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대비, 소통과 현실인식이 우선
복수노조 대비, 소통과 현실인식이 우선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0.12.0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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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전국단위노조 대표자 1,500명 대상 워크숍 진행
조합원과 상층 지도부의 소통과 민주적 운영이 중요
[현장] 한국노총 단위노조 대표자 워크숍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오는 2011년 7월, 복수노조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의 노사관계는 다시금 파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노동자의 단결권과 노동조합의 자율성 보장이 한층 강화될 것이란 긍정적 평가와 함께, 노-노 갈등으로 노동계의 단결력을 약화시켜 사측과의 교섭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정적 평가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노총(위원장 장석춘)은 다가오는 복수노조 시대를 대비해 지난 10월 20일 충북지역본부를 시작으로 12월 1일 현재, 약 800명의 단위노조 대표자들을 대상으로 ‘복수노조, 답을 찾자’라는 주제의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워크숍은 12월 초까지 한국노총 소속 단위노조 대표자 1,500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경기도 여주 한국노총 중앙교육원에서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워크숍을 통해 노동조합 대표자들은 복수노조 시대에 각 단위노조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어떻게 대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여타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방적 강의 위주의 시간을 최소로 줄이고 참여형 교육이나 소그룹별 분임토의 등의 비중을 대폭 늘린 것이 이번 워크숍의 특징이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 각자가 본인의 의견이나 평소 느낀 점에 대해 최대한 의사를 표현하게 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강조됐다.

ⓒ 한국노총

노동조합, 소통과 공감의 지수를 높여라

이번 워크숍은 복수노조관련 개정노동법 설명과 조직경쟁력 강화방안, 노조간부의 리더십 강의와 각 산별·지역본부, 단위노조, 총연맹의 역할에 대한 분임토의, 노조와 조합원간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 역할 게임을 해 보는 일정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인상적인 프로그램은 참여형 교육으로 기획된 소통에 대한 역할 게임이다. 교육 참가자들은 9명씩 한 조로 나누고 조마다 위원장, 대의원, 메신저 역할을 할 사람을 각 한 명씩 뽑는다. 나머지 6명은 평 조합원의 역할이다. 앉을 자리는 위원장-대의원-조합원 3명-조합원 3명 순으로 배치한다.

조의 구성원들이 의사소통을 통해 특정 문제에 대해 정답을 알아내는 것이 게임의 목표이다. 이때 정답은 위원장이 발표하게 되며, 조직 전원이 정답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또한 게임이 진행되는 도중에는 절대로 말을 할 수 없으며 모든 의사소통은 통신지에 적어서 메신저에게 전달을 부탁한다. 통신지가 전달되는 경로 역시 내 바로 한 칸 앞뒤 자리로만 오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조합원이 중간 단계를 무시하고 바로 위원장에게 의사소통을 시도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려면 무엇보다 조직 구성원 간의 활발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다. 게임의 규칙 상 바로 앞이나 뒷단계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말단부의 조직구성원은 부지런히 각자가 알고 있는 정보를 상층으로 전달해야 하며, 조직의 핵심이나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수많은 정보들을 취합하여 정확한 지시를 신속하게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말 전달하기 게임 같은 것을 해 보면, 처음 전달하려던 말과 최후의 말이 전혀 엉뚱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이번 교육 프로그램도 막상 정답을 알고 나면 쉽고 간단한 문제지만 11월 18일까지 총 6차례의 워크숍이 진행되는 동안 한 조도 정해진 시간 안에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고 한국노총 조직본부는 설명했다. 게임이 끝나면 조별로 다시 모여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지 짚어내는 것과 함께 노동조합과 조합원 간의 소통 문제와 게임의 진행과정을 비교하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토론한 내용을 전체 참가자가 모여 발표할 때는 주로 조직의 말단이었던 조합원 역할을 맡았던 단위노조 대표자들이 대의원이라든지 위원장 역할과 같은 상층 조직에 대해 불평을 털어 놓아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아울러 간단한 게임을 통해 체험한 것이지만 실제 노조활동에 빗대어 볼 때 소통과 공감이 부족할 경우 조합원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해 새삼 느낄 수 있었다는 발언들도 참가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반면 위원장이나 대의원의 역할을 맡았던 참가자들은 대표자들의 고충에 대해 열심히 해명하며 다시금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위원장 역할을 맡았던 서울지역본부의 한 대표자는 “조합원들을 비롯해 조직구성원이 신속하고 일사분란하게 지시에 따라 자료를 모아줬지만 대표자가 순간적으로 상황을 잘못 판단해 문제의 정답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갔다”며 “소통과 공감을 원활히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어떤 현안을 놓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표자들의 책임도 막중한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 한국노총

지금 우리의 모습과 상급 단체가 나아갈 방향

아울러 참가자들은 8~10명씩 조를 나눠 현재 각 단위노조가 갖고 있는 취약점과 그에 대한 대비책, 상급단체의 역할 등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이고 심도 깊은 소그룹별 분임토의를 진행했다.

