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꼴찌, 반란에 성공하다
만년 꼴찌, 반란에 성공하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12.0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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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혁신에 대한 조합원 열망이 승리 요인”
노조 간부가 이익 보는 구습 탈피 열망…지난 10년 생각하며 ‘눈물’
[사람들] 임혁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 위원장 당선자

▲ 임혁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 위원장 당선자.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누구도 그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이전 2차례 선거에서 4%, 8% 득표에 그쳐 꼴찌를 했던 그가 드디어 반란을 일으켰다.

지난 11월 12일,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 임원선거에서 기호 7번 임혁 후보는 전임 집행부 출신인 박원춘 후보와 결선까지 가는 접전 끝에 5표차로 신승했다. 임혁 후보의 당선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해석되고 있다. 왜냐하면 대형 노동조합 선거가 늘 그렇듯 조직세의 우열로 승부한 것이 아니라 밑바닥 조합원 정서를 긁어 모아 꼴찌에서 단박에 1등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임혁 당선자는 “세 번째 도전 자체가 모험이고 도박”이었다며 “변화와 개혁을 요구한 조합원들의 열망이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영화를 앞두고 있는 우리금융지주의 불투명한 앞날에 대해 “단 하나의 일자리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힌 임 당선자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조합 운영을 제1원칙으로 설정했다. 또한 현장과의 소통을 위해 노동조합 사무실에만 위원장실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지점에도 위원장실을 설치해 최대한 많은 조합원들과 만나 그들이 노동조합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활동을 펼치려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의 야당(?)생활을 회고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던 임 당선자는 그만큼 노조 활동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보인다. 비록 현실이 그렇게 만만치 않겠지만 임 당선자가 노동조합 집행간부 초짜(?)로서 어떤 활동을 펼치지 사뭇 기대가 된다.

이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바꿔야 바뀝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5표차의 힘겨운 싸움을 펼쳤는데 승리의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조합원들이 변화와 혁신을 요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이대로 계속 가서는 안 된다는, 그래서 변화와 개혁을, 노동조합 자체를 바꿔야한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큰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바꿔야 바뀝니다’란 공약을 걸고, 사람이 바뀌어야 노동조합이 바뀌고, 노동조합이 바뀌어야 은행이 바뀌고, 은행이 바뀌어야 조합원들의 삶의 질이 더욱 나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금융노조도 바뀌고 한국노총뿐 아니라 한국 노동조합 운동 자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노동운동이란 풀뿌리 민주주의에 의거한 노동자들의 자주적 활동 아니겠습니까? 하부조직인 지부에서부터 변화를 일으키면 한국노총, 금융노조 또한 변화와 혁신의 물결을 반드시 받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전 노동조합은 어떻게 보면 어용, 또 은행 측에서 보면 관치금융에 익숙해져 있는, 관리되어진 노동조합이라고 판단됩니다. 노동조합은, 제가 선거유세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이야기한 것이지만, 대한민국 헌법 33조에 나와 있듯이 조합원을 위해 임금, 복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단결, 교섭, 행동하도록 되어 있듯이 그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난 3년, 아니 6년을 거슬러 보면 노동조합이 과연 우리에게 단결을 이야기했고 교섭을 했고 우리를 위해서 행동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한 번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들로 인해 조합원들이 과거와 달리 이제는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노동조합을, 새롭게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이 주류가 돼고 분위기가 확산이 돼서 이렇게 바뀌게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선자께서 내세운 주요 공약은 무엇인지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은행이 민영화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일방적 합병시도를 막아 단 하나의 일자리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일치단결한 행동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노동조합을 개혁할 것입니다. 그동안 공공연하게 누렸던 노동조합의 기득권을 깨끗이 포기하고 조합원보다 간부 중심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타파하려고 합니다. 또한 경제위기를 빌미 우리들에게 빼앗아간 임금과 복리후생을 다시 쟁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무분별한 캠페인 및 프로모션 개혁, 공정한 인사시스템 마련, 직군통합을 통한 차별과 소외가 없는 직장을 구현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공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원장으로서 초심을 잃지 않고, 더 낮은 곳에서 겸허하게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며 단 한명의 조합원도 차별과 소외가 없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 어떤 공약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선자가 보시기에 노동조합 활동은 어떠해야 합니까

