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의 ‘낮은 목소리’
지하철의 ‘낮은 목소리’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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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에게 쾌적한 지하철을 선물하는 묵묵한 ‘어머니의 손’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의 핏줄 지하철. 사람들은 아침마다 채 뜨지 못한 눈을 비비며, 밤에는 천근만근인 다리를 안고 몸을 싣는다. 출근시간 때면 민망하게 낯선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고, 막차에는 싸한 술냄새가 밤의 정취와 어우러진다.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기도 하고, 얼굴은 보여도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지하철 철로를 사이에 두고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떠나는 사람을 바라보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 사라지기에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지하철. 영화 같은 진실이 이루어지는 곳도 바로 지하철이다. 그렇게 서민의 삶과 애환이 담긴 지하철은 지하철이 내뿜는 금속성에도 불구하고 왠지 따뜻하다.
사실 그것은 지하철 곳곳에 우리네 ‘어머니’들의 손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월 앞에 작아진 몸으로 지하철 곳곳을 청소하는 그네들의 정성스런 손길이 묻어나서일까. 지하철은 화려하거나 특별하지는 않지만 따뜻하고 편안하다.

 

 

“왜 우리 월급 좀 올려주려고?”
바쁘게 지하철을 드나드는 사람들 속에서 작업복을 입고, 바닥을 닦고 쓰레기를 주으며 지하철 여기저기를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청소하는 이들의 모습은 정지된 그림 같기도 하고, 전혀 별개의 사진을 합성한 것처럼 어색하기도 하다.
인사를 하며 다가가자 ‘왜 나한테 인사를 하지?’하는 의구심이 가득 담긴 얼굴로 한 번 쳐다보고는 하던 일을 계속 한다. 신분을 밝히자, 대뜸 하는 한 마디가 “왜 우리 월급 좀 올려주려고?”다. 다른 역에서 만난 아주머니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하철공사 소속이 아니라 청소용역업체 직원이다. 월급은 용역업체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급이 50만원에서 70만원 정도. 상여금이나 다른 여타의 수당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한 달 일하고서 손에 쥐는 돈은 보통 70~80만원 수준이다. 가장 많이 받아봐야 90만원 정도. 청소 중에서도 가장 힘든 지하철 외부청소는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계약구조상 한 달에 84만원 정도 받는다.

“교통비하고 밥 사먹고 하면 얼마 남기나 하나? 옷 한 벌 제대로 못 사 입지.”
“매달 적자지 적자. 내가 움직일 수 있고,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해서 일하지. 이것 받고선 한 달 생활 못 해.”
“결혼식에 축의금 내고, 보험금 내고. 그러면 남는 게 없지.”
“월세 내고 밥 먹고 그러면 혼자 버는 사람들은 정말 이 돈으로 한 달 생활하기 힘들어요.”
“물가도 얼마나 비싼데. 시장에 갔더니 배추 한 포기에 3000원 달래. 김치도 못 담가 먹겠어.”
“월급 올려준다고 하더니 5000원 올려준 적도 있어. 우리 딸이 5000원 인상됐다고 하니까 5만원 올랐는데 5000원이라고 장난치는 줄 알았나봐. 자꾸 ‘정말 5000원이야?’라고 묻더라구.”
“이 돈 받아서는 한 달 생활이 안 되니까, 낮에는 지하철에서 일하고, 밤에는 다른 일하는 사람도 있어. 두 가지 일을 하는 거지.”
“우리 아저씨하고 나하고 번 돈 합해도 150만원 정도 될까. 둘이 번 것보다 우리 아들이 한 달 받는 돈이 훨씬 많지.”

할 말 없다던 아주머니들이 월급이야기에는 모두들 한마디씩 보탠다. 20년 동안 일을 해도 2~3년마다 청소용역업체가 바뀌다 보니, 퇴직금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매번 ‘신입사원’ 신분이다. 모두 월급이 너무 적다고, 조금이라도 더 올려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이다.

 

“아줌마도 동창회 해요?”
지금은 노동조합이 있어서 덜하지만, 예전에는 일하는 것보다 힘든 게 고용불안이었다. 용역업체에 청소물품 구입이나 이런저런 요구를 많이 한다거나 업체 마음에 안 들면 다음날부터 나오지 말라고 할까봐 마음 졸일 때가 많았다.
또 청소를 한다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 부딪힐 때면 상처가 가슴을 찌른다.
“공중전화에서 친구랑 전화하는데, ‘동창회 때 보자’ 하니까 옆에 있던 남자가 ‘아줌마도 동창회 해요?’ 그러는 거야. 청소하는 아줌마는 학교도 안 나오고 그랬을 거라 생각한 거지.”
“난 동창들한테도 아직 청소한다는 이야기 안 해. 아직까지 청소한다 그러면 그냥 좀 깔보는 거 있잖아.”
마땅히 쉴 만한 곳도 없었다. 지금이야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지하실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곳에서 고단한 몸을 잠시 쉬곤 했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는 설명이다.


