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안정 서비스 선진화 6개월, 그후…
고용안정 서비스 선진화 6개월, 그후…
  • 승인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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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고용서비스는 밑빠진 독?

‘밑 빠진 시범사업’재탕·삼탕은 기본에 졸속 행정까지


IMF 이후 우리사회 최대의 화두로 떠오른 고용안정, 정부는 이를 위해 매년 수천억 대의 예산을 투입하고 고용안정센터 등 공공 직업안정기관의 신설과 통폐합을 반복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벌써 10년째 정부의 고용안정 사업은 노동시장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채 겉돌고 있다. 매년 되풀이되는 정책과 포장만 바꾼 사업, 나아지지 않는 실업률의 악순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야심찬 계획으로 출발한 시범사업
올해 초 노동부는 국가 고용서비스 선진화를 역점 사업으로 선정하고 4월 6일 고용지원 서비스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선진화 방안은 외환 위기 이후 산업구조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생긴 ‘취업난 속 인력난’ 해결을 위해 고용안정센터 혁신으로 고용지원 서비스 선진화에 나서는 한편 2007년까지 일자리, 훈련, 고용보험 등 9대 고용정보망을 연계한 ‘통합고용정보망’을 만들어 민간과 공공의 구인정보를 한 곳에서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국가 고용서비스 전반에 걸친 업그레이드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어 5월에는 선진화 방안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서울 강남, 부산, 대구, 광주, 동인천, 청주 등 6개 고용안정센터를 시범센터로 선정하고 1단계로 5월부터 10월말까지 6개월간 운영에 들어갔다.
시범센터 운영 6개월의 성과를 종합 발표하는 자리에서 노동부는 “고용안정센터가 실업급여 지급기관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취업에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밝혔다
노동부가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시범센터 운영 기간 중의 이용자 수 증가다. 시범센터 운영기간(5월~10월) 동안 센터의 이용률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구인·구직자 수가 지난해 전년(5~10월) 대비 97.5%(7만 200명→ 13만 8649명)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수치상으로만 보자면 엄청난 증가다. 그러나 그간 고용안정센터가 취업알선 시장에서 차지해온 비중이 5% 대에 불과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여전히 턱없이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취업시장 고용안정센터 점유율 5% 불과
국가적인 고용 서비스의 위상을 단적으로 알려 주는 취업시장에서의 국가 고용안정기관(PES) 점유율을 살펴보면 독일 33%, 일본·영국 23%, 프랑스 22%, 네덜란드 14% 등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고용안정센터에 대한 인지도와 활용도는 바닥 수준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청년층 구직자 34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고용안정센터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응답이 29.9%(1040명)에 불과했으며, ‘고용안전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도 27.6%(287명)에 그쳤다. 조사 대상이 청년층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고령자들의 경우 더욱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조사 책임자의 설명이다.


고용안정센터를 알면서도 방문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47.1%가 ‘고용안정센터 위치를 몰라서’라고 답했다.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들어서’는 14.3%, ‘쓸 만한 정보가 없을 듯해서’는 각각 11.9%로 나타났다.
지난해 감사원은 노동부가 이처럼 고용지원 서비스 기능이 취약함에도 ‘고용안정 인프라 확충계획’을 추진하며 구인·구직 정보 수집과 유통 등의 내용 강화 대신 고용안정센터 청사 확보 등 ‘외형 갖추기’에 주력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산업구조·노동시장 빠진 지역 밀착?
하지만 고용서비스의 획기적 개선을 목표로 1549억원의 예산을 들여 시행한 시범센터 사업은 여전히 과거 고용안정 대책의 ‘재탕 삼탕’이라는 비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안정 대책의 핵심인 지역의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에 대한 분석이 빠진 채 사업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시범센터 중 가장 모범적인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 대구종합고용안정센터의 경우 시범센터 출범 당시의 목표성과를 152%나 초과달성했다. 하지만 이 기간 중 센터를 통한 취업자 4249명 중 20대의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81.9%로 청년층 중심의 고용지원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대구지역 실업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과거 섬유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대책은 전혀  마련하지 않은 채 노동시장에 신규로 진입하는 청년층에 대한 서비스만 집중한 결과다.


