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는 ‘오예’, 끝나면 ‘나몰라’
선거 때는 ‘오예’, 끝나면 ‘나몰라’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12.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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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연대, 실효성 높일 수 있는 대책 마련해야
한국노총 위원장을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Special Report 노동계 정치활동 잔혹사 ③ 정책연대, 실효성을 높여라

ⓒ 참여와혁신 포토DB
‘정책연대’가 ‘뜨거운 감자’다. 뱉어내자니 아쉽고, 그냥 먹기에는 입천장을 데는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작년 노조법 개정 투쟁 과정에서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이 지난 2007년 맺은 정책연대는 비난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와 체결한 ‘2007 대통령선거 정책협약 협정서’에는 노사자율 파트너십 촉진 및 전임자 임금 보장이란 요구안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그러나 이 요구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한국노총 내에서는 정책연대 무용론이 급격하게 부상했다.

반면 한국노총 지도부는 정책연대 파기를 대정부 교섭 과정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는 하나의 무기로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정작 이를 실천하기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정책연대 파기는 곧 정부 및 여당과의 연결고리를 단칼에 잘라버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사회적 대화틀에서 민주노총보다 우위를 점했던 부위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정책연대의 공과

정책연대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한국노총은 “특정정책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해 상호간의 협의 하에 제휴나 행동통일을 결정하는 일로서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방법이며 정책연대 후보와의 정책협정을 체결해 노동자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즉 노동자들이 직접 정당을 만들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현실 정치에서 쉽지 않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집권 가능성이 있는 정치 집단과 정책을 매개로 체결하는 일종의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힘 있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GIVE & TAKE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 정치 지형에서도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일종의 계약이지만 법적 계약이 아닌 정치적 계약이기 때문에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 그야말로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또 정책연대라는 것이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후보와 맺는 승자편승 전략이기 때문에, 해당 후보의 노동관이나 계급적 정체성과 상관없이도 정책연대가 가능해 계약 내용이 변질될 우려도 있다.

이러한 우려에도 한국노총은 정책연대라는 정치방침을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ARS 투표 방식으로 후보를 선정했다. 한국노총-한나라당 정책연대 이후 다행스럽게도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에 한국노총은 이제 정책 요구안의 관철을 위해 다양한 루트로 10대 정책요구안 수용을 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에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책연대가 힘을 발휘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정부 출범 이후 강공 드라이브로 일관했던 공기업 통폐합 과정에서 한국노총 소속 공공기관 사업장의 경우 그 예봉을 비껴간 곳이 다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국노총은 4명의 노총 출신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이로써 민주노동당이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10명의 국회의원 중 총 4명의 노동계 출신을 배출한 이후 노동계로서는 최대 성과를 이뤄냈다. 이와 함께 청와대-정부-한나라당-한국노총이 참여하는 고위급 정책협의회를 필요할 때마다 개최해 한국노총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한 것도 성과다.

그러나 작년 노조법 개정 투쟁 과정에서 한국노총-한나라당 정책연대는 일그러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정부의 입장에서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는 대통령이 역설했던 노사관계 선진화에서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어서 한국노총과의 타협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노총이 정책연대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된 투쟁도 해보지 못하고 노조법 개정을 받아들였다는 조합원들의 인식이다. 당연히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후 한국노총은 지속적으로 한나라당을 윽박질러 정부에 강력한 목소리 전달을 요구했지만 현실은 뜻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정책연대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 있나

현재 한국노총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연대는 결국 2가지 결론밖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폐기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러나 다시 한 번 되짚어보면 정책연대라는 계약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는 어떤 정권, 어떤 정치 집단과 논의되더라도 마찬가지란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전 박인상 위원장 시절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체결한 정책연대 또한 노사정위원회 구성 및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유예 등 노동계 입장에서는 긍정적 효과도 많았지만 구조조정의 상시화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보면 부정적인 점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이니까 안 되는 것이란 논리는 승자편승 전략 자체를 흔드는 것으로 이념적 지향보다 당선 가능성에 염두를 둔 정책연대란 정치 방침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현재 한국노총이 독자적 정당을 고민하고 있거나, 민주노총처럼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등 노동계를 중시하는 정당에 배타적 지지를 보낼 것이 아니라면 다음 선거에서도 누가 당선 가능성이 있느냐가 정책연대의 대상이 되지 이념적 스펙트럼이 중시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지금 당장이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미울 수 있지만 만약 다음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가 유력 후보로 등장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며 “당선 가능하지 않지만 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줄 후보는 정책연대에서 전혀 쓸모없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렇다면 정책연대라는 정치 방침의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해결책은 계약을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정치인들과 체결하는 협의서의 대부분은 모호한 말로 써놓는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정치적 생리도 이해는 되지만 ‘노력한다’, ‘협의한다’는 식의 구체적인지 않은 협의서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다.

다른 관계자는 “현재 한국노총과 한나라당, 정부가 참여하는 고위급 정책협의회를 정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일이 있을 때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협의기구를 사무국 형태로 두는 것도 좋고 아예 정책연대를 선언할 때 정례적으로 언제 모인다고 못을 박아 지겹더라도 얼굴을 꾸준히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책연대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한국노총 출신 국회의원에 대한 소환권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노총 출신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잘 나서 국회 들어갔다고 착각하는데 한국노총이 없었다면 공천이나 제대로 받았겠느냐”며 “정부나 여당이 잘못할 경우 이들을 당장 소환해 한국노총의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한국노총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선출?

한국노총 관계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한편으로 일리 있는 의견이지만 실천 가능성에 의문이 생긴다. 정치인들이 구체적인 합의문을 꺼린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이 문제로 왈가왈부 싸운다는 것은 양쪽이 불필요하게 정력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례적인 정책협의회 또한 그 내용에 진척이 없다면 그야말로 시간 낭비가 될 것이고, 한국노총 출신 국회의원에 대한 소환 문제는 정작 국회의원 본인이 거부할 경우 이를 제어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러한 의견과 함께 제시된 의견 중 관심을 끄는 것은 과거 이승만 정권 시절 한국노총(당시 대한노총) 출신 고위 간부 중 한 명을 자유당의 당연직 중앙위원으로 선출했었다는 점을 들어 정책연대를 체결하는 당의 최고위원 중 한국노총 몫을 반드시 배정하는 형태로 당 중심에서 압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실제 1952년 11월 8~9일 양일간 진행된 대한노총 통합대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직접 일하는 노동자 중에서 3인을 뽑아 천거하면, 그 중에서 1인을 천거하여 1년 동안 자유당 중앙위원의 책임으로 시무케 할 것”이라고 밝히고 이를 시행했었다.

이 의견은 현재 대부분의 정당에서 운영하고 있는 최고위원제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당 운영의 최고집행기구인 최고위원회에 한국노총 대표자는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참여해 정책연대의 실효성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어찌보면 직능단체의 대표자가 최고위원회에 들어간다는 것이 현실 정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노동계를 대표한다는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아예 이야기도 못 꺼낼 정도는 아니다.

이와 같이 정책연대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꾸준히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매번 선거 때마다 표는 몰아주고 결국 ‘뒤통수’ 맞는 일로 온갖 스트레스에 싸여있는 노동계가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엉뚱한 자구책이라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책연대의 실효성은 상대방이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