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가 그립다
회초리가 그립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12.2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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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교권, 다시 세우려면

박석모 smpark@laborplus.co.kr
얼마 전,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여교사가 학생에게 맞아 병원에 입원했다는 기사가 언론에 오르내린 적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전에 없이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했다느니 희롱했다느니 하는 기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누가 힘이 센지를 가지고 우위를 따지자는 것은 아닙니다만, 남고생 정도 되면 교사가 학생들을 완력으로 제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으레 뒤따라 붙는 말이 ‘교권 붕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일각에선 체벌금지가 원인이라는 진단도 내놓고 있습니다. 교사가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체벌인데, 그걸 금지하니 해방감을 느낀 학생들이 교권에 도전한다나요?

교권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르칠 권리를 지칭할 때는 배울 권리를 지칭하는 학습권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쓰입니다. 다른 의미에선 교사의 권위라는 뜻도 가지고 있죠. 교권이 붕괴됐다고 할 때는 주로 후자의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가르칠 권리라는 말은 그닥 적절한 용어가 아니라는 점만 지적하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학교교육에 국한해서 본다면 교육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 도덕을 학생에게 전수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을 재생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해야 할 의무이지 권리는 아니지요. 계급사회에서는 지배계급이 교육을 독점한다는 측면에서는 가르칠 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자본주의는 시민들의 평등에 기초한 사회이니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측면에서 검토가 필요하겠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교권은 교사의 권위를 뜻하는 말입니다.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교사의 권위가 무너진 건 사실인 것처럼 보입니다. 뭐 고등학교 시절 교사의 권위에 도전했던 당사자인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게 적당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

벌써 20년이나 지난 일이기는 합니다만, 전 고등학교 때 ‘참 말 안 듣는’ 문제아였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보충수업,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밤 늦게까지 학생들을 학교에 잡아놓고 공부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2학년 여름방학 때 이후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거의 받지 않았지요. 아침조회가 있는 8시50분쯤 등교하고, 정규수업이 끝나면 학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보충수업 때 진도를 나가기도 했습니다만, 뭐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정상적인 수업 시간에도 다른 책을 보기 일쑤였으니까요.

심지어 맘에 안 드는 선생님의 수업시간에는 출석 체크가 끝나자마자 손 들고 ‘수업 받기 싫습니다’ 하고 교실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게 무슨 대단한 행동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쭐하기도 했습니다.

제 부끄러웠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는 건 교사를 때리는 학생들의 심정을 헤아려보기 위함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9년에 전교조가 결성됐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처음엔 40여 분의 선생님들이 전교조에 가입했지요. 그리고 그해 여름 엄청난 홍역 끝에 10분의 선생님들이 해직됐습니다.

그 당시, 학생들도 선생님을 지키자며 수업거부니 가두시위니 하는 집단행동을 했습니다. 학생회 간부였던 저도 거기에 깊숙하게 관여했습니다. 지역의 고등학교 학생회들과 함께 2만여 명의 고등학생들을 가두시위에 동원했는가 하면, 학교에서 수업거부와 집회를 하고 교문 밖으로 진출하려다 전경과 대치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여름이 지난 후 선생님들을 바라보는 제 눈이 그 이전과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해직되지 않고 교단에 남아있던 선생님들은 제게는 더 이상 선생님이 아니라 단순히 지식의 전달자였을 뿐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라기보다는 먼저 지식을 접한 선배였을 뿐이지요. 적어도 제가 인격적으로 존경해야 할 선생님은 교단에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전 졸업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의무’만 하기로 작정했던 겁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서, 전 나름대로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공부를 했습니다. 방과 후에 사회과학서점에 들려 밤 늦도록 시사잡지나 책을 읽었습니다. ‘데모는 대학교 가서 해도 늦지 않다’는 선생님들의 말은 제게 ‘신념을 지켜 해직되지 못한 지식 전달자의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런 선생님들의 권위를 인정할 리 없었지요.

대학 합격률이 교사 능력?

요즘 학생들이 교사들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와는 경험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요즘 학생들에게도 교사들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 이상은 아닐 듯합니다. 학교에서 전인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인성을 기른다는 것은 교육학 이론에나 나오는 말이 아닌가요? 교사의 능력은 오로지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학과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합격시켰는지에 따라 평가되는 게 현실 아닌가요?

오히려 성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학교 교사들보다 학원 강사들이 더 유능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학생들은 학교를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 아닌가요? 졸업을 위한 최소한의 의무로 학교를 다녔던 저와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학교교육을 인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건 강요일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도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이야기 외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공교육 정상화는 적어도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일 테니,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답하기가 어렵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그야말로 ‘백년지대계’를 지금부터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가 무엇을 위해 교육을 하고,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하는 것들을 지금부터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공교육 정상화는 교사와 학생의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학과를 가는 것은 결국 취업에 유리한 ‘간판’을 따기 위한 것이고, 그게 학교교육의 목표가 돼 있는 이상 공교육 정상화는 어렵겠지요. 그러니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바꾸는 일과도 맞물릴 수밖에 없겠네요.

체벌하려면 자격부터 갖춰라

너무 거창한가요? 교사를 때리는 학생은 체벌을 허용하면 바로잡을 수 있다고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당장 맞기는 싫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해결되는 건가요? 그렇게 강압한다고 교사의 권위가 서나요? 이런 식의 비교를 하면 당사자들은 대단히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총칼로 국민을 강압했던 군사정권의 권위가 서던가요?

총칼과 체벌은 단지 미봉책에 불과할 뿐,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은 될 수 없을 겁니다. 제 경우만 봐도, 제가 고등학교 시절 두드려 맞았다고 말 잘 듣는 학생이 됐을 리는 없을 겁니다. 아마 차라리 졸업장을 포기하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체벌에는 찬성합니다. 학생은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존재이고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학생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체벌이 필요합니다. 체벌은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성을 기르는 또 다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부모가 아이들에게 체벌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다만, 교사도 학생에게 체벌을 할 수 있을 만한 인격을 갖추고 있어야겠지요. 서두에서 말했던 수원의 교사처럼, 학생들이 잘못했다고 학생들끼리 서로 때리게 하는 그런 체벌을 가하는 교사라면 자격이 없다고 해야겠지요. 더 심하게 말하면 맞을 짓을 한 겁니다. 물론 때린 학생이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만.

또, 체벌을 받는 학생들도 교사의 체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겁니다. 그런 태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요즘처럼 집에서 ‘오냐 오냐’만 한다면 아마도 아이들은 체벌을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그러니 공교육과 함께 가정교육도 정상화돼야 하지 않을까요?

인격을 갖춘 교사가 학생들이 납득하는 가운데 체벌을 하는 경우에도 합당한 목적과 합당한 수단이 합당한 정도로 가해져야 하겠지요. 이런 전제가 없다면 체벌은 결국 총칼로 국민을 억누르는 군사정권의 강압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박석모의 우공이산
 시련도 많고 좌절도 많지만, 희망이 있기에 오늘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