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와 함께한 반백년, 千年을 울리다
종소리와 함께한 반백년, 千年을 울리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01.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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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맥 끊긴 전통기법, 끈기로 되살려
에밀레종 복원에 남은 힘 쏟을 터
밀랍주조공법 복원한 주철장 원광식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섣달 그믐날 자정. 은은하게 울리는 33번의 종소리를 들으며 묵은해의 시름과 번뇌를 씻고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세시행사로 자리 잡은 지도 벌써 반세기를 넘었다. 2010년을 마감하던 지난 12월 31일 밤에도 서울 보신각에서는 어김없이 33번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번뇌를 씻어주는 청아한 종소리를 창조해낸 이가 중요무형문화재 112호로 지정된 원광식 주철장(69)이다. 원래 보신각에 걸려 있던 종이 그 수명을 다하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뒤, 원광식 주철장이 새로 주조한 종이 보신각을 지키며 매년 제야의 종 타종행사에서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현재 범종을 주로 주조하고 있는 성종사의 대표인 원광식 주철장이 처음 범종과 인연을 맺은 것이 1960년이었으니 벌써 반백년을 종소리와 함께해온 셈이다. 종소리와 함께한 반백년, 원광식 주철장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 쇳물 붓기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시련, 한쪽 눈을 잃다

지난 12월 16일, 충북 진천에 위치한 성종사에서는 거푸집에 쇳물을 붓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쇳물이 굳고 거푸집을 떼어 낸 후 마무리 가공을 하면 비로소 하나의 범종이 완성될 것이다. 혹시 잘못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쇳물 붓는 작업을 지켜보고 있는 원광식 주철장의 눈길이 분주하다. 쇳물 붓기가 무사히 끝난 후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이제 인터뷰를 하자며 사무실로 이끈다.

벌써 수백 번도 더 했을 쇳물 붓기 작업이건만 원광식 주철장은 처음 하는 작업이나 되는 양 삼가고 또 삼간다. 단 하나를 만들더라도 완벽하게 하고자 하는 그 자세가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원광식 주철장이 지금껏 만들어온 범종만 해도 보신각종을 비롯해 7천여 구가 넘는다. 그중에는 1만 관(貫, 1관은 3.75㎏)에 달하는 세계평화의 종을 비롯해 5,300관짜리 보신각종 등 1천 관이 넘는 범종들이 수두룩하다.

원광식 주철장은 8촌 형님(원국진, 1972년 작고)이 운영하던 성종사에 들어가면서 처음 범종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그의 나이 17세. 원광식 주철장은 군대에 다녀온 1963년부터 본격적으로 종을 만드는 장인의 길로 들어섰다.

일제가 전쟁 물자를 대기 위해 전국의 사찰에 있는 범종을 거둬가는 통에 원광식 주철장이 처음 종을 만들기 시작한 1960년대 초에는 남아있는 범종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워낙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 범종을 만들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 경제가 차차 나아지면서 교회와 사찰 등에서 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당시 성종사에서는 그렇게 수요가 늘어난 종을 만들었다. 정신없이 일했지만 그때만 해도 먹고살기 위해 종을 만들었을 뿐, 사명감을 가지고 종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원광식 주철장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된 것이다. 종을 만들다가 쇳물이 폭발하면서 한쪽 눈을 잃었다.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면서 원광식 주철장은 1년여 동안 성종사를 떠나기도 했다.

▲ 진천 종박물관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도전, 밀랍주조공법 복원하다

원광식 주철장이 다시 성종사로 돌아왔을 때, 마침 수덕사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범종을 제작하는 데에 참여하게 됐다. 원광식 주철장은 수덕사 한쪽에 작업장을 차리고 종 만드는 데 몰두했다.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수덕사 종을 완성하는 데에는 꼬박 3년이 걸렸다.

수덕사 종을 완성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고 제작 주문이 줄을 이었다. 그럴수록 그의 고민은 컸다. 무엇보다 당시 성종사에서 종을 만들던 기술은 전통기술이 아니었다.

“내가 스승(8촌 형님)한테 배운 종 만드는 기술이 사실 전통적으로 배운 기술이 아니었거든. 이게 항상 고민거리였지. 그래서 일본의 종 만드는 곳엘 갔는데 일본에서는 사형주조공법으로 종을 만들고 있었지. 그런데 이 사람들이 소재를 보여주지 않는 거야.”

고민을 거듭하던 원광식 주철장은 당시 국내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과 함께 ‘범종연구회’를 만들어 우리나라 범종을 연구했다. 범종연구회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국내에 남아있는 종의 탁본을 떠 문양을 연구하고, 한편으로는 종소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서울대 공대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렇게 해서 1985년에 만들어진 것이 보신각종이다. 보신각종은 사형주조공법으로 만들어진 종으로 서울대에서 설계하고 성종사에서 제작을 담당했다. 보신각종을 완성하고 나자 전국의 시·도에서 20~30t짜리 대형 범종들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형주조공법은 정교한 문양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원하는 소리도 얻을 수 없었다. 성종사는 각 시·도의 범종을 제작하면서 사형주조공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모래에 화학 경화제를 섞어 모래를 강제로 경화시킨 후 주조하는 펩세트 주조공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펩세트 주조공법은 사형주조공법에 비해 더 정교한 문양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었다.