“향후 노동조합은 투명하게 오픈되고, 조합원의 뜻을 물어서 어떤 결정사항이든 조합원이 뜻하는 대로 그렇게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도로 보면 노동조합 위원장 위에 조합원이 있는 것이지 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서 원칙과 소신을 갖고 조합원이 시키는 대로 두려움 없이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조합원 뜻대로,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결코 저는 과거에 보여졌던 노동조합 위원장의 구습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은행의 자산건전성 확보해야

우리은행은 현재 민영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올바른 민영화를 위해 노동조합이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공적자금을 투입 받은 어떻게 보면 국책은행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런데 메가뱅크에 대한 것은 국내외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러 보고서,  설명회에서 논의됐습니다. 왜냐하면 메가뱅크가 되면 그만큼 우리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여신이나 수신들이 자꾸 좁아지고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줄어 듭니다. 금융산업은 허가 받은 돈장사지만 금융이라는 자체가 우리 경제의 핏줄인데 원활하게 돌아가야지 한군데에만 뭉쳐있으면 안됩니다. 메가뱅크보다는 독립적인 민영화 안이 더 바람직합니다. 우리은행 노조 입장에서는 독립적 민영화를 통해 서민과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금융활동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민영화에 대한 여러 방안이 있는데 경영진에서 정치적 입김으로 인해 국내 자본의 투자가 미적되는 상황에서는 일찌감치 IR을 통해 외국자본을 유치해 국내자본이 눈치보지 않고 투자에 뛰어들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하자고 요구했습니다. 이후 직원들에게 자사주 매입을 설득하면 직원들의 호응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민영화를 앞둔 현재 조합원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합병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것이 민영화라는 것으로 대체됐고 저희들 자체가 약 7천억 정도 자사주를 매입함으로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습니다. 혹 민영화과정에서 강제적 구조조정이 있다면 6~7년 동안 급여도 오르지 않고 희생했던 직원들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대용품으로 취급한 결과로 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일자리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활동하겠다는 것이 조합원들과의 약속입니다.”

금융권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경쟁체제 심화로 인한 노동강도 강화 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금융산업은 허가 맡은 돈장사입니다. 돈장사는 공공성이 있어야 하고 이익성도 있어야 하고 성장성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관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은행의 주인이 없다는 이유로 관치가 있으면 근거 없이 지시하기 때문에 자율경영 이루어지지 않아 당연히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좋은 업적, 실적이 있더라도 한 번에 붕괴될 수 있습니다. 절대 관치금융을 하지 말고 자율경영을 보장해야 합니다. 또한 은행 간에 불필요한 경쟁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은행도 330조라는 자본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최소 1조원 이상은 이익금이 들어온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경쟁을 하다보면 무리수를 두게 되고 서로가 밖을 안보고 국내자본끼리 싸움하면 단시간에는 효과가 나겠지만, 즉 1조에서 1조 4~5천억의 이익이 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보면 4~5천억은 부실로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시스템 관리가 도입되고 은행은 자산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이를 위해 캠페인, 프로모션이 근절돼야 합니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국민 개인이 신용카드 몇장씩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그걸 다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처럼 카드부실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실이 결국 우리은행, LG카드 사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겉으로는 황금알을 낳는 것처럼 보이지만 은행의 부실로 진행되고 은행의 부실은 한국경제의 부실로 이어지며 그 결과는 국민들이 떠안게 됩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위원장실은 하나가 아니다

지금 금융노조를 비롯해 한국노총은 격변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거를 통한 조직개혁에 대한 요구들이 들끓고 있는데 한국노총과 금융노조의 현재를 평가해주세요.

