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단결하고 연대하자”
“제발 단결하고 연대하자”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11.0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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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부당한 현실과 투쟁하는 곳 어디에도 있다
답답한 현실에 던지는 전태일 열사의 외침
전태일과의 대화

ⓒ 전태일재단
‘전태일’이란 이름은 함부로 꺼낼 수 없는 역사적 이름이면서도 현실을 사는 우리에겐 언제나 곁에 있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주춤할 때 우리는 언제나 ‘전태일’이란 이름을 마음속에 되새겨 보기 때문입니다.

<참여와혁신>에서는 전태일 열사와의 가상의 대화를 마련해보았습니다. 전태일 열사를 현실에 불러낸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죄스러워 선뜻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하는 얄팍한(?) 기대감이 작용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상 대화의 결론도 결국 전태일 열사가 그러했듯이 현실에서 우리가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에 있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가상의 대화다 보니 혹여 독자들께서 읽기 거북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점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단결과 연대는 깃발만 나부껴

ⓒ 전태일재단
참여와혁신

먼저 호칭 문제부터 정리하면 어떨까요? ‘열사’라 칭하면 대화가 잘 안 될 것 같아서요. 이소선 어머니께서는 ‘동지’란 말을 좋아하셨다고 하시던데 막상 그렇게 부르기엔 좀 싸가지가 없는 것 같아서요.

전태일

편하게 불러. 나는 동지도, 선배도, 친구도, 형도, 오빠도 될 수 있어. 내가 원한 것은 위, 아래의 구분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 근로기준법이라는 얄팍한 법일지라도, 그 권리를 제대로 누리면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참여와혁신

그럼 형님이라고….

전태일

좋지.

참여와혁신

형님이 보시기에 2010년 한국이란 사회는 어떤 것 같아요?

전태일

참 세상 좋아졌어.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고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것을 보면 놀라워. 평화시장에서 일할 때는 미싱사들도 도시락 싸오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풍족해진 것 같아. TV, 냉장고는 기본이고 컴퓨터에 자가용까지…. 이런 세상에서 살아보지 못한 것이 약간은 한이 되네? 후후

참여와혁신

이러한 물질적 발전은 60~80년대, 지옥과도 같은 현장에서 묵묵히, 그리고 때로는 몸부림치며 일했던 노동자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우리가 그 혜택을 받고 있는 거구요.

ⓒ 전태일재단
전태일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우리야 우리 먹고 사는 것이 급했으니까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었지. 어쨌든 가난을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으니까.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였고.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일했지만 왜 가난은 곁을 떠나지 않았는지…(한숨).

참여와혁신

분명 전반적인 생활 수준은 6, 7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죠. 노동자들 중 일부는 ‘귀족노동자’란 말까지 듣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풍요 속 빈곤’이란 말처럼 당시와 같이 점심을 굶을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이 있고,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많아요.

전태일

생활 수준이 좋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향유해야할 가치도 많다는 거겠지? 단지 밥은 먹고 다닌다는 정도의 수준은 우리 때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 지금 보니까 집값이며 애들 교육비도 장난이 아니던데?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한편으론 ‘어떻게 이런 시대에 살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어. 뭐 우리도 살았던 인생이지만.

참여와혁신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청소년노동자 등 같은 노동자 내에서도 이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전태일

무식하고 처참했던 군부독재 정권이 끝나도 세상이 확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나봐. (심각하게)어쩌면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는지도 모르지. 그날(1970년 11월 13일) 이후 독재정권 하에서도 노동운동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 청계피복노조만 해도 많은 동지들이 구속당하고 노조가 해산되는 등 고초를 겪었지만 끝내 우리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멈추지 않았어. 이런 결실들이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나타났던 거지. 그런데 노동운동은 자만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바보회를 결성하고 재단사, 시다를 망라한 노동자들의 모임을 만들려고 했던 것도 결국 단결과 연대만이 우리를 지킬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지. 대학생 친구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 또한 노동자와 학생들이 연대해야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2010년에 단결과 연대는 깃발이란 형태로만 나부끼는 것 같아.

ⓒ 전태일재단
참여와혁신

현장에 취재를 나가다보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조합원들이 관심 있는 것은 임금인상 몇 %와 주식, 부동산투기, 자녀 교육이지 차별받는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 문제가 아니라구요.

전태일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들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어떤 사람이 편하게 먹고 마시고 인생 재밌게 지내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자기 좋아 개별화되다보면 결국 기업주에 길들여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봐. 노동자들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지 않으면 억압받고 소외되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가 없어. 내가 병원에서 어머니를 붙잡고 수차례 다짐을 받으려 했던 것은,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함께 싸우지 않으면 커다란 암흑 속에 조그만 창구멍도 낼 수 없기 때문이었어. 그 구멍을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내고 싶어서 내 몸에 불을 붙였던 거고.

다들 어디 간거야?

참여와혁신

어머니는 그날 이후 평생 형님과의 약속을 잊지 않으셨어요. 항상 힘없는 노동자들 곁에서 낮이나 밤이나 현장을 돌아다니시며 위정자들의 온갖 협박과 폭행, 구속까지 감내하시면서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로서 살고 계세요.

전태일

(숙연해진다) 어머니는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나에게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꺼다”라고 말씀하셨어. 내가 어머니에게 짐을 지워드린 거지.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 짐을 불평 한마디 없이 평생 해오셨고.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는 노동자들에게 단결하라고 계속 외쳤어. 그러나 누구도 그 말을 실천하지 않았어. 그래서 솔직히 화가 나. 그리고 답답해. 다리가 불편해 몸도 제대로 못 가누시는 양반이 추운 겨울날 노동자들을 보겠다고 나가 “단결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외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머니, 어머니 하며 받들어 달라는 게 아니잖아?

ⓒ 전태일재단

참여와혁신

……

전태일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의 100일에 가까운 죽음의 단식에서도, 절망의 공장이라 불리는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서도, KEC 공장 점거 투쟁 속에 분신한 금속노조 김준일 구미지부장에게도 가장 필요했던 건 동지들의 연대와 단결된 투쟁이 아니겠냐고. 힘이 없는데 어떻게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느냔 말이다. 또다시 나와 같은 죽음이 있어야 한단 말이야?

참여와혁신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전태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구. 평화시장 한 편에, 먼지 나는 공장 사이 연약한 어린 시다들의 현실이 내 눈을 찔렀듯이. 그리고 그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 비록 나는 해보려 해도 안됐기 때문에 내 몸을 던져 어린 동심으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많은 방법이 있지 않아? 사회도 민주화됐고. 그리고 노동운동 스스로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해. 일기를 써. 자신을 돌아봐. 돌아보면 자신이 보일 것이고 자신이 보이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거야.

참여와혁신

어려운데요. 그렇게 안했던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전태일

정말 그렇게 했었다고 생각해? ‘전태일 정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그 힘이 바로 전태일 정신이야. 힘은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로 커지는 거야. 이번에 내 40주기 추모제를 봐. 도대체 한국노총은 어디 간 거야? 언제나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치면서 한국노총 노동자들은 어디 간 거냐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업주를 상대로 투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추모제인데. 민주노총만이 내 후배야? 아니야. 한국의 모든 노동자들이 바로 나 전태일이고, 나 전태일이 바로 모든 노동자들이야. 이런 추모제에서도 연대가 안 되는데 어떻게 기업주, 정부와 싸울거야? 제발 ‘전태일 정신’을 말로만 외치지 마라. 기업주들의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는 투쟁이 있는 현장에는 언제나 내가 있으니까 굳이 외치지 않아도 나는 당신들과 항상 함께 하고 있다고.

ⓒ 전태일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