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함수 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복잡한 함수 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12.0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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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시나리오 통한 한국노총 선거 예측
다양한 후보군 난립과 그에 따른 합종연횡 진행 돼
[현장] 한국노총 임원선거 중간점검

한국노총이 내년부터 앞으로 3년을 이끌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누가 차기 위원장으로 적합할 것인가를 놓고 한창 내부 논쟁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노총 위원장이라는 직함은 단지 노동조합총연맹의 수장이라는 현실적 위치를 떠나 노사정이라는 사회적 대화 틀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위치다. 또한 현재 노동계의 다른 축인 민주노총이 이명박 정부와의 대화 틀이 전혀 형성되지 않고 있어 사회 전반의 노사관계는 한국노총과 경영계, 정부의 논의 구조로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한국노총 위원장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다.

장석춘, 왜 출마하지 않나

내년 1월에 있을 선거에서 가장 핵심적 사안은 현 장석춘 위원장이 재선에 도전할 것인가의 여부였다. 장 위원장이 당연히 재선에 나설 것이란 작년까지의 예상은 노조법 개정 투쟁 이후 점차 오리무중으로 바뀌었다. 12.4 합의와 이후 근로시간면제 한도 결정 과정에서 한국노총 지도부의 역할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선거가 다가올수록 장 위원장의 출마 여부는 출마에서 불출마 쪽으로 기우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많았다. 반면 노사민정 대타협을 이끌고 노조법 개정 과정에서 타임오프제 도입에 합의하는 등 굵직굵직한 현안에서 이명박 정부와 박자를 맞춰왔던 장 위원장이 쉽게 물러나겠느냐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정부, 특히 청와대와의 대화 채널을 유지하고 있는 장 위원장이 불출마하거나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 현재 한국노총 내에 존재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아 장 위원장 스스로가 아니라 주변에 의해 재선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도 상당한 것으로 관측됐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이러한 분위기가 급박하게 돌아간 것은 11월 말 경으로 장석춘 위원장이 스스로 주변 지인들에게 불출마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소문이 나면서부터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장석춘 위원장이 최근 들어 조합원들의 뜻에 따르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말해 장 위원장의 불출마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결국 장 위원장은 지난 12월 1일, 한국노총 회원조합대표자회의 석상에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장 위원장이 불출마를 선택한 것은 본인에 대한 현장의 반발이 예상외로 강력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또한 지난 노조법 개정 투쟁 이후 자신과 가족에게 쏟아졌던 무차별적 인신공격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함께 논의를 공유했음에도 모든 책임은 위원장에게 떠넘기는 한국노총 일부 간부들에 대한 회의감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노조법 통과 이후 홈페이지 등에 올라온 비난글 등을 장 위원장 가족이 보고 함께 울었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실제로 올해 2차례나 공식석상에서 한국노총 위원장 사퇴를 이야기했던 것을 봤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려 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던 장 위원장이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서 한국노총 임원 선거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에 빠졌다. 이제 많은 후보군들이 주인 없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들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용득의 귀환

이런 와중에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실제 이 전 위원장이 선거에 출마할 것이란 소문은 이미 지난 9월부터 솔솔 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이 전 위원장은 중부지역의 한 지역본부 전 의장이었던 A 씨, 현 연맹 위원장인 B, C씨 등과 함께 한국노총 선거에서 40% 정도의 선거인단을 확보하고 있어 키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교통운수노동조합총연합(이하 교운총련)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전 위원장이 한국노총 소속 직원들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여기에 일부 지역지부 의장과 한국노총 내 강성으로 분류되는 단위사업장 위원장들이 장석춘 현 위원장에 반발해 이 전 위원장을 추대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이들 중 일부가 지난 11월 10일 경 한국노총 소속 단위노조 위원장, 지역본부·지역지부 의장, 조합원들에게 ‘한국노총 지도부 신뢰회복을 바라는 (가칭) 한국노총 현장개혁 모임(이하 현장개혁 모임)’이란 명칭으로 이용득 전 위원장의 추대를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하자는 이메일을 돌린다. 현장개혁모임은 이메일에서 “지난해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의 노총에 대한 현장의 실망은 1년이 지나긴 하였으나 여전히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며 “총연맹위원장 선거와 관련해서 뚜렷한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지금 이용득 전 위원장을 다시 현장으로 불러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지역지부 의장은 “이용득 전 위원장이 결심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통정리를 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며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에 다들 동의하면서 여하튼 한국노총이 과거의 투쟁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이용득 전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 전 위원장은 지난 11월 26일, 투자자문역으로 근무하고 있던 우리은행에 사표를 제출했으며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 인수위 사무실에 들려 “부끄럽지 않은 선배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마를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각 후보군들의 난립, 그리고 합종연횡

장석춘 현 위원장의 불출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용득 전 위원장의 출마가 거의 확정적인 상황에서 한국노총 내 위원장 후보군들의 행보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참여와혁신>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김동만 상임부위원장, 김주영 상임부위원장, 문진국 상임부위원장, 백헌기 사무총장, 양병민 금융노조위원장(가나다 순) 등이 출마를 결심했거나 고심 중인 인물로 확인됐다. 문진국 상임부위원장 겸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교운총련의 지지를 기반으로 출마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김주영 상임부위원장 겸 전국전력노동조합위원장은 장석춘 현 위원장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헌기 사무총장은 교운총련 소속으로 문진국 부위원장과 지지 세력이 겹치지만 사무총장만 두 번을 역임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원대한 꿈을 그리고 있으며, 양병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과 김동만 상임부위원장은 10만 명에 달하는 금융노조 조합원들의 지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잠재적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노조법 개정 과정에서 장석춘 현 위원장과 가장 큰 대립각을 형성했던 배정근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과 한국노총 내 제조업 연맹을 대표해 한광호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위원장, 탄탄한 조직세를 자랑하는 김주익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위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이들 또한 향후 상황 변화에 따라 갑자기 부상해도 별로 놀랍지 않은 후보군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그러나 위에 거론된 인물들이 모두 선거에 나서지는 않을 것은 자명하다.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 특성상 후보등록 당일까지 위 후보군들의 합종연횡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에도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경선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한 후보에게 일명 ‘몰빵’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향후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이들 후보군들 간에 벌어질 다양한 연합 전술에 관한 것이다. 그에 따른 시나리오를 만들어보자.

