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님’, 사과 부탁드립니다
‘관계자님’, 사과 부탁드립니다
  • 안형진 기자
  • 승인 2010.11.12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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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했던 작은 생명들을 모독하지 말아 주세요

▲ 안형진 hjahn@laborplus.co.kr

보도자료를 하나 받았습니다. 제주의료원의 유산율이 평균 유산율보다 높다는 내용이 담긴 의료연대 제주지역지부의 자료였습니다.

흥미를 느껴 시작하게 된 취재활동에서 저는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의료원 관계자’의 망언

기사에도 썼지만,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30%가 유산을 경험한 것은 노·사가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사측이 이 자료를 대하는 태도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름은 알아서 뭐하시게요? 그냥 의료원 관계자라고 해주십시요”라고 밝힌 한 관계자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기자님, 이거 하나만 이야기 합시다. 현재 우리나라 여성의 자연유산율이 20%입니다. 그럼 보자구요. 노조에서 발표했다는 그 자료에 인공유산도 포함되어 있을지 어떻게 압니까?”

흡사 익숙한 아침드라마에서 원치않는 임신을 한 자신의 애인에게 “그 애가 내 아이인지 어떻게 알아?”라고 말하며 도망쳐버리는 무뢰한을 보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니,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났습니다. 사람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관계자님’ 아기였어도 똑같이 말할 건가?

정확한 사실은 자세한 조사가 있어야 밝혀지겠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기본적인 사실만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분명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유산율은 높습니다. 게다가 이미 태어난 아기들도 7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노조에서 주장하는 열악한 노동조건 혹은 다른 이유가 있을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제주의료원의 근무환경과 유산의 관련성이 논리적인 설명으로 불가하다고 하더라도, 그럴만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적어도 도의적인 사과의 뜻은 표명하는 것이 옳습니다.

소중한 작은 생명이 엄마의 뱃속에서 영문도 모르고 사그러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고, 어떤이에게는 가족 모두의 희망의 씨앗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소중한 아기가 가혹한 노동의 대가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얼마나 참담한 심정일지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이는 명백히 조사에 참여한 간호사들을 비하한 발언이며 사그러든 작은 생명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신 제주의료원 ‘관계자 분’께 말씀드립니다. 노사관계의 문제는 일단 접어두더라도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해 분명히 사과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의료원의 노사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하더라도 노사 관계자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법입니다.
 

안형진의 皆忘難以(개망난이)  모두 어려움은 잊고...행복해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