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대상 ‘노동교육’, 계속될 수 있을까?
학생 대상 ‘노동교육’, 계속될 수 있을까?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1.01.0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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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교사, “필요성 공감”…매년 신청 학교 증가
예산 삭감으로 내년도 사업 불투명…교과부 지원 필요
[현장]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2010 예비직장인교육

취업을 앞둔 고3 학생들은 ‘직장생활’의 이모저모에 대해 어떤 점을 궁금해 할까? 한국노총 중앙법률원과 소속 20개 지역법률상담소는 전국 162개 고등학교 29,348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2010년 예비직장인 교육’을 진행해 궁금증을 즉석에서 풀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직장인으로서, 노동자로서 꼭 알아야하는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도 함께 짚어봤다.

중·고교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런 ‘노동교육’은 현재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이 3년째 진행하고 있는 예비직장인 교육은 지속 자체로 의미가 크다. ‘노동단체가 진행하는 교육’이라며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교육에 참여했던 학교에선 매년 교육 대상 인원을 늘리고 있다. 과연 어떤 부분이 학생들과 일선 교사들의 아쉬움을 채워주고 있을까?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교육 내용 “만족”…매년 신청 학교 늘어

2008년 전국 120개교에서 시행된 예비직장인 교육은 작년 137개교, 올해 162개교로 교육을 희망하는 학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는 교육이 진행됐던 학교에서 내용이나 결과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고 재차 신청하는 한편, 학생들이 밀집된 서울, 경기 지역에서 예비직장인 교육이 적극적으로 홍보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작년 진행된 예비직장인 교육을 이수한 학생과 담당교사 2,018명을 대상으로 사단법인 국가지역경쟁력연구원이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교육에 대한 종합만족도는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특히 학생들보다 담당교사들의 종합만족도가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91.5점으로 매우 높았다.

세부적인 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교육 내용이 향후 직장생활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한 교사들의 99.1%가 긍정적인 답변을 했으며 82.9%의 교사들은 교육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 2008년부터 매년 예비직장인 교육을 신청한 경기 이천 다산고등학교 임성찬 전문과학부장은 “노동기본권에 대해 학생들이 취업 전 알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많은 학생들에게 교육을 듣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편 응답한 학생들의 56.9%만이 교육시간이 적절하다고 답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교육이 상대적으로 몰입도가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지정희 국장은 “이를 고려해 올해는 상반기 중 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단발성 교육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학생들이 노동교육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와 같은 취지에서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은 교육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동영상 CD 3천여 부를 제작·배포하는 한편,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궁금해 하는 사항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요약한 30쪽 내외의 교육자료를 전국 학교에 배포했다.

예비직장인 교육은 전문강사의 강의 및 간단한 퀴즈 등을 통한 참여형 교육으로 진행됐으며 ▲ 일자리를 구할 때 확인할 내용 ▲ 일을 그만두거나 해고시 유의사항 ▲ 폭언, 폭행을 당했을 경우 대처 ▲ 성희롱에 대한 대처 ▲ 학생들을 위한 알기 쉬운 노동법 등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작년 예비직장인 교육 종합만족도 조사보고에서 학생들은 향후 추가적으로 제공받고 싶은 교육내용으로 ‘구직활동 전반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고 답했다. 이는 청년실업 등이 사회 이슈화되면서 구직을 위한 다양한 경로, 이력서 작성이나 면접 요령 등의 구체적 정보에 대해 학생들이 관심을 많이 갖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학생들의 피드백을 토대로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은 기존의 중심내용들에 더해 이력서,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의 요령이나 상사와의 관계유지, 연봉협상 등 직장생활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하는 ‘길라잡이’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 내용을 일부 추가했다.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최저임금과 근로계약서 작성이 가장 궁금해

지난해 12월 9일과 21일 충북 광혜원고와 경기 이천 다산고의 예비직장인 교육에 참여한 347명의 학생들은 법정 최저임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올해 최저임금인 4,110원에 대해 처음 들어본다고 답했으며 일부는 방과 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은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졸업 후 취업이 예정된 광혜원고 양은지 양 역시 인근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이 있으며 최저임금에 대해 강의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직장에 들어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부분도 배우게 됐다며, 평소 모르고 넘어갔을 부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배운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총 이천지역지부 이성찬 기획실장은 “교육이 끝나면 학생들로부터 최저임금도 못 받았다거나 임금이 체불됐다는 상담이 수시로 접수된다”며 “대부분의 경우 대처요령을 알려주는 선에 그치지만 간혹 어린 학생들이라고 강압적으로 대하는 업주들도 있는데 그 경우 지역지부나 지역상담소에서 직접 해결해 주기도 한다”고 밝혔다.

