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봉은사를 ‘밟았나’
그들은 왜 봉은사를 ‘밟았나’
  • 안형진 기자
  • 승인 2010.11.0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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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이 만들어낸 촌극을 바라보며

안형진

조금 시간이 지난 일이기는 합니다만, 얼마 전 이른바 ‘봉은사 땅 밟기’ 동영상이 인터넷 상의 커다란 화제를 낳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동영상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신들을 ‘찬양인도자 학교’ 소속이라고 밝힌 젊은이들이 다짜고짜 봉은사에 들어가 기독교식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한 학생은 기둥을 부여잡고, 다른 학생은 경내에 무릎 꿇고 앉아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릅니다.

기도를 끝낸 젊은이들은 “이 땅은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선포했다. 하나님에 의해 이 땅은 파괴될 것이고, 하나님에 의해 회복될 것이다”라며 “온전히 하나님만이 승리하실 것”이라고 선포했다고 합니다.

“우상은 무너지고 주의 나라 되게 하소서” (동영상 속 자막)
“주님의 자리에 크고 웅장한 절이 있어 마음이 아프다” (봉은사 땅밟기에 참가한 젊은이의 인터뷰)

동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한 목소리로 이들을 비난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다른 종교를 포용할 줄 모르는 자세가 치졸하다는 것입니다.

급기야는 찬양인도자학교를 주관하는 최진호 목사가 직접 나서 사태를 수습했습니다. 그는 “우리들도 비상식적이고 무례했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영상 속 학생들도 자신들의 생각이 짧았다고 인정하고 실수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사과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서 밟았다’는 젊은이들

▲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 캡쳐 화면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은 젊은이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들이 그렇게나 크게 잘못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신앙과 가르침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기독교는 ‘유일신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신들은 ‘우상’ 입니다. 그들은 야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민족이 멸망에 이르렀던 일들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온 민족이 축복받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성경을 통해 배워온 사람들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교회에서 “온 세상에 하나님을 선포하게 하는 우리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든지 “곳곳에 남아 있는 우상들을 모두 깨뜨리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기는 우리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식의 기도는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대한민국 기독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은 지극히 옳은 일을 한 것입니다. 이는 동영상 중 나와 있는 젊은이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확실히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밟고 지나간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우리를 보내셨다고 믿습니다.”

‘신념’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가치를 ‘신념’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나는 별 이유없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신념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굳이 신념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는 민망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신념은 자신, 혹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유한 생각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 ‘신념’이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이 서로 부딪힐 때 발생하곤 합니다.

누군가의 신념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 전에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신념들이 부딪치는 공간을 중재해 줄 완충지대가 없어 보입니다.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집단이 서로의 생각을 주장하면 일견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그저 자신의 입장만을 반복하는 공허한 외침이 되곤 하는 것입니다.

만일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지극히 소수이거나, 사회·정서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야기를 할 때는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을 힐난하고, 다시는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도록 막아버립니다.

이번 ‘봉은사 땅밟기’ 논란으로 찬양인도자 학교는 혼쭐이 난 셈이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성역 안에서 계속 말할 것입니다.

“한국에 가득한 우상들을 깨뜨리고 힘차게 나아가 주님의 이름을 선포하십시오”

그것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영상 속 젊은이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적절하지 못한 장소에서 적절하지 못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동영상 속 젊은이들과 같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지나치게 배타적인 자세도 문제입니다만 서로의 신념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공론의 장으로 포용할 수 있는 사회, 아직 우리에겐 너무 머나먼 길일까요? 

안형진의 皆忘難以(개망난이)  모두 어려움은 잊고...행복해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