 

지하철 깨끗해지는 만큼 몸은 아파오고
“한 달에 한두 번은 물리치료 받으러 가야 해. 안 그러면 일 못 해.”
아주머니들의 업무가 청소다 보니, 쓸고, 닦고, 밀고, 걸레 빨고, 대부분 팔을 쓰는 일이다. 아픈 곳은 없냐고 물으니, 왜 없겠냐면서 모두 어깨로 손이 간다. 제일 아픈 곳이 어깨고 다음이 허리란다.

“나이가 먹었으니, 여기저기가 안 아픈 곳이 없어. 그래도 어떡해. 일 해야지.”
“곧 겨울 오는데, 날씨 추워지면 무릎도 아프고 그래.”
“그래도 요즘엔 많이 좋아졌어. 겨울엔 따뜻한 물이 나오거든.”
하루 종일 지하철을 청소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또 집안 청소를 해야 하니 작은 체구들이 버텨내는 것만도 신기하다.

늘 하는 일이라 이골이 나긴 했지만, 봄·가을로 1년에 두 번하는 ‘왁스 청소’는 정말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요즘 왁스 청소가 한창인데, 지하철 역사에서 쇠파이프 몇 가닥으로 만든 철구조물에 올라가 지하철 천장에 매달린 거미줄 제거하고 닦는 일이다. 천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닥까지도 ‘빡빡’ 닦아야 한다. 밑에선 몇 사람이 바퀴달린 구조물을 붙들고, 몇 사람은 구조물 위에서 청소를 하는 모습은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그래서 이 작업을 하고 나면 ‘대한민국 아줌마’들도 한차례 몸살을 앓는다.

요즘엔 테러 예방을 내세워 역사 내의 휴지통을 없애 버려서 아주머니들이 더 힘이 든다.
“잠시도 쉴 틈이 없어.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니까. 한 바퀴 돌고나면 또 버려져 있고. 다들 왜 그러는지 몰라.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가지고 가야지.”
쓰레기 ‘무단투기’ 외에도 이네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술기운이겠지만 지하철 한 쪽에 용변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과음을 하고 내용물을 토해 놓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이들의 새벽 청소는 힘겨운 전쟁터다.

 

자식들에게 좋은 일 있을 때 가장 행복
“딸 시집 보내야 되는데, 그게 젤 걱정되지. 이 돈 받아서는 딸내미 혼수는 생각도 못 해. 뭐 형편이 안 되니 많이 해 줄 수도 없고. 그냥 물만 떠 놓고 식 올리는 거지.”
“시집은 지가 벌어서 가야지. 남들처럼 혼수 장만해 줄 수도 없는 거고…”
딸이 결혼할 때가 되었지만, 부모로서 넉넉히 혼수를 장만해 줄 수 없는 게 안타까운지 아주머니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시집은 자기가 벌어서 가야 된다고, 키워줬으면 됐지 뭘 더 해주냐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한숨 섞인 “잘해서 보내면 좋겠지”란 작은 목소리가 더 진심에 가까워 보인다.

“챙겨주지도 못했으면 바라지도 말아야지.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살 테니까 돈 벌어서 즈그들이라도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애들한테 돈 달라고 안 해요.”
“가장 행복할 때? 음…뭐 다른 거 있어. 자식들한테 좋은 일 생겨서 기뻐하는 모습 볼 때 가장 좋지.”

지하철 청소용역의 임금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지하철공사와 청소용역업체 간의 최저낙찰제와 양당단가제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청소 아주머니들이 받고 있다. 대구지하철 사고로 지하철 차량 내장재가 바뀌면서 일의 양과 강도는 늘었지만 혜택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이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바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양보하며 참아온 것처럼 오랫동안 양보하고 참아온 이들이 최근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의 목소리가 ‘청소 아줌마’라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지 않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어머니’들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차창에 얼굴이 거울처럼 선명하게 비춰진다. 문득 얼굴이 비칠만큼 밤새 유리창을 닦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차창에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