, ‘체험’한 얘기를 써야 할 텐데 구석에 멀뚱히 서서 ‘구경’한 얘기를 쓰는 불상사가 벌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었다.그래서 일단, 재단사로 일한 경력이 있는 전태일재단의 박계현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여차저차 기획취지를 설명하고 창신동 일대의 맞춤한 봉제공장이 있을지 물었다.

“창신동~? 거기도 요새 공장들이 많지 않어~. 큰 공장덜은 많이 없어지기도 허고 외곽 쪽으로 옮겨가구. 남은건 거의 식구들 몇이 쬐끄만하게 운영하는 데지 아마~. 정 뭐시기하믄 우리 와이프가 쌍문동서 작은 공장을 하는디 거길 가 보든가~.”

그렇게 해서 어느 날 아침 지하철 쌍문역 3번 출구 아파트 단지 옆, 골목 주택가 허름한 건물 지하의 아담한 봉제공장에 쭈뼛쭈뼛 얼굴을 비치게 됐다. 재단사와 미싱사, 그리고 ‘시다’라고 불렸던 보조 일을 하는 생산직원 둘에 영업담당자까지 모두 다섯 명의 공장 식구들 틈에 봉제일은 난생 처음 본다는 초짜 하나가 덜컥 끼어든 것이다.

주로 간호복이나 병원 유니폼 등을 주문받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머리를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계단을 반쯤 내려가자 제일 먼저 기자를 반기는 것은 공장 안 가득한 소음이었다.

거대한 기계장치처럼 쿵쿵 울리진 않지만 전동 미싱이 ‘차르륵’거리는 소음은 꽤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거기에 비하면 할머니가 쓰시던 수동 재봉틀 소리는 아주 정겨운 편이랄까. 게다가 송풍기가 수시로 돌아가고 원단을 자르는 전동 재단기는 전기톱과 비슷한 소음을 냈다.

공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미싱이다. 할머니의 수동 재봉틀 같은 건 이미 70년대 봉제공장에서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전기로 돌아가는 공업용 미싱은 가정용에 비해 힘이 좋고 속도가 빠르다.

두 가지 종류의 미싱 기계가 있는데, 하나는 직선으로 바느질이 되는 본봉 미싱이고 다른 하나는 특수한 형태로 박음질이 되는 오바로크용 미싱이다. 오바로크용 미싱은 직물의 모서리 부분을 깔끔하고 단단하게 정리하기 위한 ‘감침질’이 자동으로 되는 특수 미싱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리고 널찍한 테이블엔 다림판이 설치돼 있다. 가정에서 쓰는 다리미는 전기로 열판을 달구는 방식이지만 봉제공장에서 쓰이는 다리미는 세탁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팀형 다리미다. 보일러를 돌려서 다리미에 연결된 배관으로 뜨거운 증기를 내보낸다. 다림판에는 송풍 장치가 있어서 손을 데지 않도록 다리미에서 나오는 뜨거운 증기를 순간 아래쪽으로 빨아들인다.

공장의 제일 안쪽에는 재단을 위한 넓은 테이블이 있다. 여기서 종이를 오려 옷본을 만들고 본을 따라 원단을 오려낸다. 보통 원단을 여러 장 겹쳐 놓고 단번에 잘라낸다. 표면이 반들반들해서 잘 미끄러지는 소재의 원단은 겹쳐서 자르는 것도 수월치 않다. 큰 가위로 대담하고 재빠르게 자르는 것이 중요하다. 곡선 부분은 작은 의료용 전기톱과 같이 생긴 재단기로 자른다. 마름선을 따라 재단할 수 있도록 앞부분에 겹친 원단을 물리는 장치가 있다.