시나리오 1. 이용득 VS 반이용득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이용득 전 위원장이 일부 현장의 지지를 획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그룹도 상당하다. 이용득 전 위원장이 사회개혁적 노동운동을 주창하고 투쟁에 앞장섰다는 점은 현장의 변화와 개혁 분위기에 맞아 들어갈지 모르지만 이용득 전 위원장 자신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에 앞장섰다는 점, 현 장석춘 위원장과의 교체과정에서 정치권 진입에 실패하자 이를 현 집행부의 농간(?)으로 규정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다는 점은 오히려 한국노총 내 상층 단위에서 반 이용득 정서를 확산시켰다.

이 경우 반 이용득 진영에서 김주영-문진국-양병민(가나다 순)의 연합 가능성이 가장 농후하다. 김동만 상임부위원장의 경우 이용득 전 위원장의 직속 후배(우리은행지부 위원장과 금융노조 위원장)라는 점에서, 또한 호형호제하는 둘만의 특수한 관계로 볼 때 다수 후보군 연합보다는 이용득 전 위원장을 돕는 쪽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 백헌기 사무총장의 경우도 문진국 상임부위원장이 나설 경우 교운총련이라는 지지세력이 겹친다는 점에서 후보로 나서기 보다는 다수 후보군 연합에 힘을 보탤 것이란 논리가 더욱 설득적이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가 위원장-사무총장의 러닝메이트제란 점에서 김주영-문진국-양병민 중 한 명은 상임부위원장 등으로 밀린다는 점이다. 여기에 김주영-문진국-양병민 모두 위원장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에 대한 교통정리도 만만치 않다. 일부에서는 교운총련이 ‘킹메이커’ 역할을 해왔지 정작 자신들이 ‘킹’을 하지는 않았다는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문진국 상임부위원장이 정계로 진출하는 조건으로 김주영-양병민에게 양보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시나리오 2. 교운총련 VS 반교운총련

앞서도 언급했지만 교운총련이 한국노총 선거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그만큼 교운총련에 대한 한국노총 내 반대 세력도 만만치 않다. 특히 금속, 화학 등 제조업 연맹 같은 경우 노골적인 반교운총련 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노총 내 2대 조직인 금융노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반교운총련 연합이 가능할 것인가인데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현재 교운총련이 과거와 같은 단일 대오를 구성하지 못하고 각개 약진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한나라당 시의원 비례대표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교운총련의 대표적 연맹인 자동차노련과 전택노련이 여전히 편치 않은 관계여서 이번 선거에서 교운총련이 이전과 같은 힘을 발휘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관계자들이 많다.반면 교운총련이 힘을 발휘할 때는 선거조직으로서 활동할 때라는 논리를 들어 지금은 비록 각 연맹별로 차이를 보이지만 선거가 시작되면 이번에도 교운총련이 단일한 대오를 구성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관계자도 있다.

현재까지는 이용득 전 위원장을 중심으로 반교운총련이 연합할 가능성이 가장 높으나 만약 교운총련의 분열이 선거 전까지 이어질 경우 후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교운총련 소속인 문진국-백헌기가 단일화하지 못하고 따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교운총련 소속 연맹 위원장이 이용득 전 위원장 측의 사무총장 후보로 연합할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용득 측의 한 측근은 “이용득 전 위원장이 교운총련 소속 일부 연맹 위원장들과 모종의 물밑협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쪽(교운총련)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시나리오 3. 반이용득과 비교운총련 후보 단일화론

앞서 언급한 시나리오와는 또 다른 시나리오도 예측 가능한데 반이용득, 즉 다수 후보 연합군 중 교운총련 진영이 단일화를 이루고 반이용득 진영 중 일부가 교운총련, 반교운총련 측과 떨어져 나머지 군소연맹들과의 후보 단일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용득 전 위원장의 공과를 분명히 하고 이미 지나간 옛 인물을 다시 끌어들여 현실의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교운총련도 아닌 새로운 인물을 변화와 개혁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한국노총 내 일부 그룹의 주장에서 기인하다. 이 시나리오는 현장 분위기가 현 집행부의 교체를 요구하고 있으며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대부분 현 집행부에 관여한 인사이거나 이 전 위원장처럼 과거 인물이라는 점에서 현장에서부터 한국노총 개혁과 변화의 바람이 분다면 전혀 새로운 후보라 하더라도 경쟁이 가능하다는 예측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한국노총 선거가 대의원선거가 아닌 3천여 명의 선거인대회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조직적 투표 행위는 여전할 것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다양하고 복잡한 함수관계 속에 놓여있는 한국노총 임원선거지만 80만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의 열망과 지지를 받아 향후 새롭고 발전적인 노사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임원이 선출되기 바라는 것은 한국노총뿐 아니라 한국사회 노동계 전체의 바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