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의 귀환, 그 놀라움
李의 귀환, 그 놀라움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1.01.3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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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득,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1차 투표에서 과반 확보
정부와의 주도권 싸움 강화될 듯…노사 관계도 적극적으로 변할 것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모두가 놀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참가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난 1월 25일, 강서구 등촌동에 위치한 88체육관에서 진행된 한국노총 선거인단 대회에서 기호 3번 이용득(위원장)-한광호(사무총장) 후보조는 1차 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투표 참가자 2,611명 중 1,396표(53.4%)를 얻어 한국노총 임원선거에서 승리했다. 이용득-한광호 후보조를 지지했던 선거인들은 환호성을 질렀으며, 결선투표까지 가리라고 예상했던 기호 1번 김주영(위원장)-양병민(사무처장) 후보조와 기호 2번 문진국(위원장)-배정근(사무처장) 후보조의 선거운동원 및 지지자들은 탄식을 뱉어냈다.

조직 선거의 몰락

이날 선거인 대회가 열리는 와중에도 노동계 관계자와 언론사, 경찰 등 정보기관 등은 기호 3번 이용득 후보조가 앞서고는 있지만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차지하지는 못해 결선투표가 진행될 것으로 대부분 예상했다. 그렇기 때문에 1차 투표에서 1위와 2위의 표차가 어느 정도이며 누가 2위로 결선투표에 올라갈 것인가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또한 결선투표에서 3위로 밀려난 후보가 어느 후보와 연합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용득 후보조는 1차 투표에서 이미 투표 선거인의 과반수를 획득해 오후 6시쯤 발표될 것으로 예상한 당선 결과를 오후 4시로 앞당겼다.

이러한 예측 불허의 상황을 초래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한국노총 선거인 대회에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2008년 이전까지 대의원대회를 통한 임원선거를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조합원 800명당 1명의 대의원을 부여해 전체 약 700여 명의 대의원이 80만 조합원의 수장을 뽑던 선거방식은 이용득 위원장 재임시절, 대의원이 아닌 선거인단에 의한 투표로 변경됐다. 조직 내 민주화를 위해 더 많은 조합원들이 참가해 임원을 선출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선거인은 조합원 200명당 1명을 선출해 전체 인원이 약 2,700여 명에 달한다. 기존 대의원대회보다 약 4배 정도 많은 숫자다. 이러다보니 과거와 같이 조직 선거에 의한 표 계산 방식은 전혀 쓸모가 없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용득 후보는 자신이 만든 선거 규약의 최고 수혜자가 된 셈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실제 결과와 달리 판세의 혼전을 예상했던 것은 어느 연맹 위원장이 누구를 지지한다더라는 식의 과거와 같은 표 계산 방식으로 선거 결과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한 선본 관계자는 선거 기간 동안 “우리 연맹 선거인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씨알이 안 먹힌다. 겉으로는 지지를 한다고 하지만 술 몇 잔 먹여보면 딴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표 계산이 안된다”고 울상을 지었다.

결국 한국노총 선거 결과는 실제 현장의 목소리와 상층 단위의 목소리가 달랐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현장은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었으며 이를 적절히 파고들어간 이용득 후보는 현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김주영-문진국 후보의 경우 장석춘 집행부 일원이었다는 사실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세력 구도의 재편?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조직 선거의 몰락은 향후 한국노총 내 세력 균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문제다. 먼저 기존까지 회원조합(연맹), 지역본부, 단위사업장의 집행 간부 영향력을 통해 한국노총의 의견을 조율하던 형태에서 현장 조합원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에 봉착했다. 이는 2009년 노조법 개정 투쟁 과정에서부터 수면 위로 부상한 문제다. 당시에도 각 집행부는 장석춘 위원장의 11.30 대국민 선언 이후 현장 지도력을 상실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결과는 고스란히 이번 선거에서 등장했다. 각 집행단위가 누구를 지지하든지 현장 조합원들은 이에 상관치 않고 소신(?) 투표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집행 간부의 영향력은 상당히 감소했다고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집행 단위의 지도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차후 한국노총의 주요 현안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얼마나 조합원들과의 소통이 없었는지 이번 선거로 간부들은 다들 잘 알았을 것”이라며 “현장 밀착이라는 말이 왜 필요한지 뼈저리게 느낀 선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여기에 그동안 한국노총의 주요 의견 그룹이었던 KTF(한국교통운수노동조합총연합)가 이번 선거에서 KTF 출신인 문진국 후보를 단일하게 지지하지 못했다는 점은 또 다른 변화 지점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한국노총은 KTF를 비롯해 금융, 제조연대 등 업종별 의견그룹이 존재해 왔었다. 그중 KTF는 결속력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확고한 지지기반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선거과정에서 앞서 언급했던 집행 단위의 지도력 저하와 맞물려 KTF 소속 각 회원조합과 단위사업장이 제각각 지지후보를 결정하거나 아예 자유투표를 시행함으로서 KTF의 강고한 결속력이 크게 타격을 받았다.이는 반대로 이용득 후보를 전폭 지지한 금융, 제조 등의 약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의 전조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선거라는 특정 시기의 분열이 일상적인 의견 그룹의 분열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국노총 내 정치적 스펙트럼 상에서 KTF가 ‘보수파’의 단일대오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선거 구도가 아닌 상황에서는 단일 대오를 형성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향후 세력 지형이 어떻게 형성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힘들지만 조그만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MB정부 노동정책의 파탄

