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_ 국가 고용서비스, 현장을 가다 ②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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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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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안정시범센터 선정 기준이 사무실 크기라고?

시범사업 6개월 후 동인천고용안정센터

이벤트성 사업으로 구인자와 담 쌓은 고용서비스

 

 지난 국정감사에서 경인지방노동청은 고용안정시범센터 운영 부진으로 질타의 대상이 됐다. 노동부 최대 역점 사업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는 사업진행과 부적절한 센터 선정 등으로 투입예산 대비 효과를 거두고 있지 못 하다는 지적이었다.
시범고용안정센터 운영 기간이 끝난 11월 중순 동인천고용안정센터를 다시 찾았다. 센터 내부는 시범사업을 위해 새 단장을 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깨끗했다. 센터 한 쪽을 카페처럼 꾸미고 취업관련 서류와 정보 등을 비치한 ‘취업카페’와 인터넷 검색대가 마련되어 있고, ‘고용서비스 선진화 시범센터 지정’이라는 큰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큰 플래카드가 무색할 만큼 센터는 조용했다. 평일 오후시간인데도 센터를 찾은 사람은 대여섯 명 가량. 그나마 이들 중 절반은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다. 실제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은 벽에 붙어 있는 구인업체 명단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정중구(45·가명)씨 뿐이다.

 

“여기에선 일자리 구하기 힘들겠네요”
가스배관공으로 일하던 정씨는 난생 처음 고용안정센터라는 곳을 찾았다고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 중소기업을 평생직장으로 알고 다녔지만 근속년수가 높아질수록 불어나는 임금 때문에 사정이 어려운 회사에 부담이 됐다는 게 정씨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다. 정씨는 “내가 가진 기술이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고급기술이라 임금이 높은 편”이라며 “이제는 기술을 써먹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두어 시간 동안 구인업체 명단을 꼼꼼히 살펴보던 정씨가 손에 들고 있던 메모지를 주섬주섬 챙기고 나갈 채비를 한다. 이날의 구직 결과는 실패. 그는 “전과 한 권 두께의 구인 정보를 모두 찾아봤지만 업종별 분류만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잘 알 수가 없다”며 “내일은 공단에 찾아가 발품을 팔며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씨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30대 초반의 여자와 한창 구직 상담 중이던 직업상담원 입에서 짜증 섞인 높은 목소리가 튀어 나온다. “아, 글쎄 요즘 임신했다고 쫓아내는 직장이 어디 있어요.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여기 공란이나 채워 넣어요.”
말투가 좀 어눌하고 반응이 느린 상담자는 장애가 있어 보였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지난번에 일하던 곳에서 임신을 했다고 쫓겨났다”고 다시 천천히 말했다. 그녀는 벌써 이 말을 세 번째 반복하고 있었다. 상담사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런 게 다 노동법에 걸리거든요. 요새 세상에… 원, 다음에 또 그러면 고발하세요,  고발.” 답답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상담자는 구직 서류의 공란을 채워 넣은 후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 구직자와 상담을 진행한 직업상담원은 “일자리를 구하겠다는 사람이 쫓겨날까 봐 걱정부터 하는 것이 하도 답답해서 목소리를 높였다”고 해명했지만 실제로 ‘임신을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는 일 따위는 요즘 세상에는 전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날 동인천고용안정센터에서 어렵게 만난 구직자는 단 두 명뿐. 한 사람은 이곳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겠다며 발품을 팔러 나갔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이 겪은 일을 이해해 주지 않는 직업상담원 때문에 한껏 주눅이 들어 센터 문을 나섰다.

 

구인업체-구직자 간 눈높이 불일치 심각한데도
경인지역은 4만여 개의 중소기업과 공단이 밀집되어 있어 ‘구직난 속 구인난’ 이라는 노동시장 수요의 불일치가 상당히 심각한 지역이다.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가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에 따르면 307개 구인 업체가 희망하는 신규채용 인력의 나이는 20대에서 30대 초반에 집중됐다.

