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여, 당당하게 찌질하자
젊은이여, 당당하게 찌질하자
  • 안형진 기자
  • 승인 2010.12.1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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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대의 찌질한 고민에 대한 변명

▲ 안형진 hjahn@laborplus.co.kr

근래 저의 고민은 ‘도대체 우리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해 놓으니 뭔가 대단한 고민들인 것 같지만 실상 속살을 드러내놓고 보면 ‘찌질’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오랜 시간 취업을 하지 못해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 매일 열심히 일하면서도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치료비조차 감당할 수 없었던 친구의 이야기, 수천만 원의 학비를 넘어서 졸업 후에도 부모님께 손을 내미는 몰염치의 극치를 발휘 중인 고시원의 그 친구까지 고민은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찌질’합니다.

그들이 찌질해 보이는 이유

불과 20~30년 전 대학생들이 고민했다는 ‘사회구성체 논쟁’이라든지 ‘페레스트로이카 논쟁’이라든지 텍스트를 읽어보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어려운 이야기들과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고도 곧장 노동현장으로 달려갔다는 당시의 젊은 활동가들의 이야기들까지 많은 예전 일들을 접하다보면 고민의 찌질함은 더욱 커집니다.

우리들 젊은이의 고민이 왜 ‘찌질해 보일까’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우리들 젊은이의 고민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의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젊은이들 고민의 출발점이 ‘이 사회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에서 출발했다면 요즘의 젊은이들은 ‘난 왜 이럴 수 밖에 없는가’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전자의 고민이 논리적이고 공리적이라면 후자의 고민은 감성적이고 이기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찌질’해 질 수밖에 없겠지요.

현재의 젊은이들은 더이상 ‘소 팔고 논 팔아 공부시키면 부모를 부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취업을 위한 공부는 끝이 없고, 경쟁에서 탈락하면 울며 겨자먹기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거나 끝없는 방황을 되풀이하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사회 탓만 하고 있는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뒤쳐진 자신을 탓하자니 조금 억울하기도 합니다.

솔직한 당당함으로 세상을 바꿔라

어쨌든 저는 저와 제 친구들의 고민이 비록 찌질할지라도 중요한 문제라고 여깁니다. 이 찌질한 고민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삭막해지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달리 생각해보면 오히려 현재 젊은이들의 고민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가진 양극화, 청년실업, 비정규직에 이르는 광범위한 문제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기도 합니다.

달리보면 이전 젊은이들의 고민과 현재 젊은이들의 고민은 그 출발점에서의 주체가 다를지라도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은 고민인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저는 젊은이들이 조금 더 당당하게 찌질했으면 좋겠습니다. 경쟁에서 밀렸다는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더 당당하게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솔직한 당당함이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꿔가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요?
 

안형진의 皆忘難以(개망난이)  모두 어려움은 잊고...행복해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