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동차공장 노동자의 아름다운 ‘이중 생활’
한 자동차공장 노동자의 아름다운 ‘이중 생활’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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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일터, 이 곳에서 농아인과 함께 일하는 날을 꿈꿉니다”
쌍용자동차 조립 1팀 박정근 기감

▲ 쌍용자동차 조립 1팀 박정근(39) 기감.

‘낮에는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수화 활동하는 이중(?)인격자.’


쌍용자동차 조립 1팀 박정근(39) 기감이 운영하는 개인홈페이지에는 이런 문패가 걸려있다.
직장생활과 수화통역을 병행한 지 올해로 15년째가 되는 그는 자신을 ‘수화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아직까지 일반인에게 낯선 ‘수화통역사’는 농아인과 일반인의 의사소통, 농아인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입’이 되는 사람으로, 전국에 70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35만 명(한국농아인협회 추청)에 달하는 농아인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 수화통역사의 절반 이상이 박정근 기감처럼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농아인들의 경제사정상 무보수로 봉사하거나 적은 통역료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중생활’을 해야 한다. 

 

연·월차, 잔업·특근도 수화활동 위해
박 기감이 수화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참 사소하다. 군 생활을 하면서 제대하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우연히 농아인들이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된 게 전부다.
88년부터 수화를 배우면서 통역 봉사를 하다 2002년에 자격증을 따서 지금은 농아인협회에서 수화 강의도 맡고 있다. 그의 활동 분야는 다양하다. 농아인들이 취업을 할 때 면접에 동행하거나, 선거 유세·대중집회 등의 행사 통역은 물론 병원 출입 등과 같은 일상에서도 농아인들은 ‘통역사’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되도록 저녁시간은 수화 활동에 쓰기 위해서 주·야간 교대 부서에서 주간 부서로 지원을 했지만 ‘입’이 필요한 때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가능한 날이면 특근과 잔업을 마다하지 않는다. 잔업·특근 수당을 받는 대신 필요한 때 대체휴가를 쓰기 위해서다. 그래도 안 되면 연·월차를 활용한다.

 

‘일터의 소중함’과 ‘내가 가진 많은 것’ 되돌아 봐요
자동차회사의 임금은 시급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잔업·특근 수당을 제외하면 월급봉투가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월급봉투가 얇아진 만큼 행복이 더해진다고 말한다. “수화활동을 하면서 보면 농아인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 우리 회사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있지만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일자리’라는 걸 가져 보는 게 평생소원인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내 일터가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항상 되돌아보게 되죠.”
동행 면접까지 하면서 어렵게 취업시켜 놓은 농아인 친구들이 결국 냉대와 의사소통 문제 때문에 몇 달 못 가 그만두는 것을 지켜보면 그는 ‘내가 옆에 있었더라면’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기업에 장애인 의무 고용비율이 있잖아요. 한두 명이라도 우리 회사에 취업이 되면, 제가 옆에 있으니까 낫지 않겠나 싶어서 인사팀도 찾아다니고 백방으로 알아 봤지만 쉽지 않았어요.”
박정근 기감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 이런 작은 일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늘 아쉽다고 말한다.
“가끔 친구들이 ‘니네 회사 좀 들어갈 수 없냐’고 말을 꺼낼 때면 그렇게 마음이 미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 친구들이 대기업이라는 우리 회사의 ‘간판’ 때문이 아니라, 입이 되어줄 사람이 있는 직장을 원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기업 울타리 벗어나 지역사회와 연대하는 노동운동 꿈꿔
박정근 기감의 특이한(?) 이력은 수화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93년부터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해서 최근까지 현장조직에 몸을 담았다. 노조운동의 특권화를 고민하던 그는 새로운 방식의 활동을 위해 지난 달 현장 조직을 탈퇴했다.
“수화나 노동운동이나 공통점은 자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가짐인데, 어느 날 보니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것을 제일 먼저 챙기고 있었어요. 그동안 순수한 열정으로 함께 해 온 동지들이었기에 망설임도 많았지만 저는 또 제 나름대로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박정근 기감이 말하는 ‘나름의 역할’은 노동자들의 노동의식과 노동조합의 연대정신을 다시금 생각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임금인상 투쟁으로 노동자 의식이 깨어날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때와는 좀 상황이 달라요. 저는 지역 사회와의 연대,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통해 노동자들의 의식도 쑥쑥 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동료들이 기본급 67만원, 잔업철야를 해도 월급 100만원을 채우기 힘든 농아인들의 일터를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돈으로 때우는’ 봉사활동을 욕하는 사람도 많지만 때로는 몇 푼 안 되는 돈이 한 가정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 작은 관심이 한 사람의 생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당부도 빼놓지 않는다. 

 
나와 타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일
일주일에 두 번 농아인협회 강의에, 저녁시간이면 자신을 필요로 하는 농아인 곁으로 달려가는 박정근 기감은 올해 들어 더 바빠졌다. 수화통역사인 아내의 권유로 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했기 때문.
“어느 날 아내가 당신의 지식과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삶의 질도 높아질 수 없다고 말하더라구요. ‘맞다, 나는 누군가를 세상과 만나게 해주는 사람이지’, 하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자동차공장 노동자 생활 15년 만에 시작한 공부가 쉬울 리 없지만 수화 통역의 세계도 점점 전문화되어 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게을리 할 수 없는 일 중 하나다.

‘이중생활’아니라 ‘삼중생활’이면 어떻고, ‘투잡스’ 아니라 더한 것이면 어떠랴. 그에게 수화는 자신과 타인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하는 ‘윤활유’고, 일터의 소중함과 자신의 위치를 늘 비춰보게 하는 ‘거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위해 수화 한 동작 부탁했더니 대번에 거절한다. “수화는 소통을 위한 것이지 사진을 찍기 위한 것이 아니거든요.” 미안하다면서도 단호하게 말하는 그이의 쑥스러운 미소 속에 ‘진정성’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