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기는 과연 정당한가
죽이기는 과연 정당한가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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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옹호론자’들의 위험한 공격성


신인 여자 탤런트 K는 얼마전 자신이 출연하고 있는 TV 시트콤 홈페이지 게시판과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집중적인 공격을 당했다.
연기력의 부족을 탓하는 거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국어책 읽는 수준의 신인 연기자(사실 연기자라기보다는 스타로 키워지는 상품)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상할 일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인신공격 수준의 온갖 욕설을 살펴보면 그런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제발 좀 이쁜 척 하지 마” “방송 보다 토할 뻔 했다” “보기가 역겹다” “제발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해달라.”
이 신인 탤런트가 무차별 공격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 방송의 ‘짝짓기’ 오락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스타 그룹의 멤버와 짝이 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그룹의 팬들이 몰려들어 ‘뭇매’를 때려댔다.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마세요’
이들이 바로 그 악명 높은 ‘빠순이’들이다. 예전에 대통령 후보였던 한 인사가 그 뜻도 모른 채 여고생들 앞에서 썼다가 심한 반발을 샀던 단어가 ‘빠순이’다. 흔히 특정 스타의 맹목적인 팬들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다.
이 단어가 여성형인 것은 보통 아이돌 스타들이 남성이고, 그들을 추종하는 팬들이 여성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편적인 용어인 ‘빠순이’로 부르는 것 뿐이니 성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탓하지 말아주시길.


이른바 ‘빠순이’들에게는 논리란 없다. 무조건적 옹호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사랑하는 ‘오빠’들에 대한 불리한 기사가 나오기라도 하면 인터넷 게시판 댓글을 온통 ‘도배’한다.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마세요’는 애교스러운 정도고 해당 기자를 ‘죽이겠다’는 협박도 심심찮다. 조직적으로 항의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거의 마비시키는 것은 예사고, 불매운동이나 피켓 시위와 같은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아이돌 스타 그룹이 탄 승합차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의 반응은 ‘빠순이’들의 행동양태를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상대 차량 운전자가 숨졌음에도 이들은 ‘오빠들도 다쳤다’는 정도를 넘어 ‘우리 오빠들이 탄 차에 치어 숨진 걸 영광으로 알라’는 어처구니 없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HOT, 젝스키스 등 연예기획사에 의해 상품화된 그룹들이 등장하면서 조직화되기 시작한 이들은 이제 한 그룹당 수만명 이상의 인원을 ‘자랑’한다. 점점 더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기획 가수’들의 경우 데뷔도 하기 전에 팬클럽이 먼저 결성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광기’에 대해 한순간의 치기라고 여기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즉 이들의 목소리가 다수가 아니라 이들의 그릇된 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다수를 차지하는 건강한 사회라는 뜻이다.

 

<PD수첩>은 죽을 죄를 지었는가
그러나 최근 이들 아이돌 스타들의 팬클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빠순이’들이 한국 사회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에 대해 지적한 <PD수첩> 방송 이후 나타난 거대한 광기가 그것이다.
이 방송 이후 담당 PD와 그 가족들을 몰살시키겠다는 협박은 물론, 집단적인 항의와 방송사 앞 촛불 시위, 광고주에 대한 압력 행사 등이 이어지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내뱉는 언사는 집단 광기의 표출 외에는 다른 말로 표현하기 힘들 지경이다.


대체 <PD수첩>에서 무슨 잘못을 했길래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방송 내용은 지극히 평범한 수준이었다. 난자 제공이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헌혈하듯 간단한 일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연구용 난자 제공 과정에 대한 투명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또 연구원으로부터 난자를 제공받은 적이 없다는 당초 입장과는 달리 그런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난자 매매를 알선한 쪽에서 일정 지분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후폭풍은 무서운 것이었다. 담당 PD는 매국노가 되어 버렸고, 해당 방송사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정치권까지 나서서 난자를 강제로 채취한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거들고 있다.
평소에 방송사에 대해 ‘친여적’이라 믿고 있던 일부 신문들은 신이 나서 네티즌들을 부추기고 나섰고, 네티즌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중계하듯 ‘생생하게’ 보도하고 있다.


이 사안에는 평소의 정치적 입장이나 소신도 상관이 없는 듯 보인다. 우리 사회를 편가르던 ‘유령’ 중 하나인 친미냐, 반미냐의 구분도 없는 것이다. 오로지 ‘애국적 열정’만이 들끓는다. 황우석의 편에 서면 애국이고, 조금이라도 비판에 나서면 매국이다.

 

‘광기’가 다수의 힘을 얻을 때
분명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들의 시기와 질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기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생명을 더욱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직 확실치도 않는 결과의 정당성을 내세우면서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 여부에는 눈감아야 한다는 논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PD수첩>의 보도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언론의 역할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비판의 여지는 완전히 봉쇄된 채 줄서기만을 강요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것이 소수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회적 다수의 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쇼적 광기가 다수의 힘을 얻게 될 경우 발생하는 위험성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 황우석 교수를 옹호하는 쪽은 국익을 말한다. 하지만 이 논란은 황우석 교수가 옳으냐 그르냐의 논란이 아니다. 그 방법에 잘못된 점은 없는지, 그렇다면 고쳐나갈 수는 없는지에 대한 새로운 의제가 형성된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광기가 계속된다면 결국 논쟁의 핵심은 사라진 채 어디에 줄을 설 것인가를 강요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황우석 교수 본인도 바라지 않는 바일 것이다.
지금 황우석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는 많은 이들은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한발짝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자신들의 모습이 이른바 ‘빠순이’들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말이다.
팬클럽도 긍정적 요소들이 많다. 단순히 스타덤에 의해 소비자, 수용자로 머물러 있는 것을 극복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팬덤을 형성한 사례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박제화된 스타덤의 허상을 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자문해봐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