초보용 일거리, ‘실밥따기’

앞서 봉제공장을 소개받으며 경험이 전혀 없는 기자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물어봤었다. “실밥이나 따고 그래야지 뭐”라는 대답을 들었는데, 과연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손에 쥐어진 것은 쪽가위였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완성된 옷은 일단 반듯하게 다림질을 하고 구석구석 살펴보며 쪽가위로 늘어진 실밥을 정리해 납품한다. 손바느질을 하면 마지막에 매듭을 짓고 실을 끊으면 되지만 미싱으로 박음질을 할 경우 간혹 솔기에 실이 길게 늘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들을 일일이 잘라내 줘야지 깔끔해 보이기도 하고 옷이 상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늘어진 실밥이 어딘가에 걸리기라도 하면 꿰맨 솔기가 터지거나 박음선 부위가 쭈글쭈글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작정 앞뒤로 차근차근 살피며 늘어진 실을 찾았지만 몇 벌인가 작업을 마친 옷들이 내 앞에 쌓여갈 즈음엔 어떤 요령 같은 게 생겼다. 실밥이 늘어졌을만한 부분을 미리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선 미싱으로 박음질한 방향을 눈치챌 수 있었다. 만약에 셔츠의 등판을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쭉 박음질한 옷이 있다고 하면 미싱이 끝나는 지점인 맨 아래쪽 부분에 주로 실밥이 늘어진다. 기본 판이 되는 옷에 부속물처럼 덧붙는 주머니나 칼라 등지에도 실밥이 잘 늘어진다. 보통 두세 줄씩 나란히 박음질이 튼튼하게 들어가는 바지의 허리선 등지도 요주의 포인트이다.

화려한 여성복 등에 비하면 작업이 간단한 유니폼 종류라고 하지만 옷 만드는 것을 처음 보는 기자에겐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이었다. 일단 옷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자잘한(?)’ 부품들의 조립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옷의 가장 기본 재료인 재단한 원단만 하더라도 아주 조각조각 난 천 쪼가리처럼 보인다. 멋모르고 자투리인줄 알고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재단한 조각들을 ‘오바로크’ 미싱으로 각 귀퉁이를 깔끔하게 정리하거나 본래의 원단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심지를 붙여서 접거나 다리고, 꿰매 일종의 ‘모듈’을 준비해 둔다. 소매면 소매, 가슴 쪽의 앞판이면 앞판, 주머니면 주머니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준비된 각 모듈이 마치 선박이나 자동차의 의장작업을 거치듯 미싱사에게 건네져 조립되는 것이다. 큼직한 옷감을 적당히 자르고 꿰매서 앉은 자리서 옷을 만들어내는 줄 알고 있었는데 신기할 만큼 세밀한 가공을 거친 많은 부속으로 옷 한 벌이 구성되고 있었다.

그래서 규모가 크고 많은 물량을 소화하는 공장에서는 작업이 고도로 분업화돼 있다고 한다. 소매 부분을 만드는 사람은 종일 소매만 만들어내고, 나처럼 실밥을 따고 완성된 옷을 정리하는 ‘시다’들은 종일 미싱사들 곁에서 보조 일을 하는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옷걸이에 한 가득 걸려있고 곳곳에 무더기 무더기로 쌓여 있는 완성된 옷을 한 벌씩 들추며 실밥을 따내는 것은 꽤 단조롭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몇 시간 동안 옷의 구석구석을 훑어보며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찾고 있자니 눈이 침침해왔다. 또 마침 공장 체험 전날 손톱을 짧게 깎았는데 새 옷을 수십 벌 뒤적이며 만지다보니 손끝이 얼얼해 왔다.

상상했던 것보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간은 아니었지만 봉제공장이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먼지도 꽤 마셨다. 두세 시간 남짓 실밥을 따고 완성된 옷을 개서 정리하다 보면 상의며 하의며 앞섶에 작은 실오라기들과 천 조각, 먼지들이 잔뜩 들러붙어 있었다.

생 초보의 위안이었던 점심시간과 라디오

오후 1시가 가까워오자 체감상(?) 늦은 점심이 공장으로 배달됐다. 테이블에 수북이 쌓여 있던 작업물들과 완성된 제품들은 구석으로 밀어두고 먼지는 대강 툭툭 털고 공장 식구들이 둘러앉은 점심 밥상에 끼었다. 메뉴는 동태찌개다. 공장을 찾은 손님이라고 가운데 토막을 푸짐하게 한 그릇 퍼 준다.