또한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을 사전에 약속해 두는 근로계약 체결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다. 교육이 끝난 직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급여를 최저임금 이하로 받았다고 상담해 온 한 여학생은 “근로계약서를 써야 되는 것인지 전혀 몰랐다”며 “급여나 일 하는 시간은 사장님이 ‘통보’해 주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육을 진행한 강사들은 혹시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가급적 근로계약은 구두보다 서면으로 체결할 것을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광혜원고 학생 취업담당 김상순 교사는 “인구가 적은 지역상권에서 특히 서비스 계통 업종은 학생 아르바이트를 쓰지 않으면 운영 자체가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확한 집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해 온 학생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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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대상 ‘노동교육’은 그 자체로 큰 의미

그렇다면 학생들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교육인 동시에 ‘현실’에서 부당한 대우를 방지하는 기능도 수행할 수 있는 노동교육이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의 예비직장인 교육과 같이 다른 곳에서도 활발히 진행 중에 있을까?

현장의 교사들은 ‘찾아볼 수 없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그나마 유사한 활동이 ‘진로상담’을 위한 시간인데, 그마저도 전문 인력이 부족해 학생들에게 충분히 시간을 할애할 여력이 없다고 한다. 또한 기존 진로상담 활동은 주로 대학 진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광혜원고 박노진 교장은 “학생들 스스로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아무래도 진학지도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며 “학생들의 진로인성교육과 진학컨설팅을 위해 내년 45명의 교사에게 12시간 상당의 연수를 받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산고 노훈 교감 역시 “수능이 끝난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CEO특강, 피부미용강좌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했지만 ‘노동교육’이란 측면에서 접근할 기회는 없었다”며 “학생들이 진로와 직업에 대한 의식을 고양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학생들에게 ‘노동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일선 현장의 교사들에게선 매년 반복돼 제기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업계획의 수립이나 예산 편성의 움직임이 아직까지 뚜렷하지 않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정광호 원장은 “학생들이 현실 사회에서 앞으로 직장인으로서 꼭 알아야 할 권리나 의무에 대한 노동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며 “아쉬운 것은 노동단체에서 본격적으로 노동교육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여러모로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 차원의 고민 틀 없어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경기지역 5개 지역법률상담소가 지난 2004년 처음 진행한 이래, 2008년부터 고용노동부로부터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아 전국 단위로 사업을 확장한 예비직장인 교육은 예산 문제로 사업이 더욱 확장되기는커녕 축소될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노총의 올해 예산 중 중앙법률원에 배정된 부분이 20% 삭감되면서 교육 진행 자체가 불가능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지정희 국장은 “여타의 부서는 몇몇 사업을 축소하거나 폐지해 예산 규모에 맞추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예비직장인 교육의 경우 대부분의 예산이 실제 교육을 담당하는 강사들의 인건비로 지출되기 때문에 축소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예비직장인 교육은 중앙법률원 자체 예산과 고용노동부의 예산지원금, 경기도의 특별지원금으로 사업이 진행됐다. ‘예비직장인’인 학생들을 교육한다는 점에서 고용노동부의 지원이 일면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노동교육을 국가 교육 차원에서 바라보지 않고 노동현장의 문제 정도로만 치부한다는 점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아닌 고용노동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있다.

현장 학교의 교사들이 강조한 것처럼 지속적인 노동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와중이라면 마땅히 국가 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각급 학교나 산하 기관이 아닌 외부단체나 기관에서 기안한 사업에 대해 예산보조금이 지원될 수 있는지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예산담당관 황형덕 주무관은 “주무부서에서 사업 내용을 검토해 타당성이 입증되면 얼마든지 지원 가능하다”고 밝혔다.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문제는 예비직장인 교육에서 다루는 내용을 어떤 부서에서 관장하는지가 교과부 내부에서조차 불분명하다는 점에 있다. 평생교육국 진로직업교육과가 고등학교 이후 단계의 전문 직업교육의 촉진 및 지원, 일ㆍ학습 생애설계 및 경력개발에 관한 사항 등을 주요 업무로 다루기 때문에 비교적 연관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평생교육국 진로직업교육과의 윤대림 주무관은 “내용이 포괄적이라 다른 부서가 관장할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딱히 주무부서라고 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는 청소년 혹은 전문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교육’이 교과부 내에서 사실상 검토조차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은 향후 교과부의 예산보조금 지원은 물론 올해 경기도에서 5,000만 원의 지원금을 편성한 것처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가용 예산을 끌어 모을 계획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조차,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넘쳐나는 반면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도외시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예비직장인 교육이 향후에도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지속적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