 

사무관리직은 전체 업체의 72.9%, 생산기능직은 30.2% 등이 각각 20대 인력을 원했다. 단순노무직 역시 76.8%가 2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를 원했지만 40대 초반 이후 인력에 대한 고용의사는 11.2%에 그쳤다. 부족한 인력수급을 위해 기혼여성을 채용하겠다고 밝힌 업체는 고작 122개로 31.8%로 집계, 여성 채용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반면 구직자 384명의 연령은 20대 23.5%, 30대 32.5%, 40대 27.9%, 50∼60대 15.9%로 집계, 주로 30·40대에 집중돼 구인업체와 구직자의 연령 불일치 현상을 나타냈다. 구직자의 인근공단 제조업체 취업 기피 이유로는 ‘낮은 임금수준’33.3%, ‘업체가 원하는 기술 없음’ 21.9%, ‘장래성 없음’12.5%, ‘출퇴근 시 교통 불편’ 10.4%  등이 꼽혔다.

 

시범사업’으로 둔갑한 지방노동청 단합대회
이처럼 구인업체와 구직자 간의 연령·요구사항 불일치가 심각한 것은 중소기업 밀집지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그러나 동인천고용안정센터가 시범사업으로 실시한 사업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노동시장의 특성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이 센터가 시범시간 6개월 동안 추진한 주요 사업은 △Up-Down 모니터링 제도 △노동가족 한마음 음악의 밤 개최 △취약계층 취업특강 (인절미 데이, 자린고비 데이) △ 실업급여 수급자 원스톱 지원 등이다.


그러나 고용안정센터 이용객을 대상으로 고객만족도를 조사하는 ‘Up-Down 모니터링 제도’의 경우 경인지방노동청 차원에서 실시한 것으로 이 센터의 특별 사업은 아니다. 게다가 동인천고용안정센터에서 실시한 모니터링 제도는 센터 이용객 45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을 진행하는 데 그쳤다.

 

‘노동가족 한마음 음악의 밤’은 경인지방노동청 소속의 11개 기관 직원들의 단합대회로 고용서비스 개선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센터 자체 행사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역 노동시장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 고령자·주부 대상 ‘취약계층 취업특강’은 참여인원이 134명에 불과한 데다 취업을 위한 정보 제공보다는 인절미 제공, 노래자랑 등 일회성 행사에 그쳤다.

 

이 결과 동인천고용안정센터가 시범사업을 운영한 기간 동안 센터의 취업행사를 통해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단 6명에 불과했다.

 

빈 사무실 있다는 이유로 시범센터 선정하다니
노동부의 역점사업인 고용안정시범센터가 이처럼 형식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동인천고용안정센터는 6개 시범센터 중 유일하게 종합센터가 아닌 일반센터다. 고용지원 서비스의 체계화와 직업훈련, 실업급여 등 부문별 연관성을 높일 수 있는 관련부서가 모두 모여있는 종합센터와는 달리 고용서비스 관련 통합적 인프라가 상당히 부족하다.


이런 일반센터가 시범사업 추진 센터로 선정된 과정을 살펴보면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당초 노동부가 각 전국 6개 지방청에 시범센터를 모집한 결과 다른 청은 모두 종합센터를 추진했지만 경인청은 지방관서장 회의에서 모두가 발뺌을 해 센터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막바지에 가서야 ‘동인천센터 1층에 빈 사무실이 있어 시범센터에 용이하다’는 이유로 동인천센터를 추천했고 사업은 졸속적으로 진행됐다.


현재 동인천센터 1층에 마련되어 있는, 아직 페인트 냄새도 가시지 않은 아담하고 깨끗한 ‘취업카페’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고용서비스 선진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직업상담원 충원 문제에서도 졸속적인 처리가 엿보인다. 시범센터 선정 전 동인천센터의 근무 인원은 21명, 직업상담원은 6명에 그쳤다. 체계화된 구인구직상담을 위해서는 직업상담원의 대폭 확충이 필요했지만 영역에 상관없이 사업 추진에 필요한 11명을 급히 채용했다. 그러고도 각종 보고서 제출이나 행사 진행 등에 인원이 부족해서 관리과 직원 8명을 고용안정센터로 옮겨서 근무하게 했다. 난생 처음 고용관련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전문화된 직업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이처럼 동인천고용안정센터의 선정과 운영 과정은 ‘보여주기식 사업’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 양재덕 본부장은 “인천의 구인·구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젊은 노동자와 고령 노동자 등 연령대에 맞춘 대책 마련과 필요 인력 확보를 위해 기업과 공고의 연계활동이 절실하다”며 “지역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벤트성 사업으로는 고용 서비스를 개선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용객은 없는데 말끔하게만 꾸며져 있던 ‘취업카페’와 6명 취업이라는 시범센터 실적 속에서 구인구직자들은 점점 고용안정센터와 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