대구지역의 중·장년 실업자는 대부분 섬유산업 사양화에 따라 노동시장 밖으로 퇴출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노동시장 내에서의 이동 경로를 추적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특별한 전직·재취업·창업 등의 훈련을 받지 못한 섬유산업 종사자들의 절반 이상이 자신의 직업 경력과는 상관없는 서비스업이나 단순노동으로 흘러들어가 지역의 노동시장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20~30대의 청년층과 달리 섬유업에서만 10~20년 동안 종사한 이들은 새로 생기는 일자리에 진입할 수 있는 능력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지역 밀착형 서비스’를 표방한 시범고용안정센터의 운영은 지역의 산업구조 변화와 이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동에 대한 대책을 내놓기보다 청년층 중심의 취업률 높이기에만 치중했다는 지적을 피해가기 어렵다. <관련기사 21면> 신발산업에서 밀려난 인력이 지역 중·장년 실업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부산 시범센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직업상담원, 시범기간 동안만 지원
이번 시범사업의 또 다른 추진 방향 중 하나는 직업상담원 확대다. 구인업체와 구직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직업상담원들이 상담업무보다는 실업급여 처리와 일반 사무 등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고용안정센터의 인력구조를 개선해 질적으로 향상된 직업상담 서비스와 동행면접 등 구직자 수요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그간 직업상담원의 전문성 강화와 상담업무 집중을 위한 잡무 부담 해소 등은 고용안정 서비스 개선을 위한 기본 과제로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다. 실제로 우리나라 고용안정센터의 직업상담원 일인당 배정 근로자 수는 9232명에 달한다. 독일 직업안정기구의 직업상담원 일인당 배정 노동자 수가 394명, 스웨덴이 325명인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얼마나 부족한 규모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시범고용안정센터의 직업상담원 충원 방식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지조차 의심스럽다. 6개 시범센터 운영에 필요한 인력 충원이 신규 채용 방식이 아니라 관내 다른 센터로부터 직업상담원을 지원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 
심지어 동인천고용안정센터의 경우에는 직업상담원이 부족하자 고용안정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관리과 직원 8명을 시범센터운영 기간만 한시적으로 차출해 활용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여기에 직업상담원의 역량 발휘를 어렵게 해 왔던 공무원과 계약직 직업상담원들의 갈등은 여전히 해결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위태롭게 봉합되어 있다.
경기대학교 직업학과 김병숙 교수는 “고용서비스 선진화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독일의 경우 직업상담사가 8만5840명으로 우리나라 상담원 2357명의 서른일곱 배에 달한다”며 “고용지원서비스를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직업 상담원의 양적 충원과 전문성 강화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2, 2003, 2005 언제까지 시범사업만?
고용서비스 향상을 위한 노동부 정책의 일관성도 사업 추진의 걸림돌이다. 이번과 같은 고용안정 시범사업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고용안정 서비스 개선 사업으로는 2002년 고용안정센터 기능 활성화를 위한 시범센터, 2003년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간 실시된 시범고용안정센터 운영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의 목표는 노동시장 정보 수집과 활용기능 강화, 고용안정센터 규모 및 기능조정 등 운영효율화 방안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당시에도 노동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고용 서비스가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홍보했지만 고용안정센터의 핵심적 성과지표라고 할 수 있는 취업시장 내 점유율은 여전히 5% 이하에 머물고 있다. 


이는 단지 최근 몇 년의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1998년 이후 8년간이나 같은 패턴의 고용안정사업과 실업대책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성과가 개선되지 않는 것에 대한 평가조차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문제에 대한 근본적 진단 없이 정책의 재탕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고용안정센터 시범사업의 경우에도 과거 고용안정 사업의 분석과 평가를 토대로 하기보다는 4월 6일 노동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한 후 한 달 만인 5월에 성급히 사업이 추진됐다. 성급한 추진의 대표적 폐해는 센터 선정 과정에서 나타났다. 노동부는 센터운영에 성과계약제 등 일부 민간 방식을 도입하고 자율성을 대폭 부여한다는 취지 아래 6개 지방노동청 소속 고용안정센터를 대상으로 한 내부공모를 통해 시범센터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인지방노동청의 경우 시범사업 실시 불과 20여일 전까지도 지원센터가 없어 결국 청장의 추천으로 센터 선정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선정된 동인천고용안정센터의 경우 “센터 1층에 빈 공간이 있어 시범사업을 위한 시설 정비에 용이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시범센터가 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 결과 동인천센터는 시범사업 기간 중 취업자 6명이라는 최악의 성과를 기록했다.  <관련기사 24면>

 

산업-고용-교육훈련-복지 연결고리 살려야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산업-고용-교육훈련이라는 연결고리가 여전히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고용지원 사업을 위해서는 단순한 취업 상담과 관리뿐만 아니라 구직자에게 적합한 교육훈련까지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주섭 연구위원은 “거의 모든 정부 부처에서 일자리 창출 사업과 인력개발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를 하나로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은 부족하다”며 “각 부처의 중복투자 문제를 해결하고 특히 점차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노동력의 교육훈련문제의 경우 노동부뿐 아니라 교육인적자원부 등 소관 부처의 업무 영역을 재정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 “지역별, 산업별 노동시장의 불일치를 해소할 수 있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각 지역의 노사와 지방자치단체 등과의 효율적 연계가 필요하며 고용안정센터는 이들을 연결하는 중추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최근 우리 노사관계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노동시장 유연성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는 것은 고용지원 서비스 등 사회안전망이 확충되지 못한 탓도 크다. 낙후된 고용지원 서비스 체계 하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는 곧 노동시장에서 탈락하는 노동자들을 헤어날 수 없는 빈곤의 늪으로 몰아넣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이 노동시장에 대한 분석 없는 취업률 높이기와 보여주기식 사업으로는 5% 대에 머물고 있는 공공 직업안정 기관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11월 2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내년예산안을 확정하고, 고용서비스 선진화에 올해보다 141.4% 늘어난 3739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예산과 정책이 증가할수록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가 고용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