“과거에는 근로조선을 개선하기 위한 공격적인 활동을 펼쳔던 것이 바로 금융노조입니다. 그러나 지금 금융노조와 한국노총은 정치화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의식이나 정체성보다는 조직을 정치에 활용하고 이용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 자체가 변질된 것입니다. 지금 지부에서부터 서서히 금융노조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지부 선거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계속 당선되고 있으며 양병민 위원장과 장석춘 위원장이 출마를 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것을 미루어봤을 때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새로운 시대와 변화 임무를 요구한 것이고 노동조합은 어쨌든 조합원 이익을 위한 이익단체이지 시민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적극 호응해야 합니다.”

많은 단위사업장 위원장께서는 조합원과의 소통부재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당선자께서는 조합원과의 소통을 위해 어떤 방안을 마련하셨습니까?

“10년 동안 밖에서 봤을 때 위원장 당선되면 그날부터 조합원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선거 때는 수십 번 방문했던 곳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더라도 선거 때 도와준 지인들과 식사 정도만 하고 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시적으로 조합원을 만나기 위해 조합원들이 많이 모여 있는 BPR센터나 고객만족센터에 위원장실을 따로 설치해달라고 회사 측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위원장이 노동조합에 쳐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직접 만나겠다는 겁니다. 또한 월 1회 이상 노사 간담회를 개최하고 그 안에 일반조합원까지 참여해 직급에 눌려 이야기 못했던 부분도 사측, 노동조합 간부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인고노비'를 아십니까?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노동조합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입행했을 때 저도 은행의 ‘꽃’인 지점장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입행 후 열심히 노력해 은행생활 20년 동안 표창을 5번 받았습니다. 그런데 혹시 ‘인고노비’라는 말을 아십니까? 은행에서 잘 나가려면 ‘인’사부, ‘고’려대, ‘노’동조합, ‘비’서실 출신이어야 한다는 업계의 우스갯소리입니다. 상 받는 사람 따로 승진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죠. 특히 노동조합을 한 사람들이 더 많이 승진하고 더 많이 좋은 곳으로 가고, 더 많이 지점장이 돼 직원들과 조합원을 무시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이러한 것은 노동조합을 이용해 기득권을 가지고 노동조합을 자신의 출세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란 사실에 격분했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 항상 보면 집행부에서 여야로 구분돼 누구는 누구파, 누구는 누구파라는 식의 되물림이 계속되니까 조합원들이 말을 자연스럽게, 속시원히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깨고자 노동조합 활동을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거 패배를 2번이나 했는데 3번째 나간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사실은 두 번 떨어지고 너무나…(울음). 죄송합니다. 10년 동안 선거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생각나니 복받쳐서…. 저의 집사람은 12년 전 처음 노조위원장 선거에 출마할 때 위암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문에는 제가 출마해놓고 나중에 은행 측이랑 딜을 해 자기 이득만 취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강원도 정선 출생인데 은행에는 고향도 무척 중요합니다. 선거에서 많은 작용을 하니까요. 그리고 전 아무런 조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친놈’에 ‘또라이’라고 했습니다. 2번째 나올 때는 ‘돈키호테’라고 했습니다. 이때는 나와 봤자 꼴찌한다는 것을 조합원들이 다 아니까 동정론으로 뭐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세 번째 도전에서는 부모님도 ‘뭐하러 나가냐. 돈 써가며 몸 버리고’라며 말리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저는 부모님께 눈물을 보였습니다. ‘한 번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그리고 동지들도 조금씩 돈도 모으고 인력도 모아 ‘이번이 마지막이니 한번 멋지게 해보자’고 다짐하고 나왔습니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조합원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계속적인 고민을 해온 시기라 생각합니다. 그 세월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겠죠.”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