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의 경제학
치킨의 경제학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0.12.0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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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원 짜리 치킨을 대하는 소비자의 자세

▲ 하승립 lipha@laborplus.co.kr

한 겨울에 뜬금없이 닭이 핫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롯데마트가 오늘(12월 9일)부터 치킨을 5천원에 팔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벌써 찬반양론이 튀김 기름만큼이나 뜨겁습니다.

찬성하는 쪽은 그간 치킨값 거품이 너무 심했다는 점을 들어 반기고 있습니다. 실제로 프랜차이즈 치킨의 경우 한 마리에 1만8천원 안팎을 받고 있습니다. 브랜드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600~700그램 정도의 닭이 1만5천~1만8천원 정도의 가격입니다. 이에 비해 롯데마트 치킨은 900그램에 5천원이니 양과 가격에서 파격적이라 할만 합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마트로 재래시장을 죽이고, SSM으로 동네 슈퍼를 벼랑 끝으로 내몰더니 이번에는 가격공세로 자영업자들을 고사시키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재벌기업의 횡포라는 겁니다.

▲ 9일 출시된 '롯데마트 치킨'. ⓒ 롯데마트

싸게 사면 항상 이익인가?

이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9월 이마트가 기존 피자보다 크기는 더 커졌지만 가격은 1만1500원인 피자를 선보였습니다. 프랜차이즈 피자의 가격이 3만원 가까이까지 올라간 시점에서 이마트 피자는 놀라운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항간에서는 다음은 홈플러스 차례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습니다. 피자와 치킨을 선점당한 상태에서 가능한 품목이 무엇일 것인가에 대한 추측들도 다양합니다. 일부에서는 우스개로 야식계의 마지막 보루 보쌈이 될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쉽게 어느 것이 옳다고 규정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싸고 양도 많으면서 품질에 대한 신뢰까지 가질 수 있는 먹을거리가 나오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바라는 바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환영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대형 할인마트 기업들이 내놓는 제품 때문에 입는 피해는 고스란히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네 피자집과 치킨집이 이들 업체와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이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이른바 ‘이념적 소비’ 발언이었습니다. 트위터를 통해 대중과 접촉면을 넓혀왔던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 피자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 네티즌이 올린 “동네 슈퍼와 대형마트의 생태계는 달라야 한다. 독점자본의 잠입은 옳지 못하다”는 글에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네요”라고 맞받았습니다.

▲ 지난 8월 출시된 '이마트 피자'. ⓒ 신세계 이마트

이념적 소비, 혹은 윤리적 소비

정 부회장의 이 논리는 인정하기 힘듭니다.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념적 소비’가 아니라 ‘윤리적 소비’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마트 피자의 속을 한 번 들여다볼까요? 이마트에 피자를 공급하는 업체는 조선호텔베이커리입니다. 이 회사는 원래 조선호텔의 한 부서였다가 분사했습니다. 최대주주는 45%의 지분을 갖고 있는 조선호텔이고 개인 최대주주는 40%의 정유경씨입니다.

정유경씨는 정용진 부회장의 동생으로 현재 신세계 부사장입니다. 조선호텔베이커리의 올해 예상매출액은 1600억원으로 모회사였던 조선호텔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성장했습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많이 들어본 얘기죠? 재벌 2, 3세가 기존 계열사에서 분사하거나 혹은 새롭게 회사를 설립하고, 그 회사에 대해 그룹 계열사 전체가 지원해서 덩치를 키우는 방식, 즉 편법증여의 의혹이 짙은 방식입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증여받은 비상장주식이 취득한 날로부터 5년 이내에 상장되는 경우 그 차액도 증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5년이 지난 후에 상장하면 아무리 주식 가치가 올랐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공교롭게도 조선호텔베이커리는 2005년 1월에 분사됐습니다.

이런 와중에 돈 없는 서민들이 이마트 피자나 롯데마트 치킨을 먹을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이념적 소비’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비윤리적 방법으로 부를 대물림하는 재벌들의 행태가 못마땅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입니다.

롯데 신격호 회장의 딸 신영자 롯데면세점 사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의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루이뷔통 매장 유치를 위한 자존심 싸움 같은 기사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우리는 5천원 짜리 치킨, 그리고 1만1500원짜리 피자를 사 먹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대형마트 이윤창출의 악순환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벌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서 싼 치킨과 피자를 팔면서 주변의 치킨집과 피자집이 직접 피해를 입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기존에 팔리던 치킨과 피자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불만 때문에 대형마트 제품을 환영한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정작 이 경우에도 이익을 보는 쪽은 따로 있습니다. 그 비싼 치킨과 피자로 돈을 버는 것은 동네 가게 주인이나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아닙니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이죠. 이런 와중에 사람들은 기존의 비싼 치킨과 피자값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면서 엉뚱한 영세 자영업자들을 적대시하고 오히려 재벌 대형마트를 편드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대형마트의 이윤 창출 구조에 있습니다. 물건을 싸게 팔기 위해서는 팔 물건을 싸게 들여오고 비용을 줄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매장에서는 저임금의 비정규직들이 일하고, 더 싼 유통업자를 찾게 되고, 농어민과 제조업자들은 더 싸게 물건을 공급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통업자와 제조업자는 더 싼 임금에 일할 사람들을 찾습니다.

소득이 줄어든 임금노동자들은 다시 더 싼 물건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를 찾습니다. 소득이 줄어든 농어민과 영세 자영업자들도 대형마트의 소비자로 합류하게 되겠지요. 이 악순환 속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엉뚱하게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으로 비춰지는 이 문제도 노동시장의 악순환 고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결국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당장의 이윤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으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그저 도식적인 편 가르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오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내일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5천원 짜리 치킨은 그냥 닭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의 오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화두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