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도장장이의 끊임없는 노력
대한민국 ‘대표’ 도장장이의 끊임없는 노력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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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앞에서도 감췄던 잘린 손가락기아자동차 광주공장 김국상 주임

▲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김국상 주임.
죽고 싶었다. 손가락이 잘려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학업도 그만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싸움만 하고 다녔다. 어린 시절 시골의 집안일을 돕다 작두에 잘린 엄지손가락은 그에게는 업보와도 같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그에게 세상은 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처음엔 자동차 고치는 일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처음 만난 일은 ‘도장’이었다. 도장의 ‘도’자도 몰랐고, 페인트를 칠하는 것은 기술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독한 페인트 냄새가 너무나 싫었다. 페인트 일은 하지 않겠다고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운명인지 팔자인지 몰라도 도망을 쳐도 도장일을 떠나지는 못했다. 결국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평생 도장일을 하는 ‘도장장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결심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노동자가 아니라 도장분야에서 한국의 1인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결국 그는 올해 석탑산업훈장을 받으면서 그 꿈을 이뤘다.


광고 문구처럼 ‘나를 넘어서’ 도장분야 한국 1인자가 된 주인공은 바로 기아자동차 광주2공장 소형도장부의 김국상(53) 주임이다.

 

물 속 백조의 발을 기억하라
김 주임의 이력은 화려하다. 살아온 삶의 이력도 화려하지만, 도장분야에서 쌓아온 그의 업적 또한 화려하다. 지난 1999년 대한민국 금속도장 명장으로 선정되었고, 사내 최우수 제안상을 비롯하여 현장개선활동 MVP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 우수기능인 노동부장관상과 국무총리상 등을 수상했고, 올해는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을 김 주임은 엄지손가락 없이 9개의 손가락으로 일구어 냈다. 작업도구를 엄지손가락에 지탱하여 잡아야 하는 도장일은 김 주임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어려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도장을 ‘루리’라고 하는 등 모든 도장·도색 용어들은 일본어로 되어 있고, ‘도제 시스템’의 선배들은 기술을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혹독했다. 선배들이 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면서 스스로 터득해야 했고, 퇴근도 하지 않은 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아니요’ ‘못해요’란 말은 하지 않았다. 일단 ‘예’라고 대답하고,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그런 끊임없는 노력으로 단시간에 선배들을 따라 잡았고, 기아자동차로 스카웃까지 됐다.

 

근능보졸, 꿈속에서도 배웠다
김 주임의 좌우명은 ‘근능보졸(勤能補拙)’이다. 부족한 것은 노력으로 채우라는 것이다. 아침 7시30분이면 출근해 일에 대해 고민하고, 남들보다 늦게까지 남아 또 고민했다. 김 주임은 꿈속에서도 배웠다고 한다. 간절히 원하면 온 세상이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고 했던가. 5년 동안 연구해도 답을 찾지 못했던 문제도 꿈속에서 그 답을 찾았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개선하는 것이 재미있더라고요.”


잔업과 특근을 하면 돈을 더 주는 등 일한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어서 좋다는 김 주임은 사실 월급봉투를 확인해 본적은 거의 없다. 누가 강요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을 뿐이다.


“83년에 도장자격증을 따려고 공부를 했어요. 그때 페인트가 몸에 안 좋다는 것도 많이 알게 됐지요. 그런 이론과 현장에서 얻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개선이란 것도 할 수가 있는 거지요.”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는 말은 틀렸다는 게 김 주임의 생각이다.
“절반을 올라가는 것과 땅바닥에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잖아요. 비록 내가 다 끝내지 못하더라도 내 뒤에 누군가가 그걸 받아서 하면 언젠가는 끝낼 수 있잖아요.”

 

날 닮은 사람 한사람 나왔으면
27년이란 시간 동안 한 직장에서 도장일만 해 온 김 주임은 이제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주임이 된 지도 벌써 10년째다. 김 주임은 아무리 잘해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며 관리는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물리적으로, 꾀로 하는 관리는 한계가 있어요. 관리의 기본은 나를 닮도록 하는 것이지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윗사람이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직원들이 ‘반장하는 만큼만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해요.”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나와 같은 사람’ 하나 만들지 못했다면서 퇴직 전에 그런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드는 게 김 주임의 바람이란다. 그런 바람에서 지금 광주의 한 공고에서 학생들에게 도장일을 가르치고 있다.

 

난 아직도 한국의 1인자를 꿈꾼다
“많이 배웠다고 해서 1인자가 될 수 있고, 못 배웠다고 해서 1인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죠. 1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운도 있어야 하지만, 노력이 90% 이상을 차지해요. 무엇을 하든지 그 분야의 1인자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봐요.”


쉰을 훌쩍 넘긴 김 주임은 아직도 한국의 1인자를 꿈꾼다. 엄지손가락 없이 힘들게 배운 서예에서 한국의 1인자가 되겠다는 것이 앞으로 그의 목표다. 도장은 화장을 하는 것과 같고,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할 때부터 있었던 ‘예쁜 역사’를 지닌 것이라고 말하며, 도장공장 여기저기를 안내하고 설명하는 김 주임의 모습은 예쁘게 도장되어 불빛에 반짝이는 차체처럼 빛났다.


“행복은 나 자신이 찾는 것이에요. 주위에서 만드는 행복은 짧죠.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느낄 수 있어야 진짜 행복이죠. 편하게 만드는 것이 결코 행복은 아니에요.”


그의 자부심이 배어 있는 일터, 도장공장 안에 있는 김 주임의 표정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함지윤 기자 jyham@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