원광식 주철장의 목표는 신라와 고려시대의 종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라시대의 종 만들던 기술인 ‘밀랍제조공법’은 전설처럼 전해질 뿐 조선시대 이후 그 맥이 끊겼다. 문헌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으로 눈을 돌렸어. 그래서 중국에 갔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그 사람들도 모르는 거야. 그러다가 북경박물관 근처에서 밀초로 칼을 만들던 90여 세 되는 노인을 만났지. 워낙 나이가 많아 정확하게는 설명을 못 하더라고. 어쩔 수 없지. 직접 만들어보는 수밖에.”

밀랍을 이용해 거푸집을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문제는 거푸집이 쇳물의 뜨거운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버린다는 것이었다. 관건은 거푸집을 만드는 흙을 어떻게 배합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온갖 흙을 구해다 거푸집을 만들어봤지만 허사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숭실대 박물관에서 동경(銅鏡, 구리거울)을 만들던 활석 거푸집을 발견하고 ‘바로 이것이구나’ 싶었다. 그 길로 바로 경주 남산에서 활석과 이암을 가져다가 거푸집을 만들었다. 고진감래라고 할까. 그렇게 거푸집까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전통 공법인 밀랍주조공법을 재현해낸 원광식 주철장은 그 공법으로 신라 상원사 종, 선림원 종, 충주 운천동 출토 범종, 고려 내소사 종 등 20여 구의 종을 복원했다. 문화재위원회는 이런 공로를 인정해 2001년 그를 중요무형문화재 112호 주철장으로 지정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미래, 해외로 눈 돌리다

지난 2005년 4월, 대형 산불이 강원도 양양을 휩쓸었다. 그 산불의 와중에 보물 479호인 낙산사 동종이 녹아내렸다. 원광식 주철장은 그로부터 1년 6개월여를 꼬박 낙산사 동종 복원에 매달렸다. 마침내 2006년 10월, 낙산사 동종이 밀랍주조공법으로 제작됐다. 복원된 동종을 타종하던 날, 서울대 음향분석연구팀은 기존의 낙산사 동종과 복원된 종의 음파가 유사한 형태를 띤다며 성공적인 복원이라고 결론지었다.

어디 낙산사 동종뿐이겠는가? 원광식 주철장은 현재 남아있는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범종을 모두 복원하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그의 바람대로 많은 범종들을 복원했다. 이제 남은 건 성덕대왕신종, 이른바 에밀레종이다. 만들어진 지 1,3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최고의 종으로 일컬어진다.

“지금 기술이 없어서 복원을 못하고 있는 건 아냐. 복원할 수는 있는데, 1천여 자의 글자가 범종에 새겨져 있거든. 그런데 오래 되다보니 많이 뭉개져 있어. 어떤 사람은 1,300년 된 질감을 표현해서 지금 남아있는 실물하고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새로 만든 것처럼 복원하라고 하고. 그래서 갈등하고 있는데 몇 년 안에 복원할 거야.”

성덕대왕신종이 복원되면 원광식 주철장은 각 시대별로 만들어진 범종을 한데 모아 진열하려 한다. 한 눈에 어떤 범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종 만드는 기술도 각 시대별로 한 곳에 모으려 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진천에 있는 종박물관이다. 종박물관에는 원광식 주철장이 복원해 기증한 200여 구의 종이 전시돼 있다. 또 2층 전시실에는 밀랍주조공법으로 종 만드는 과정이 밀랍인형으로 재현돼 전시되고 있다.

다른 한편 원광식 주철장은 불교문화권 나라들에 범종을 수출하는 데에도 눈길을 돌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각 사찰과 시·도에서 종을 만들고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 건사하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태국, 미얀마, 대만, 싱가포르 등 눈을 들어보면 시장이 널렸어. 종은 있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 거야. 일본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때는 이때다 싶은 거지.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딨어. 그래서 나는 나가자, 우리는 지금 당당하게 나갈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가자, 이렇게 말해.”

