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 ‘도미노’ 되나…숨죽인 GM
자동차업계 ‘도미노’ 되나…숨죽인 GM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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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자국 자동차시장 보호 분위기 강화될 듯

현대·기아차 ‘부담’ GM대우차·부품업체 ‘기회’


■ 류기천 _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

 

올해 자동차산업 최대 뉴스는 세계 2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델파이가 파산보호신청(Chapter 11)을 한 것이 될 것이다. 델파이의 파산보호신청은 2월 파산보호신청을 낸 자동차 차체 생산업체인 타워 오토모티브와 5월 신청서를 낸 내장재 생산업체인 콜린스 앤드 애이크만에 이어 올들어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로는 세 번째 파산신청이다. 지속되고 있는 GM과 포드 등 미국 완성차업체의 부진과 함께 미국 최대 부품업체인 델파이의 파산보호신청은 세계 자동차업계의 판도 변화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미와 미시건, 디트로이트는 더 이상 세계 자동차산업의 중심지가 아니다. 자동차 자본은 갈수록 글로벌화되고 있다“라는 자동차산업 전문가의 말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현 주소를 말해 주고 있다.  

 

델파이, 올들어 미국 부품업체 중 3번째로 파산신청
델파이는 지난해 286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세계 2위 자동차 부품업체이다. 미국 13개주에 31개 공장을 갖고 있으며, 본사는 디트로이트 교외 트로이에 위치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18만5천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1999년 GM에서 분리 독립한 델파이는 핵심 고객인 GM이 판매부진에 시달리는 가운데 과도한 인건비 부담 등으로 인해 지난해 48억 달러의 적자를 냈으며, 올 상반기에도 7억5천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였다.

델파이는 GM을 상대로 금융지원을 요청하고 임금 삭감과 채무 조정 등의 자구책을 강구했지만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파산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델파이는 미국 파산법에 따라 노조의 동의 없이도 임금 삭감 및 복지혜택 축소, 감원을 할 수 있게 된다. 델파이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밀러는 구체적인 감원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상당한 수의 직원을 감원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공장 폐쇄 등 구조조정을 거쳐 이르면 2007년 중반 파산보호에서 벗어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델파이가 파산신청이라는 극약처방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늘어나는 인건비 때문이다. 완성차업체 수준인 시간당 27달러에 이르는 임금수준으로는 글로벌 부품업체와 경쟁하는 것이 어려워졌으며, 특히 미국 자동차노조(UAW)와 합의한 최대 110억 달러에 달하는 기업 연금과 의료비 지원 부담은 경쟁력 하락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GM이 델파이의 고령화된 노동력을 흡수하는 창구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GM의 경영악화로 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자 4천여 명의 유휴인력 발생으로 분기당 1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델파이측은 1999년 모 회사였던 제너럴모터스(GM)로부터 분사할 당시 GM측과의 합의에 따라 미국자동차노조(UAW) 소속 근로자들에게 GM의 임금 수준인 시간당 27달러를 지급하고 퇴직한 근로자 4000명에게도 매년 4억 달러를 들여 임금과 기타 혜택을 부여해야만 했던 점이 회사의 어려움을 자초했다고 주장했다.

과도한 인건비 부담이 위기의 원인
이런 상황에서 핵심 고객인 GM의 생산 감소는 델파이의 경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델파이는 매출액의 50% 이상을 GM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GM의 부진은 곧바로 델파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미국 내 GM의 자동차 생산규모는 550만대에서 450만대로 감소하였으며, 이는 바로 델파이의 매출 감소와 유휴 설비 및 유휴 인력 증가로 인한 고정비 및 인건비 증대로 이어졌다. 또한 GM이 판매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실시한 인센티브 확대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부품조달 코스트 삭감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도 델파이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한 요인이 되었다.

