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대한민국의 온도는?
2005년 대한민국의 온도는?
  • 승인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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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넣고, 행복을 가져 가세요
12월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힘든 점은 없어요, 굳이 이야기하자면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시간, 모금이 잘 되지 않을 때 좀 지루하다고 할까요?
지금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인데, 엄마가 모금활동을 하고 있으면 가끔 함께 나와서 지켜보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해요. 12월에는 아무래도 잘 못 챙겨줘서 미안하긴 하지만 더 많이 보고 배우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2005년 달력의 마지막 장을 남겨놓고, 한국구세군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한 시기를 맞고 있다.
27억원 모금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본관을 비롯해 각 처의 구세군들은 운영하고 있는 각 사회기관들의 현황과 수요를 파악하고 예산을 세우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또 이와 함께 마라톤 등의 행사와 홍보, 구세군이 활동할 장소 확장 등 분·초를 다투는 황금 같은 시간이 흘러간다.

 

구세군은 12월에만 활동한다?
한국 구세군은 1928년 12월, ‘끼니를 먹지 못하는 이웃에게 음식을 끓여 줍시다’라는 작은 외침을 시작으로 78년 동안을 한결같이 활동해 왔다.
현재는 전국의 병설 시설과 100여 개 전문사회복지 시설 및 센터를 통해 영세민 구호, 장학금 지원, 치매노인 보호, 무료급식, 무의촌 의료지원, 심장병 어린이 수술 치료, 에이즈 예방 및 환자 가족 Care, 노숙자 시설, 성폭력 상담, 긴급 이재민 구호 등 연령과 장소, 내용을 불문하고 모든 분야에서 복지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구세군에서 오랜 기간 동안 활동해 온 백승렬 사관(구세군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군대와 마찬가지로 사령관, 참령 등의 계급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장교’를 통칭하는 직책인 ‘사관’을 쓴다)은 “처음, 구세군 활동을 시작할 때 우리나라는 어려운 시기였어요. 그 때의 구세군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소위 ‘꿀꿀이죽’을 받아와 팔팔 끓여서 나누어 주기도 하고, 굶는 사람을 먹이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했었죠” 라고 회상했다.


지금은 예전처럼 일회성의 나눔 사업이 아닌 예방과 사회에의 적응을 목표로 하는 지속적인 사업이 이뤄지다 보니, 전문성을 갖추고 체계적인 복지사업으로 안정시켜 나가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 기획들이 마련되고 있다.
구세군의 안건식 사관은 “이제 밥과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버려지고 낙오된 사람들을 스스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및 안전망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며 “노숙자와 청소년, 알콜 중독자, 미혼모 등을 지원해 사회의 일원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스템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사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12월의 활동은 1년간 이들을 돌보기 위한 ‘자금마련기간’인 셈이다.


구세군의 사령관부터 일선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까지 12월은 모두가 함께 거리로 나가 종소리를 울린다.
‘우리의 팔과 다리에 그 많은 사람의 일 년간 먹을거리와, 생활과 복지가 달렸다고 생각하면 하나도 춥지 않다’는 그들의 마음은 벌써 시내 한복판으로 달려가고 있다.

 

경기 흐름에 제일 민감한 곳
98년 IMF가 터지고 쏟아져 나온 거리의 노숙자들을 받아 지원을 시작하며, 그 때의 참담함을 가장 많이 느낀 곳이 바로 여기다. 늘어나는 실업자와 노숙자, 거리의 사람들이 감당해 내지 못할 정도로 쏟아졌다.


이 때 구세군에서 서울에 4곳의 ‘실직자 센터’를 설치해 수백 명의 실직자들이 이곳에서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하며 재활프로그램에 따라 재기를 꿈 꿀 수 있었다.
해마다, 더 도와주어야 할 곳과 현재를 유지하거나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곳을 파악하다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 현실과 경제가 눈에 보인다고.


구세군 백승렬 사관은 복지사업을 진행해 오면서 느낀 우리나라 복지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복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랑과 관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채 끼니만 채워주는 ‘사업’으로만 보는 것이 안타깝다”며 “가출 청소년의 경우 사랑과 관심이 부족해 몇 번씩 집을 나가는 친구들을 ‘쟤는 안된다’고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러한 아이들에 대해 “묵묵히 계속 지켜봐주는 손길과 믿음이 그들을 사회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구세군 지원 사업 현황을 보면,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다. 예전에 흔히 고아원이라고 불렸던 보육원들은 현재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예전처럼 아이를 많이 낳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갈 곳 없는 치매 노인을 위한 센터나 미혼모 보호시설 등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
올해는 인천 남동구에 건축 중인 노인전문 요양시설을 비롯해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이상의 노인 복지센터가 생겨날 예정이다.


안건식 사관은 “이제는 부모가 안 계신 고아들은 줄어들고 아이들의 경우 이혼가정 등 부모가 모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며 “부모들은 이혼 후 각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어려운 조부모님 아래서 양육되거나 그나마도 힘들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얼마 전 부모의 이혼 후 혼자 방치됐다가 개에 물려 세상을 떠난 한 아이의 소식을 접했을 때, 마치 스스로가 가해자가 된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는 구세군들은, 단적으로 드러난 현실일 뿐 농촌이나 지방 산골마을 같은 경우 이러한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지적한다.
노인 요양원의 경우도 마찬가지. 조금만 외지로 나가 보면, 스스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병약한 노인들이 홀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안건식 사관은 “혼자 시골에 사시면서 노인 복지 시설로 가려고도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분이 계셨는데, 자식들 이야기를 여쭤 봐도 묵묵부답이셨다”며 “너무 안타깝고 괘씸한 마음에 해당 군청에 요청을 해 자식들을 찾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도움의 손길이 늘어나고 수많은 사회 복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늘 손길이 깊숙이 닿지 않는 곳에 더 지원이 되지 않는 것이 마음 아프다.

