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은 걸까요?
노병은 죽은 걸까요?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1.02.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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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승립
온통 후크송만 들려오던 TV와 라디오에서 때 아닌 포크송 열풍이 뜨겁습니다. 후크송이란 요즘 아이돌 가수들이 주로 부르는 짧은 후렴구와 반복되는 가사로 이루어진 노래를 말합니다. 가사가 무슨 말인지조차 좀체 알아듣기 힘들지만 인상적인 몇 구절이 반복되면서 머리에 남는 그런 노래들입니다.

포크송 열풍의 주인공들은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노래를 시작한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입니다. 이들이 지난해 추석에 이어 이번 설에 TV에서 노래를 들려주면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열풍이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잠깐의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송창식의 ‘상아의 노래’나 윤형주의 ‘비의 나그네’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저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짧은 유행이라 할지라도 즐겁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주인공인 네 가수들만큼이나 눈에 들어온 이들이 있었습니다. ‘트윈폴리오’ 송창식, 윤형주와 함께 원래는 ‘트리오 세시봉’으로 활동할 예정이었다가 군입대로 꿈을 접었다는 이익균. 반쯤 벗겨진 머리에 도무지 노래할 것 같지 않게 생긴 이웃집 아저씨 모습을 한 그의 저음이 가슴을 흔들었습니다.

수십년 전에 완전히 음악에서 손을 뗐다는 이장희의 기교 하나 섞이지 않은, 음정마저도 제대로 맞지 않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그 어떤 노래보다 울림이 컸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그래서 이제는 원로라는 이름으로 뒷방 차지가 어울릴 것 같은 강근식의 그 묵직한 기타 연주는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게 했습니다.

이들은 고수이고 장인이고 전문가였습니다. 무대에 섰던 네 주인공은 물론이고 언급된 이 사람들 모두가 60대 중반의 나이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포크송의 귀환은 노병의 귀환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문득 그 많던 노동조합 활동가, 인사노무 담당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총연맹이나 연맹 위원장을 지낸 사람들 정도는 각종 행사에서 원로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10여년에서 길게는 수십년까지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임원 아닌 사람들의 근황은 알기가 힘이 듭니다.

인사노무 담당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팔팔했던 청춘에 시작해서 회사의 임원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들조차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집에 갔다’거나 ‘아웃 됐다’는 후문과 함께 말이죠.

분명 이들의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을 겁니다.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실수도 있었겠지요. 어찌되었건 그 경륜이 우리 시대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냥 추억으로만 남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분야에서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일을 해왔던 이들이 꾸준히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리하여 전문가로 불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기대를 가지는 것은 아직 더 미뤄둬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