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사회’를 위한 ‘공정경쟁’의 양면
‘공정한 사회’를 위한 ‘공정경쟁’의 양면
  • 안형진 기자
  • 승인 2010.12.06 10:24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자원공사 입찰기준 개정 논란…기득권 챙기기 VS 시장진입 위한 기술저하 감수
수자원기술노조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달라”

ⓒ 수자원기술주식회사노동조합
한 중소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공개입찰을 통해 수자원공사의 댐·발전 시설 및 광역상수도 시설, 광역상수도 설비 점검·정비 업무를 대행해왔던 수자원기술주식회사(사장 정승수, 이하 수자원기술)와 수자원기술주식회사노동조합(위원장 조성훈, 이하 수자원기술노조)에 따르면 수자원공사가 공사 출신 임원들의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기술용역 입찰과정에서 수자원기술주식회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수자원기술과 수자원기술노조는 ‘적어도 공정하게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수자원기술, 기술력으로 시장 조절 지위 유지

수자원기술은 1986년 10월 30일 수자원공사가 100% 출자해 ‘수자원시설보수주식회사’로 설립됐으며, 이후 1994년에는 한국수자원기술공단으로 명칭을 변경해 수자원공사의 자회사가 됐다.

그러나 2001년 3월부터는 당시 공단의 주요 업무가 단순 유지업무로 분류돼 공단이 청산되고 공단 퇴직 직원들이 퇴직금을 모아 그동안의 업무를 대행하기 위한 민간회사로 ‘수자원기술주식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후 수자원기술은 수자원공사의 공개입찰에 참여해 2006년 현재 이들 사업의 91.6%를 따내는 성과를 보였다.

이같이 높은 점유율은 수자원기술이 보유하고 있는 수자원 시설 점검·정비 업무에서의 노하우와 장비 등 수자원기술만의 인프라 때문이라고 수자원기술노조는 주장한다.

수자원기술노조 조성훈 위원장은 “수자원기술은 지난 24년 간 쌓아온 전문 노하우와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는 국내 유일의 기업”이라며 “현재 수자원기술의 ‘독점’은 법률적인 방어막을 쳐놓은 법률적 독점이 아니라 자연적 독점이며 실제 지방 상수도를 포함한 전체 점검·정비시장 대비 점유율은 20% 미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수자원공사가 현재까지 유지해오던 입찰제도를 바꾸면서 발생했다. 수자원기술노조는 시장참여자들의 ‘공정한 경쟁’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 수자원기술주식회사노동조합

“입찰 자격 개정안 불합리하다”

수자원기술노조가 주장하는 개정 입찰 및 심사기준의 불합리성은 크게 2가지로 ▲ 현재 총 4개로 나눠진 권역을 7개 권역으로 분리해 권역별 낙찰제한 방식을 도입한 것 ▲ 용역사업수행능력 평가기준(PQ기준)에 주관적 평가 항목 신설 및 입찰 가격의 비중을 높이는 부분이다.

수자원공사는 기존 4개 권역을 7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입찰에는 자유롭게 참여하되 한 업체가 3개 권역 이내로만 낙찰 받도록 하는 입찰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위의 기준이 시행되면 일단 91%에 달하는 수자원기술의 점유율은 불가피하게 하향될 수밖에 없다.

또 용역사업수행능력 평가 기준에서도 기존에 없던 수행계획, 수행방법, 책임기술자 발표 및 면접 등 평가 담당자의 주관적 견해가 들어갈 수 있는 항목을 추가해 입찰자의 주관적 판단으로 사업자를 선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으며, 기존 기술적 부분과 입찰 금액의 점수 비율이 70:30이었으나 60:40으로 가격경쟁력이 이전보다 더 중요하게 심사되고 있는 형태다.

