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으려면 사내하청 쓸 수밖에 없다”
“살아남으려면 사내하청 쓸 수밖에 없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01.07 17:2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연성 확보·비용 절감, 생존의 필수요소
대기업 노동자 5명 중 1명은 사내하청
[특집]사내하청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① 기업이 사내하청을 쓰는 이유

ⓒ 참여와혁신 포토DB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 공장을 세우는 사상초유의 사건도 1달 전의 이야기가 됐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파업이 마무리된 지 겨우 1달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25일간의 파업과 그 후속과정은 벌써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파업을 마무리하면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현대자동차비정규직3지회가 참여하는 대화를 진행키로 했다. 약속대로 대화 테이블은 마련됐으나, 대화의 진척은 더디기만 하다.

이 사건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주장들이 나왔으나 대체로 두 가지 주장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비정규직, 즉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로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직접적인 고용관계를 맺고 있지도 않은데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무리하게 현대자동차에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체로 경영계와 정부에서 이 같은 주장을 폈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의 공장 점거파업을 거치면서 간접고용 사내하청 문제가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하지만, 도대체 왜 사내하청이 문제가 되는지는 사라지고 양 진영의 공방만이 오갔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기나 했느냐는 듯, 사내하청 문제는 또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의 파업과 같이 커다란 폭발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왜 사내하청을 사용할까? 이 질문으로부터 문제를 풀어본다.

사내하청 규모? 모른다!

우선 사내하청 노동자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아직까지 이와 관련된 통계자료는 나와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당시 노동부)가 2008년 5월에 실시한 ‘300인 이상 사업장 사내하도급 활용실태 조사’가 가장 최근의 자료이다. 이 자료 역시 300인 이상 기업에 한정하고 있고, 8일 만에 이뤄진 조사여서 정확한 실태를 반영하고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또 장치산업 등에서 나타나는 2차, 3차 사내하청은 제외된 수치다. 나아가 2008년 5월 이후 사내하청 사용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지난 2008년 고용노동부(당시는 노동부)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사내하도급 활용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원·하청 전체 노동자 168만5,995명 가운데 21.9%인 36만8,590명이 사내하청 노동자로 집계됐다. 조사대상 원청업체 963개에 소속된 하청업체는 모두 1만717개로, 1개 원청업체가 평균 11.1개의 하청업체, 382.8명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청업체 1개당 평균 노동자 수는 34.4명으로 조사됐다.

사내하청 비중이 가장 높은 업종은 조선업종으로, 전체 노동자 14만4,007명 중 55%인 7만9,160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이어 철강업종 41.5%, 기타업종 20.7%, 화학업종 20%, 사무·판매·서비스업종 18.6%, 기계·금속업종 15.2%, 자동차업종 14.8%, 전기전자업종 12.4% 순으로 나타났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가장 많이 거느리고 있는 업체는 현대중공업으로 1만9,800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였으며, 삼성중공업 1만5,320명, 대우조선해양 1만4,000명 등 3대 조선사가 나란히 사내하청 노동자를 가장 많이 둔 업체로 꼽혔다. 뒤를 이어 삼성물산 9,201명, 포스코 포항공장 8,933명 순이었으며, 자동차업종에서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7,400명으로 가장 많았다.

금속노조가 2001년, 2004년, 2007년에 각각 실시한 산하 사업장 사내하청 노동자 규모 조사에 따르면, 사내하청 노동자 수는 2001년 39,167명에서 2007년 64,767명으로 증가했다. 금속노조의 조사에 3차례 모두 참여한 사업장 23개소만 보면, 정규직 조합원은 5.6% 증가하는 데 비해 사내하청 노동자는 119.9%가 증가했다. 각 기업이 생산직 노동자 수요를 사내하청 노동자로 충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량부터 뽑아내다 보니…

사내하청 노동자가 급격하게 늘어 최근에는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지만, 실제 사내하청 노동자가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근 문제가 된 현대자동차의 경우, 1998년 고용조정(정리해고) 이후의 일이다.

외환위기로 인해 대규모 고용조정을 경험한 현대자동차에서는 경기회복에 따라 늘어난 일자리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규모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2000년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생산직 대비 16.9%까지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처음 16.9%로 제한했던 비율은 현재 22% 수준까지 확대된 상태다.