미국 연방법원이 델파이의 파산보호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델파이의 현 경영권은 유지되면서 원리금 상환, 이자 지급 등 채무가 동결되고, 델파이는 120일 이내에 채무이행계획과 영업활동계획을 포함한 구조조정 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한편 델파이는 구조조정을 위해 10월 21일부터 노조와 협상에 들어가 12월 16일까지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우선 시간당 임금을 현재 수준의 절반 이하인 10~12 달러로 낮추는 협상이 진행될 것이며, 연금 혜택 축소도 주요 안건이 될 것이다. 근로자의 30%를 감원할 계획이며, 사무직 은퇴자들 중 65세 이하에 대해서는 의료 혜택 삭감을 고려 중이며, 65세 이상에 대해서는 2007년부터 의료 혜택을 중단할 계획이다. 만약 협상이 결렬될 경우 노조와의 기존 혐상안 파기를 법원에 요청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와 함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해, 미국 내 공장의 상당수를 매각하거나 통폐합할 예정이다. 파산보호신청에 따라 일단 델파이 측이 협상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것으로 보이나, UAW를 비롯한 노조 측이 델파이의 임금 삭감 및 구조조정안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협상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델파이의 위기는 GM의 위기로 이어져
델파이의 파산보호신청이 자동차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델파이의 모회사인 GM은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델파이의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부품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GM의 생산 중단이라는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지난 98년 플린턴에 있는 프레스공장에서 54일간 파업이 발생했을 때, 북미 GM 공장의 생산이 모두 중단되었으며, 이로 인해 25억 달러의 손실과 22만5천대의 생산 차질이 빚어졌던 경험은 이러한 우려를 크게 하고 있다.
또한 GM과 델파이의 공동 제품 개발 활동이 위축됨에 따라 계획 중인 신제품의 출시가 늦어지거나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2005년말 출시 예정인 대형 SUV의 경우 델파이 부품을 대거 탑재할 계획인데, 현재 상황으로는 출시 시기가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GM의 판매 회복이 어려워지고, 델파이의 회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델파이의 회생 노력이 실패하게 되면 GM의 파산으로 연결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99년 델파이 분사 당시 GM과 맺은 조건 때문에, 델파이가 파산할 경우 GM에 근무했던 종업원들의 의료 및 연금을 부담하게 되어 있어 110억 달러의 추가 부담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자동차 할부금융 자회사인 GMAC의 지분 매각, 충분한 보유 현금 등을 고려할 때 GM의 파산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미국 내 생산 차질도 예상되고 있다. 델파이의 일본 자동차업체에 대한 부품 공급 규모는 약 10억 달러 정도인데, 이중 도요타가 40%인 4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어 이번 사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델파이의 2차 벤더로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칼소닉칸세이, 야자키, 아케보노브레이크공업 등의 경우 납품한 부품의 대금 결제가 지연되거나 이루어지지 않는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미국과의 자동차 통상마찰 심화될 듯
현대·기아차를 포함한 국내 자동차업계도 크건 작건 이번 사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먼저 현대·기아차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델파이로부터의 부품 구매 비중도 작을 뿐 아니라 대부분 미국 델파이가 아닌 멕시코, 중국, 프랑스 등에 위치한 델파이 공장에서 부품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다른 지역의 델파이 공장들은 파산보호신청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자동차 통상 마찰도 보다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GM, 포드의 경영난에 이은 미국 최대 부품업체인 델파이의 파산보호신청으로 자국 자동차산업 보호를 주장하는 미국 내 여론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인 5대호 지역의 경우 빅3의 경영난으로 실업률이 크게 상승하는 등 경제가 부진했는데, 금번 델파이의 파산보호신청으로 지역경제의 피해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의회 등 정치권에서 한국과 일본 자동차업체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시도가 한층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GM대우의 경우 역시 델파이 의존도가 보다 높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부품을 한국델파이로부터 공급받고 있기 때문에 생산차질 등의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며, 미국 델파이의 구조조정이 진행될 경우 한국델파이의 생산능력이 보다 확충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GM대우의 반사이익이 기대되어, 생산과 수출이 보다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델파이의 구조조정으로 GM에 대한 부품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GM은 지역간 생산포트폴리오 조정의 일환으로 GM대우의 생산 물량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크며, 이럴 경우 GM대우의 수출은 크게 증가하게 될 것이다. 올해 들어와 미국 GM의 생산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GM대우의 생산은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 앞으로 이러한 추세가 보다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국내 부품업체들의 경우 델파이의 구조조정에 따라 미국 내 생산이 줄어들 경우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GM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업체들은 대우정밀, 만도, 한라공조, 동양기전 등인데, 델파이의 구조조정과 사업영역 조정에 따른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자동차산업 전문가들은 “GM에 직접적으로 부품을 수출하고 있는 국내업체들의 공급 규모가 늘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력을 갖춘 부품업체들도 새롭게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GM이 글로벌 아웃소싱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국내업체들에게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델파이와 UAW 협상이 관건
앞으로 구조조정을 둘러싼 델파이와 UAW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따라 세계 자동차시장의 경쟁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델파이가 UAW와의 인원조정, 임금 삭감 등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경우 GM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높아지고, 미국 중소형차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GM이 델파이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으면서 매년 20억 달러 이상의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델파이의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향상은 GM의 경영 재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JP 모건의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인 제임스 방하트는 “GM이 델파이에 대한 재정지원을 마다하고 파산보호신청을 하도록 놔둔 것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며, “계약 만료 이전 UAW와의 협상을 밀어부칠 수 있는 어떤 것도 GM에게는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GM은 UAW와의 계약에 따라 건강보험, 퇴직금 비용으로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량 1대당 1500달러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델파이의 경영위기가 파산보호신청이라는 극약처방으로 비화되면서 오는 2007년 만기가 되는 UAW와의 근로계약 협상에서 GM의 발언권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간 GM은 건강보험, 퇴직금 인하 등을 놓고 UAW와 협상을 벌여 왔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이번 델파이의 파산보호신청으로 노조와의 협상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GM, 포드의 부진에 이은 델파이의 파산보호신청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며, 그 이면에 놓여있는 미국식 노사관계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식 노사관계는 기본적으로 상호 간의 대립을 가정하고 있는데, 이는 신뢰를 바탕으로 생산적이고 협조적인 관계를 발전시켜가는 모델과는 큰 차이가 있다.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전제로 한 협력과 성과 공유라는 차원이 아니라 대립적·거래적 관계 하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확보하는 협상이 이루어져

왔다.

 

미국식 노사관계 재검토 요구
현재 델파이, GM 등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강보험, 연금 등의 문제도 90년대 후반 노사간 합의에 의해 탄생한 것이지만, 이후 경영환경 변화로 기업의 지불능력을 크게 넘어섰으며, 기업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한 구조조정 전문가가 “이번 델파이 사태가 전체 산업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현재와 같은 협상 구조 하에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임금과 단체협상을 둘러싸고 대립과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국내 자동차업계 역시 이번 델파이 사태가 주는 교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일지라도 경영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바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과, 위기에 빠졌을 때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것이다. 결국 긴 안목에서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 어떤 길인지,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제라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