이 기준은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앞선 장비와 노하우로 우수한 사업수행 능력을 가진 수자원기술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될 것으로 수자원기술노조는 보고 있다. 즉, 기술보다 입찰 금액의 점수가 높아지면 가격을 무리하게 낮춰서 입찰에 참가하게 돼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자본력이 높은 일부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하게 될 가능성이 보다 넓어져 대·중소기업의 상생에도 역행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수자원공사 측은 1개 기업이 관련 산업을 독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맞서고 있다. 수자원공사 계약팀 이병근 차장은 “지난해 수자원기술이 M&A를 추진했던 것으로 아는데, 만일 수자원기술이 대기업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대기업 한군데에 모든 기술력이 넘어갈 수 있는 요소가 있고, 수자원기술은 강성노조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노사분규가 일어났을 때 철도공사의 사례와 같이 업무가 안 된다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용역을 진행했었고, 그 결과에 따라 이뤄진 조치”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이 차장은 “4개 권역이 7개 권역으로 바뀌는 것은 기존 4개 권역이 신규로 진출하는 기업에게는 과도하게 높은 장벽이라는 감사원의 지적이 있었고, 용역사업수행능력 평가기준의 개정안도 지난해 12월 31일 개정된 건설기술관리법에 용역평가를 하고 나서 기술자 평가를 시행하게 돼 있기 때문”이라며 “수자원기술이 수행하는 용역이 건설기술관리법에 정확히 정해진 용역은 아니지만 우리가 평가하는 용역은 그에 준용해 반영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 수자원기술주식회사노동조합

이 같은 수자원공사의 주장에 대해 노조는 일부 사실과 다르다는 반응이다. 수자원기술노조 박만석 사무국장은 “실상 수공은 자연적 독점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수자원기술의 점유율 축소를 위해 지난 2006년부터 경쟁업체 육성을 시도했지만 한계를 느끼고 인위적 분사를 검토해 왔으며 이에 대한 조합원의 고용안정 대책 차원에서 대기업과의 M&A를 잠시 검토한 적은 있다”면서도 “수공이 최근 기존시설 유지관리업무의 중요도가 제고되어 핵심업무로 대두됨에 따라 다시 인소싱하려는 의도와, 공정경쟁이 아니라 수자원기술을 쪼개서 인위적으로 점유율을 조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다면 그런 논의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수자원기술노조가 강성노조라는 수자원공사의 주장에도 “조합원들은 회사를 사랑하는 차원에서 묵묵히 일해왔다”며 “우리사주 회사인 수자원기술주식회사는 조합원이 주인인 회사인데 노조가 회사 측과 대립할 것이 얼마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공정경쟁’이 문제다

수자원기술노조 주장의 핵심은 수자원기술이 수자원 관련 국가기간 시설물의 정비·점검에 대한 사업능력으로는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며 별다른 제한 없이 투명한 공개입찰을 통한다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작지만 강한 회사(Small Giants)’의 모범사례라는 점이다.

또한 수자원기술이 상시점검체제 구축 및 시설물유지를 위한 기술력과 첨단장비, 독자적인 기술이 요구될 뿐 아니라 시설현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 기술인력의 현장에 대한 적응력, 시설물의 안정적인 운용을 위한 상시대기 시스템 등 모든 조건을 갖춘 실력 있는 중소기업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자원 설비의 특성 상 사고 발생시 국민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상황에서 저가 경쟁과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입찰 방식의 도입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 수자원기술주식회사노동조합

조성훈 위원장은 “시장에서의 정당한 경쟁체제는 수자원기술 입장에서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지만 현 상황은 수자원기술의 손발을 묶은 뒤 경쟁하라고 하고 있다”며 “국가계약법, 국가회계기준, 조달청 기준 또는 공기업의 계약 기준에서 10억 이상 기술 용역에 PQ에 대한 기술평가의 가중치를 70%로 하고 있는 것과 동일하게 적용하고 객관성이 결여된 2차 평가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독점 체제의 해체와 정부 지침에 따른 입찰제도 개정을 주장하는 수자원공사와, 중소기업의 공정한 기술력을 인정하지 않고 기득권 이익 챙기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수자원기술 및 수자원기술노조의 비판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번 수자원공사 입찰 기준 개정 논란은 양쪽 다 ‘공정경쟁’을 화두로 하고 있다. ‘공정경쟁’을 위한 이러한 동전의 양면 같은 논란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