현재까지 분임토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종합해 보자면, 단위노조의 경우 ▲ 복수노조에 대비해 간부 및 대의원 교육 실시 ▲ 규약개정 ▲ 조합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노조 간부 임원들의 자세 확립 ▲ 조합원과의 소통 강화를 통해 내부 결속력을 높이는 방안 등이 언급됐다. 또한 총연맹이나 산별·지역본부 등의 상급단체에 대해 ▲ 전국 순회교육 프로그램 활성화 등 교육 확대 ▲ 현장의견을 수렴한 정책개발을 통해 대정부 협상에 적극 활용 ▲ 조합원들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 ▲ 유사산별의 통합을 통해 조직 정예화 등이 거론됐으며, 한국노총 차원에서 노동계를 대변하는 일간지를 만들자는 건의도 눈길을 끌었다.

분임토의에서 거론된 내용은 각 조마다 전지에 색 카드로 정리해 조별 토론보고서를 꾸몄다. 이는 결국,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현장의 조합원들이 피부로 느끼는 부분을 즉각 캐치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더 열심히 ‘발로 뛰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재확인 한 것은 물론, 각 단위노조마다 주어진 인력의 한계를 감안해 볼 때 소통의 방법적인 측면에서도 다양화를 꾀해야 한다고 대표자들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은 이번 워크숍에 참가한 단위 대표자들이 모르는 내용은 아니다. 다만 참가자들은 실천적으로 무슨 활동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이라는 점에서 워크숍 기간 동안을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복수노조 시행이 현실로 다가왔을 경우, ‘우리 사업장에 실제로 어떤 상황이 발생할 것인가’에 대해 각 대표자들이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도 엿볼 수 있었다. 서울지역본부의 워크숍에 참가한 서울시버스노동조합 한남여객지부 오창진 지부장은 “버스업종의 경우 민주노총 지역지부에 가입하는 노조가 있었던 것을 봐도 내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조직관리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며 “동종 업계의 다른 노조대표자들은 물론, 다른 업종의 단위노조는 어떤 식으로 대비하고 있는지 얘기를 나눠볼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 한국노총

복수노조, 어떤 부분이 문제될까?

한국노총은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각 단위노조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방비하고 있다. 우선 노-노 갈등이 상시적으로 굳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기존노조와 새로 만들어진 노조 간에 교섭 주도권 장악을 위해 조합원·전임자 확보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교섭창구가 단일화되지 않을 경우 사용자가 이를 악용해 단체협약 해지 통보를 할 수도 있다. 새로운 단협을 체결하지 못하는 경우 종전의 것은 효력만료일로부터 3개월까지만 효력이 유지되며, 새로운 단협체결까지 종전 효력을 존속시킨다는 취지의 자동연장조항이 있는 경우에도 사용자가 해지하고자 하는 시기의 6개월 전까지 노조에 통고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노조를 약화시킬 목적으로 사용자가 개입해 새로운 노조설립을 지원하는 등의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부분이다.

어떤 방식이든 새로이 다른 노조가 설립된다는 점에서 조직의 역량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특히 현장 활동가조직이 있는 사업장의 경우 이들이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 새로운 노조를 설립한다든지,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자가 새 노조를 꾸릴 수도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조직 흔들기’가 수시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기존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지역노조 등 초기업 단위노조로 가입하는 것은 물론 그 반대의 상황에 놓이는 사업장도 늘어날 것이며, 제조업 등 현장노동자 중심의 노조가 주류인 사업장의 경우 사무·연구·기술직 및 중간관리자 등의 다양한 형태의 직종별 노조도 만들어질 수 있다.복수노조 시행 이후 발생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 방안 중 이번 워크숍을 통해 가장 강조된 부분은 노조와 조합원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다. 하지만 원인을 아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고 볼 때, 기존의 조직을 점검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것이다.

한국노총 조기두 조직본부장은 “▲ 결의기구를 무시한 위원장의 독단적 조직운영 ▲ 현장여론을 무시한 임단협 직권조인 ▲ 임단협 진행과정과 결과에 대한 홍보부족 ▲ 위원장 및 지도부의 사치스런 생활 ▲ 지도부 선출 방식(간선제) ▲ 비리연루 ▲ 사용자와의 지나친 밀착 등 노조 지도부가 조합원들에게 불신 받는 원인을 척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아울러 “새로운 노동조합 역시 노조활동 경험이 있는 간부나 활동가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며 “집행부 내부부터 우선 단속하는 게 필요하며 대표자의 전횡은 특히 금물”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