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고, 내다보고
돌아보고, 내다보고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11.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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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참여와혁신>은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기념해 ‘전태일 특집호’로 꾸몄습니다. 첫 장부터 끝장까지 가능하면 전태일과 관련된 기획기사들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처음 전태일 특집호를 발행하자는 생각을 했을 때 1년에 12권 발행되는 월간지로서 한 달을 통째로, 하나의 주제로 온전히 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무겁지 않게, 전태일은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을, 또 앞으로 우리와 같이 살아갈 것임을 기사로써 표현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그러나 ‘전태일’이 함의하고 있는 역사적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전태일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 노동계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지성인들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 왔습니다. 어떤 이는 전태일은 ‘투쟁’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민주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참여와혁신>은 오늘에 대한 반성이며 희망에 대한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실을 냉철히 평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 발 딛고 있는 나의 현실을 성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노동운동이 위기라는 사실은 이제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벌써 20년째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니까요. 현실 노동운동은 조합원과의 괴리, 국민과의 괴리, 당위로서의 실천 등으로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지금 전태일 정신이 필요하다고 외칩니다. 네. 저도 그 말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전태일 정신 또한 관념어가 된지 오래라는 겁니다. 전태일 정신 계승이라고 외친다고 더 좌익스럽거나 더 투쟁적이진 않습니다.

문제는 지금 나는 어디에 있으며 이 수많은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노동운동의 저열함을 누구의 탓이나 전체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됩니다. 어느 개인이 문제라고 하다면 그를 제거(?)하는 것으로 당장의 문제는 풀리겠지만 노동운동은 결국 어느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라는 모순이 남게 되고, 전체의 문제라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추상적인 전체만 문제된다는 점에서 개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과 전체, ‘나’와 노동운동은 서로의 일부분이며 또한 서로의 전체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결국 ‘나’에 대한 성찰, 그리고 노동운동의 근간인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정권이기 때문에 지속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정권이어도 노동운동의 위기는 장기화될 공산이 큽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도 우리 자신을 정확히 성찰하고 있지 못하니까요.

전태일 특집호는 지난 10월 30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된 전태일 문화제 취재로 인해 제 날짜에 발행되지 못했습니다. 이점 독자 여러분의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번 호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제작됐습니다. 먼저 표지 글씨를 써 주신 김지수 캘리그래퍼와 중간 표지에 작품을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만화 ‘태일이’의 최호철 작가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의 사진 자료 및 전태일 40주기 관련 자료 사용에 도움을 주신 전태일재단과 40주기 행사위원회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