 

어두운 곳에 희망을
성매매, 알콜 중독, 에이즈 감염자 등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려운 이웃’이 아닌,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고 어려움을 호소할 곳 없는 곳에도 구세군의 손길이 닿고 있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위한 여성현장상담센터에서는 감금, 폭력, 강요 등으로 성매매가 이루어진 여성들을 위해 인권보호 및 법률의료지원, 자활사업장 연계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에이즈 감염자 가족들의 생계 지원 및 의료 지원 등을 통해 소외당하고 외면받기 쉬운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지속적인 예방 캠페인을 병행하고 있다.


백승렬 사관은 “삶에 더 이상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더 이상 이러한 마음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속적인 캠페인을 통해 알려내는 것 또한 우리의 임무”라고 말한다.


알콜 중독자의 경우 ‘완치’가 되는 확률이 적고 계속해서 지켜보고 격려하는 것만이 치유방법이기 때문에 가족들조차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재활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인 지원을 해 나가고 있다.


안건식 사관은 “현재 말기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센터를 새롭게 건축했는데 예산 문제로 어려움이 많다”며 “올해의 모금활동을 통해 말기암 환자들과 가족들을 위한 봉사를 하루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이야기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나눔의 손길 늘어나
올해 12월, 구세군의 모금 목표는 27억. 작년에 비해 1억5000만원 늘어난 액수다. 매년 1~2억 정도 목표를 상향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데’라는 걱정에, 백승렬 사관은 “‘올해는 사람들 모두 이렇게 힘든데, 과연 목표달성이 될까’라는 걱정을 해마다 합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렵다, 어렵다 하는 가운데서도 목표는 항상 채워지고, 넘습니다”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에 대해 “아마, 나눔의 뜻을 가지고 계신 좋은 분들은, 내가 이렇게 힘드니 남은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으로 어려울수록 십시일반 해 주시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며 “그 분 한 분 한 분의 손길을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몇 년째 서울 지하철 2호선 대림역 앞에서 구세군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노호순(가정주부·40)씨는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길이 다녀갈 때 가장 보람을 느끼죠. 너무 예쁘잖아요. 또, 다들 지갑이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넣는데 꼭 흰 봉투에 돈을 담아서 넣고 가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아무래도 기대를 하게 되잖아요(웃음). 나중에 보면 그 돈이 천원, 2천원일 때도 있고 더 많을 때도 있지만,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기 위해서 깨끗한 봉투를 준비하고, 또 구세군이 있는 곳을 찾아 일부러 넣으셨다는 것에 또 마음이 찡해지곤 해요”라고 말한다.


구세군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이야기는 이 외에도 참 많다. 무명의 모금인 구세군 냄비는 순수한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몇 해 전, 한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명동 구세군 냄비에 보기에도 많아 보이는 돈뭉치를 슬그머니 넣고 사라지려 했다. 종을 울리던 사관이 깜짝 놀라 ‘이렇게 큰돈을 넣으시는데 순간적인 마음으로 그러시는 것 아닙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라고 말하자 부끄러운 듯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받으셔도 됩니다’라고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성함이라도…’라고 묻는 사관에게서 도망치듯 떠난 사람이 남긴 것은 은행에서 갓 찾아온 듯한 2000여만원의 현금이었다.
자선냄비에 부끄러운 듯 돈을 담고 까르르 웃으며 도망치는 아이들. 봉투를 준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주머니를 뒤적여 재빨리 넣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걸어가는 남자.


자신의 삶 속에서 남을 돕는 순간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는 자선냄비는 어려운 이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일상에 찌든 사람들에게는 뿌듯함과 행복감을 나눠주고 있다.
올해에도 빨간 자선냄비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따뜻한 행복을 한 그릇 나눠 마시고 함께 뛰는 2006년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지.
올해에는 따뜻한 종소리가 더 많이, 더 멀리 울려 퍼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성지은 기자 tjdwldms@laborplus.co.kr

 

자선냄비는 언제?
1897년, 추운 겨울. 샌프란시스코 항에 배 한척이 난파당해 난민이 생겨났다. 하지만 경제 불황 속에 있던 시 당국은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가는 난민들을 도와 줄 예산이 없었다.
조셉 맥피라는 한 젊은 영국 선원이 그것을 보고 자신의 고향 선착장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걸려 있던 ‘심슨 솥’이라고 하는 커다란 솥을 떠올렸다.
여기에 아이디어를 얻어 ‘자선 솥’을 걸어 놓고 난민들을 도와 줄 것을 호소했고 난민들은 따뜻한 저녁식사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이 ‘자선의 솥’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고 현재 전 세계의 구세군에서 가장 대중적인 모금방법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 후원참여 : www.jasunnambi.or.kr
● 전  화 : 02-720-9419      ● ARS : 060-700-9390
● 자선냄비 봉사자 모집 : prsa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