원광식 주철장은 그래서 기증을 많이 한다. 중국 대종사에서부터 태국 국왕과 미얀마, 일본 대사관 등 지금까지 수많은 종을 기증했다. 그렇게 해서 세계 각국에 우리 범종을 알려야 한다는 거다. 또 각 나라 전통양식에 맞는 범종을 만드는 것도 수출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런 노력 끝에 성종사는 현재 대만, 싱가포르, 일본, 중국, 홍콩, 베트남, 미국 등지에 범종을 수출하고 있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수출이 늘어날 거라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원광식 주철장은 절대로 해외에다가 공장을 짓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해외에 나가서 공장을 지으면 가지고 있는 기술만 넘겨주는 꼴이 될 거라는 게 이유다. 기술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수출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더 받으면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원광식 주철장이 이처럼 기술을 자신 있게 여길 수 있는 것은 그만한 노력이 뒷받침 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밀랍주조공법의 비밀을 찾기 위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까지 샅샅이 훑고 다녔다. 또 무수한 실패에도 실험을 거듭해 자신만의 기술로 만들어내기까지 지금껏 그가 살아온 과정이 그대로 기술개발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광식 주철장의 마지막 한 마디는 마치 그가 만들어낸 종소리처럼 나지막한, 그러나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돈이 생기면 대부분을 기술개발에 다시 투자했어. 집에서는 불평도 하지만, 기술개발을 하지 않으면 지금 가진 것밖에 못 만들어. 그러면 미래가 없지. 사람이 어느 길을 가려고 하면, 돈에 탐욕을 내면 안 돼. 그러면 절대 장인이 아냐.”

▲ 1. 밀랍 녹이기_가마솥에 밀랍을 넣고 가열하면 녹으면서 액체로 변한다.
▲ 2. 문양 제작_용뉴, 연곽, 당좌, 비천 등 각각의 문양을 이암석에 음각으로 조각하여 문양틀을 만든다.
▲ 3. 밀랍 문양판 제작_이암석에 조각한 문양틀에 밀랍을 부어 굳힌다.

 

 

 

 

 

 

 

 


▲ 4. 밀랍 원형 제작_나무로 종의 골조를 세운다음, 새끼줄이나 삼끈으로 칭칭감고, 그 위에 밀랍을 바른다.
▲ 5. 밀랍 문양판 조립_2단계에서 생산된 밀랍조각들을 붙이는 작업
▲ 6. 주물사 바르기_밀랍으로 만든 종위에 이암석 + 황토흙 + 모래를 적당히 혼합해서 바른다. 3,4회 바른 후, 황토흙에 짚을 섞은 흙으로 재차 바른다. 두께를 주어 안의 내용물이 잘 보존되도록 한다.

 

 

 

 

 

 

 

 

 

 


▲ 7. 탈랍 및 소성_열을 가열해서, 내부의 밀랍으로 만든 원형을 녹인다.
▲ 8. 내형 제작_종의 높이만큼 호를 파고, 그 안에서 종의 내형을 만든다.
▲ 9. 내·외형 조립_호 안에 있는 내형위에 외형을 잘 맞추어 고정한다. 고정이 끝나면 흙으로 잘 덮고, 쇳물이 잘 흐를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

 

 

 

 

 

 

 

 

 


▲ 10. 쇳물 붓기_쇳물이 종의 구멍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불순물과 이물질이 섞이지 않게 하며, 쇳물이 골고루 잘 들어가도록 종 내부를 따뜻하게 해준다.

종 만드는 공법

1. 사형주조공법_촉촉히 반죽된 주물사(주조에 사용하는 주형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모래. 강도와 내화성·통기성·성형성이 좋아야 한다)를 형틀에 붙인다음 회전판을 사용하여 내부가 빈 종모양의 원형을 만든다. 문양이 들어갈 부분에 양각으로 조각된 목판을 사용해 도장 찍듯이 문양을 찍어 넣는 방법으로 주형을 제작한다. 정교한 문양은 묘사하기가 어려우며 완성된 범종 표면에 굴곡이 발생하지만, 다른 공법에 비해 조각이나 재료비 등 제작 비용이 적게 든다.

2. 펩세트 주조공법_모래에 화학 경화제를 섞어 모래를 강제로 경화시킨 후 주조하는 공법이다. 범종과 동일한 크기와 모양의 FRP 모형에 형틀을 씌운 뒤 그 사이에 화학 경화제를 혼합한 모래를 다져 넣어 FRP 모형의 문양을 모래로 받아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종표면에 울퉁불퉁한 굴곡이 발생하지 않으며 어느정도 정교한 조각도 묘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동일한 문양은 하나만 조각해 찍어내면 되는 사형주조공법과는 달리, 범종 전체를 조각해 이것을 다시 FRP 모형으로 만들어야 하는 등 몰드 제작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3. 밀랍주조공법_밀랍(벌집)과 쇠기름을 적당히 배합해 만든 초를 사용해, 제작하고자 하는 종 모양과 동일한 초 모형을 만든다. 열에 강한 분말상태의 주물사를 반죽해 모형 표면에 수차례 바르고 건조시키는 과정을 거쳐 일정한 두께를 준 뒤 이를 완전히 건조시킨다. 은근한 열을 가해 내부의 초 모형을 제거한 상태에서 쇳물을 부어 종을 제작한다. 사형주조공법이나 펩세트 주조공법에 비해 작업공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많은 제작기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다른 공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섬세한 문양과 깨끗한 표면, 부드러운 소리를 가진 범종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