시선을 외부로 돌려보자. 이번 한국노총 선거의 최대 쟁점은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와 노조법 전면 재개정이었다. 그리고 세 후보 모두 이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자신이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현장의 목소리가 그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과 달리 친정부적 입장을 유지했던 한국노총마저 등을 돌렸다는 점에서 MB정부 노동정책의 파탄이라고 극단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공공부문 노사관계 선진화, 노동유연화 전략 등 MB정부의 노동정책이 그나마 마지노선으로 남아있던 한국노총에서도 외면 받았다는 점은 향후 노정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결과는 앞서 언급했던 현장 정서의 몰이해가 노동계 상층 지도부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MB정부의 노동정책 입안자들에게도 있었다는 점을 확실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석춘 위원장과 노사정 합의서에 사인은 했을지언정 현장의 조합원,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는 재미있는 사건이 바로 정부 기관의 한국노총 선거 예측 실패다. 정부 기관(고용노동부를 비롯해 경찰,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들은 선거일을 앞두고 대부분 비슷한 예측을 내놓았다. 1차 선거에선 이용득 후보가 1위를 하겠지만 결선 투표에선 혼전이거나 문진국 후보가 승리할 것이란 예상이었다. 이는 KTF라는 그룹이 선거 막판에는 문진국 후보를 지지하게 될 것이란 예측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결국 현장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정부와 한나라당이 정책연대를 맺고 있는 단체의 내부 구성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을 입안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만 한 일이다.

주도권은 누구에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이제 이용득 후보의 당선으로 노사, 노정 관계는 새롭게 재편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는 이미 선언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다. 그렇다고 이용득 당선자가 정부와의 협상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당선 확정 이후 현장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 당선자는 “대통령 뜻대로 쫓아가는 것이 노총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 길을 가겠다”며 “협상할 때는 협상하고 투쟁할 때는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 입장에서는 한국노총이 주도하는 협상 테이블이 조성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이용득 선본의 한 관계자는 선거 기간 중 “끌려다니는 협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투쟁 없는 협상으로 그동안 정부와의 협상장에서 한국노총은 끌려다녀야 했다. 한국노총이 현재 갖고 있는 정부 교섭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투쟁이 배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정책연대 파기로부터 시작해 노조법 재개정으로 이어지는 향후 투쟁 계획에서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정부와의 관계 재정립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역전의 용사’인 이 당선자가 정부와의 관계란 측면을 배제한 채 강경일변도의 투쟁 전술을 배치할리는 만무하다. 문제는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의 문제이며 한국노총과 이 당선자는 이 문제를 이미 제기하고 나선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한나라당과 정부 입장에서는 정책연대 파기가 지지세력의 상실이란 측면에서 먼 산 보듯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한국노총 현장 조합원들이 ‘일단 싸움이라도 해보자’며 이용득 후보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는 점에서 노정 관계가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란 예측 속에 정부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민주노총에 한국노총까지 가세해 노동계 전체가 반MB전선에 핵심으로 떠오를 경우 레임덕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정부와 한나라당은 다양한 방법의 전술 구상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노정 관계와 달리 노사 관계는 더욱 명확한 형태를 구축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당선자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문제를 언급하며 “2006년 유예는 당시 노사가 합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결국 이 문제는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하는 문제”라고 여러 차례 주장했기 때문에 경총을 비롯한 사측과의 대화는 더욱 확장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MB정부 하에서 총연맹 단위 노사 관계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싫다 좋다는 식의 제3자적 관계를 형성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오는 7월 1일 복수노조 전면 시행을 앞두고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복수노조의 전면 시행은 껄끄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부의 강경한 입장과는 달리 노사 간의 협의를 통한 복수노조 문제 해결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투쟁 맹목주의 경계해야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일부에선 우려를 표시하는 부분도 있다. 이용득 당선자를 중심으로 한국노총이 자칫 맹목적인 투쟁 분위기로 흐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국노총은 MB정부가 들어서고 민주노총을 제치고 노사관계의 중심축에 들어선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사실이 결과적으로 좋았느냐 나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노정 관계에 있어 한국노총의 입지가 확실해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용득 집행부가 무리하게 정부와의 대립각에만 매몰될 경우 민주노총과 같이 대화 자체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한번 대차게 싸워보자는 조합원들의 열망을 안고 탄생한 집행부이기 때문에 한 발짝만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도 현장에선 난리가 날 것”이라며 “이러한 분위기가 자칫 이용득 집행부를 투쟁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만 매몰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반면 이전 집행부 시절 협상과 투쟁을 적절히 배합했던 이용득 당선자라고 한다면 이러한 우려는 기우일 뿐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용득 당선자 스스로도 “대화할 땐 대화하고 투쟁할 땐 투쟁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앞의 우려 지점은 단지 우려에 그칠 공산도 크다.

이와 함께 이용득 집행부가 사무총국 인선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따라 과거로의 회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이용득 후보조를 지원했던 많은 지지자들 중 유독 전임 집행부 출신이나 과거 회원조합 위원장 등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선거에 기여한 사람과 한국노총 개혁이라는 현장의 요구를 적절하게 조정한 인선이 돼야 한다는 것이 한국노총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새로운 활동가들을 양성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개혁파들의 줄기찬 주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이가 많다고, 과거의 인물이라고 일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노총이 안고 있는 조직적 퇴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물이 끊임없이 배출되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고려할만 하다. 한국노총 소속 단위사업장의 한 위원장은 “매번 그 사람이 그 사람인 한국노총의 지도부가 이제는 변해야 할 때다. 이번 선거에서도 젊고 패기있고 개혁적인 사람들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며 “이용득 당선자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자칫 전체적인 구도가 과거로의 회귀가 된다면 한국노총의 미래를 위해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