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특집호’에 대한 변명
‘전태일 특집호’에 대한 변명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12.0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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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참여와혁신>을 보고 놀라신 독자들이 꽤 있었던 모양입니다. <참여와혁신>이 한 권을 통째로 ‘전태일’에 관해 다루었다는 놀람도 있었겠지만 그동안 노사관계라는, 한국사회에서는 극히 대립적인 관계를 객관적 시각으로 다루려고 애썼던 이전 행보와 달리 ‘노동계 입장’에서만 기사를 다루었다며 ‘<참여와혁신>이 일부 ‘좌파 언론’과 똑같은 행보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참여와혁신>이 본색을 드러냈다’는 좀 더 적나라한 표현까지 나왔습니다.

<참여와혁신>이 특집기획으로 ‘전태일’을 다루고자 했었던 이유는 바로 현실에 존재하는 우리 스스로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점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경영계나 노동계 누구에게만 해당되고 누구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노동계의 성찰을 더욱 강조했다는 점에서 ‘편향적’이라고 보는 일부 독자들의 시각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한국사회는 수많은 민주화 투쟁을 통해 오늘의 사회질서를 이룩했지만 아직도 민주화 과정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진국’과 ‘국격’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태일’은 단지 노동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모든 사람의 지표가 되는 인물이라고 우리는 판단했습니다.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대해 당당히 맞섰던, 자신의 성찰을 통해 현실의 문제에 접근하려는 태도는 현 시기를 살아가는 한국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사회발전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70~80년대의 열악하고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의 극복은 한국사회의 고도성장과 맞물려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사회발전에 필수적인 밑거름입니다. 과거와 같은 열악한 환경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면 우리가 세계 10위권의 무역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으며, 반도체, 휴대폰 등 전 세계적 첨단산업을 선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회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에 따라 자신들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 그리고 실천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맹아적이지만 ‘전태일’이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태일’은 의미가 있다고 <참여와혁신>은 판단했습니다. 비록 그러한 의도에 훨씬 못 미치는 글을 보여드렸다는 점에서 독자 여러분께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전태일’을 특정한 정파 혹은 노동계의 전유물로 판단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번 12월호에는 지난 호와 달리 짧은 현장 기사들을 많이 다루려고 했습니다. <참여와혁신> 기자들이 현장을 돌아다니며 가졌던 의문, 궁금증 등을 글로 표현해보려고 했습니다. 장기투쟁사업장, 한국노총 임원선거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담아보려 했는데 독자 여러분의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