밥상에 둘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주로 일에 대한 얘기가 오가지만 세상살이에 대한 이런저런 잡담이나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아무래도 오늘 밥상의 화젯거리는 기자가 된 거 같다. “몇 살이냐”, “장가는 갔느냐”, “고향은 어디냐” 등의 호구조사부터 시작해 “<참여와혁신>은 많이 읽히냐”, “월급은 얼마나 주냐”, “오늘 기사는 어떤 식으로 쓰는거냐” 등등 내 일에도 관심이 많다.

공장의 식구들은 48세에서 52세까지 비슷비슷한 연배다. 좀 일찍 결혼하신 분들이라면 기자가 자식뻘 되는 나이인 것이다. ‘애인 없으니 참한 색시 소개 좀 시켜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화제가 이내 자녀들 결혼문제로 넘어간다. 본인들 사례를 말씀하시는 중간중간 “제대로 듣고 있냐”며 재삼 확인을 잊지 않는다. “마음씨가 착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두 집안이 비슷한 수준이어야 분란이 적다” 등등. 아, 어머니께도 만날 듣는 얘기이다. “예, 예”하고 대답하는 수밖에.

공장 안에선 아침부터 저녁까지 라디오가 꺼지지 않는다. 평소 음악을 들으면 들었지 라디오방송을 찾아 듣지는 않았는데, 하루 종일 공장에서 귀를 기울이다보니 FM방송에선 참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된다. 시사정보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찬찬히 설명해 주는 뉴스 방송에서부터 첫 아이를 가진 신혼부부의 행복한 사연, 수십 년을 함께 살면서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무뚝뚝한 남편이 전화로 연결돼 어색한 목소리로 ‘사랑해’라고 고백하는 장면.

눈과 손은 단조로운 작업을 계속 반복하며 신경은 온통 라디오방송에 쏠려 있다. 딱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에이그, 저런”, “그래야지, 그럼” 하는 감탄의 추임새가 여기저기서 터진다. 감동적인 사연이 한 편 소개되고 나면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한 곡 흘러나온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 마치 ‘레치타티보’로 내용 흐름을 설명하고 ‘아리아’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오페라의 극 구성 같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평균 근속 30년·업계의 드림팀…공장의 베테랑 일꾼들

점심을 먹고 나선 다들 공장 밖으로 나와 잠시 바깥 공기도 쐬고 쉬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고 보니 공장 식구들은 거의 쉬는 틈 없이 계속 일하고 있었다. 단순한 작업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내 경우 가끔 담배도 피고 전화통화도 했는데 말이다.

‘시다’의 일까지 함께 보고 있는 생산직원 강신웅 대리(49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쉴 새 없이 옷의 부속물들을 만들어 미싱 앞으로 가져오고, 이미 완성된 옷들은 다림질해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미싱사인 이수원 생산실장(51세)의 미싱은 거의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고 있다. 동시에 남은 작업물들에 대한 확인이며 주문자가 요구한 주의사항 등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작업이 더뎌지거나 하면 문제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방법을 개선할 것인지도 상의한다. 그 와중에도 미싱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고 있다.

재단사이자 패턴사인 황태영 재단실장(52세)은 “일하기 싫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면서도 작업할 물량의 원단을 싹뚝싹뚝 잘라 놓는다. 옷본을 그려 만드는 것도 그의 일이다. 생산직원들이 천 쪼가리에서 실제 옷을 자아내는 일의 구체적인 실무를 맡고 있다면 황 실장의 일은 그 이전에 큰 얼개를 그리는 작업이다. 자기 몫의 일들을 뚝딱 해치우곤 “너도 같은 일을 삼십 년 넘게 해봐라. 지겹나 안 지겹나”라고 다시금 불평이다.