이 같은 합의는 노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8년 대규모 고용조정의 과정에서 홍역을 치른 현대자동차 노사는 또다시 이런 경험을 겪지 않기 위한 방안을 찾았다. 회사는 불안정한 자동차의 수요 변동에 따라 고용을 용이하게 조정하려 했고, 노조는 불경기에 따른 정리해고의 충격을 흡수할 쿠션이 필요했다. 그런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점이 바로 사내하청 노동자였던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직접생산공정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투입한 것을 두고 최근 논란이 있었지만, 현대자동차에서도 1998년 이전에는 간접생산공정에만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1998년 고용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사내하청 노동자를 우선적으로 내보냈고, 그 자리에 정규직 노동자가 투입됐다.

그런데 경기가 회복돼 물량이 다시 늘었을 때, 간접생산공정에 투입된 정규직 노동자가 원직으로 복귀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간접생산공정은 노동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할 때에는 낮은 임금을 지급했는데, 정규직 노동자가 투입된 이후에는 원래 임금을 지급했던 것이다. 간접생산공정에 투입된 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동일한 임금을 받으면서도 노동강도가 낮으니 원직으로 돌아가기를 꺼렸던 것이다.

경기회복에 맞춰 어떻게든 생산을 해야 했던 회사는 직접생산공정에도 사내하청 노동자를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이른바 ‘혼재작업’ 논란이 일게 된 것이다. 회사는 어쩔 수 없이 직접생산공정(라인)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투입하더라도, 사내하청 노동자가 담당하는 공정을 도급화하는 방식으로 논란의 소지를 없애려 했으나, 논란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2005년 불법파견 판정에 이어, 지난해 7월 22일 대법원 판결이 이어졌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유연해야 살아남는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종류의 논란이 불거지면 기업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고, 특히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21.9%가 사내하청 노동자다.

이와 관련해 경영계 관계자 A씨는 “결국 회사의 입장에서는 고용유연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경쟁이 날로 격화돼 시장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경영을 하다 보면, 변동하는 물량에 회사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다.

지난 2009년 10월 대한상공회의소는 ‘노동유연성 수준 국제비교’라는 보고서에서 “선진국일수록 내부 노동시장과 외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통해 일자리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 공통된 경향”이라면서 “우리나라는 비교대상 국가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노동시장 법제나 관행이 경직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상공회의소의 주장에 따르면 “대기업은 투자계획이나 인력활용 전략, 그리고 고비용 노동비용의 조정 등을 적기에 하려 하더라도 단협상 노조의 동의나 파업 등에 막혀 있고, 중소기업은 대부분의 고용을 차지하는 분야임에도 비정규직법 등에 의해 고용흡수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경기로 전환됐을 때 경직적인 법제와 관행으로 인해 해고가 어렵기 때문에, 경기가 호전돼 물량이 늘어나도 정규직을 고용하지 못하고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고용을 조정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노사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상공회의소는 또 “수량적 유연성 보다 기능적 유연성을 통한 인력운용의 탄력성 유지가 적절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해고와 같은 고용조정의 자유가 수량적 유연성이라고 한다면, 기능적 유연성은 고용을 조정하는 대신 기업 내부의 전환배치 등을 통해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유연성의 문제보다 비용 절감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 다른 경영계 관계자 B씨는 “지금은 사내하청이라 하더라도 고용조정을 자유롭게 하기는 쉽지 않다”며 “원가 절감이 사내하청 사용의 진짜 이유”라고 지적했다.

B씨는 “극단적으로 정규직을 정리해고 해야 할 상황에까지 몰리면 어쩔 수 없이 사내하청을 조정할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면 인위적인 고용조정은 불가능하다”면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60% 수준으로 낮다는 점이 기업들에 메리트가 된다”고 밝혔다.

결국 기업의 입장에서 사내하청을 사용하는 것은 이처럼 경기변동에 따른 유연성을 확보하고, 핵심 업무가 아닌 업무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투입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핵심적인 이유다. 특히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유연성의 확보가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의 경우 비용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며 “임금을 올려주더라도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수용할 수 있다는 대기업도 많다”는 A씨의 언급은 이 같은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