영업 일을 맡고 있는 이원근 부장(48세)은 공장 안에 있었는가 하면 어느새 다시 외근을 나가 있다. 작업할 물량을 가져오고 완성된 것은 납품하며 공장의 돈을 불리는 일에 열심이다. 공장 안에 있는 동안엔 일손이 바쁘면 간단한 작업을 거들기도 하고 완성된 제품을 포장하는 일도 손수 한다. 어느 곳에서 작업물량을 수주 받을 수 있을지도 부지런히 체크한다. 주문자에게서 요구사항을 재차 확인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이십 년 경력 정도는 우스운 정도’인 베테랑들이 모인 공장은 기계라기 보단 유기물처럼 자연스럽고 정교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기계장치는 일단 작동을 멈추고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한 이후에나 다시 작동하지만, 유기물이 움직이는 방식은 그와 다르다. 한 쪽 부분에서 움직임이 느려지면 주변의 다른 부분에서 그 만큼을 커버하면서 전체가 조화롭게 작동하는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새로운 작업에 도전…“스팀 다리미가 제일 무서웠어요”

그런 실력자들 앞에서 오후가 되자 내게 새로운 일감이 주어졌다. 역시 단순한 작업임은 마찬가지였다. 옷의 칼라 부분 부속물을 만들기 위해 적당히 잘린 원단에 본을 대고 연필로 마름선을 긋는 일이었다. 그리고 재단된 천에 하얀 심지를 붙이는 작업도 주어졌다.

심지는 공장에 와서 처음 보는 물건이었는데, 마치 흰색 거즈 붕대와 비슷하게 생겼다. 한쪽 까칠까칠한 면에 풀칠이 돼 있어서 천을 대고 다림질을 하면 풀이 녹아서 천에 붙는다. 주로 원단의 뒷면에 심지를 붙여서 늘어나거나 상하는 일을 방지한다. 심지도 용도와 재질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아마 식물섬유로 만든 아사심지와 실크심지가 대표적으로 많이 쓰인다. 실크심지의 경우엔 신축력이 좋아서 스판 등 신축성 소재의 원단에 강도를 더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

본을 대고 그리는 일이야 쉬웠지만 심지를 붙이는 일은 실수를 하기도 했다. 일단 스팀다리미에 대해 너무 겁을 냈다. 다리미 손잡이 부근의 레버를 누르면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데, 다림판에 설치된 송풍기가 돌아가는 와중엔 뜨거운 기운을 순간적으로 아래쪽으로 빨아들이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 다만 일솜씨가 미숙해 왼손을 너무 다리미 근처에 가까이 댄다든지 하면 뜨거운 증기에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무심코 몇 번 데고는 겁을 집어먹고 다리미를 무슨 폭발물인양 공손하게 다뤘다.

처음에는 한 장씩 심지를 붙였는데 “그래서 어느 세월에 다 끝내겠냐”며 여러 장을 겹쳐놓고 한꺼번에 눌러 붙이는 방법을 배웠다. 원단 두 장에 심지 두 장, 다시 그 위에 원단 두 장, 이런 식의 리듬으로 차곡차곡 작업물을 쌓는 것이다. 이때 순서가 어그러지거나 심지나 원단의 방향을 잘못 계산하면 원단의 겉면에 심지를 붙여버리거나 심지끼리 붙여버리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머릿속으로 이 순서를 계산하면서 작업을 하려니 자꾸 헷갈렸다. 스무 장을 한꺼번에 쌓아놓고 붙였는데 맨 밑단에서부터 잘못 계산한 것이면 시험 답안지 밀려 쓰는 격으로 우르르 나머지 것들도 잘못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일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게도 어느 정도 손에 익자 딱히 생각하지 않아도 손끝의 감으로 척척 쌓아 놓고 붙일 수 있게 됐다.

작업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 납기일이 얼마나 촉박한 지에 따라 다르지만 공장 체험을 나간 이틀 동안 거의 저녁 8시 무렵이 돼서야 일이 마무리됐다. 간단히 빗자루로 바닥에 쌓인 천 조각과 실 뭉치, 먼지를 쓸어 모아 100리터 들이 쓰레기봉투에 꽉꽉 눌러 담고 나서 하루 일과가 끝났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으니 간단하게 술 한 잔 마시고 들어가자는 제안이 누군가에게서 나왔다. 점심식사 때와 마찬가지로 작업물이 쌓여 있는 테이블을 대강 치워 놓고 족발과 컵라면, 열무김치 등을 차린 조촐한 술자리가 금방 마련됐다. 전북 고창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복분자주를 종이컵에 가득 부어주며 공장 식구들은 “이런 게 사는 재미지. 별 게 있어?”라고 큰 소리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