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되찾은 ‘부실 기업’ 팔아치우는 게 능사 아니다
건강 되찾은 ‘부실 기업’ 팔아치우는 게 능사 아니다
  • 승인 2005.12.05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생기업 매각, 투기자본·국내재벌 ‘먹잇감’ 수순 또 밟나

과거 매각 실패사례 평가 통한 대안 마련 필요성 높아져

 

공적 자금이 투입돼 조만간 매각을 앞두고 있는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대우그룹계열사와 하이닉스반도체, LG 카드의 매각방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줄줄이 쓰러진 우리 기업들의 매각 과정에서 정부와 채권단은 ‘외국자본이냐 국내재벌이냐’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특히 국내자본들도 인수여력이 없던 1998~1999년엔 주요기업의 M&A 8건 중 7건을 외국계가 차지했다. 99년 이후에도 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주요 기간산업과 건설, 은행, 통신 등 국가 주요산업들은 대부분 외국자본의 차지였다. <표 참조>


그 결과 막대한 차익만을 챙긴 채 본국행을 택한 외국자본으로 인해 피폐화된 금융산업을 비롯해서 최근 국부 및 기술유출 논란이 번지고 있는 기간산업에 이르기까지 한국경제 전반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공적자금 투입 기업 매각의 마지막 수순을 밟고 있는 대우계열사와 금융권의 마지막 ‘대어’로 불리는 LG카드 등의 매각 방식을 둘러싸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간 우리기업의 매각에는 △해외매각 △국내재벌 매각 △국내 기업간 M&A가 주요 방식으로 채택돼 왔다. 하지만 이들 방식 모두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유형 1 금융산업, 해외매각 폐해 ‘종합백과’ 
외국자본 매각 방식이 가장 활발했던 것은 금융산업이다. 그간 은행은 외국자본 매수대상 1순위로 꼽혀왔다. 업계는 뉴브리지캐피탈이 제일은행을 매각해 1조1500억 원을, 칼라일은 한미은행으로 7천억 원을 챙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 말부터 매각이 가능한 외환은행의 경우 론스타가 지분 51%를 전량 매각하면, 대략 1조5천억원 이상의 매각 차익으로 투자금보다 많이 챙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증권사로는 미국계 펀드인 H&Q 컨소시엄이 5200억원을 남기고 신한증권에 매각한 굿모닝증권과 BIH가 1천억원 가까운 매매차익을 남긴 브릿지증권이 있다.
대형빌딩 시장도 외국자본에게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말 론스타가 싱가포르투자청(GIC)에 매각한 스타타워. 론스타는 6800억원에 사들인 이 빌딩을 9600억원 가량에 매각해, 2800억원의 차익을 올렸다.


론스타는 극동건설 매각에서도 890억원을 남겼다. 이밖에 골드만삭스가 대우증권 빌딩과 은석빌딩으로 500억원 이상을 챙겼고, CDL이 시티타워를 팔아 400억원을 챙기는 등 외국자본은 부동산 매매로만 수천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유형 2 해외매각, 기술유출·재매각 우려 
외국자본 매각 폐해는 쌍용자동차 등의 국가 기간산업과 오리온 전기 등 전략 사업 등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03년 5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오리온전기는 지난해 10월 미국계 자본인 매틀린패터슨이 입찰 의향을 밝힘에 따라 대구지방법원이 이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올 2월에는 매각에 최종 합의하고 투자계약을 체결했다.

 

매각 당시 오리온전기의 평가가치는 1000억원을 훨씬 웃돌았음에도 법원은 600억원을 제시한 매틀린패터슨에 인수를 허락했다. 고용유지 및 일괄매각 조건으로 매각가를 인하해 준 것이다. 그리고 석 달 뒤인 5월, 오리온전기는 OLED사업과 CRT사업으로 분할돼 CRT의 경우 오션링크사에 양도됐다.


매틀린패터슨과 오리온전기노조는 매각 당시 “회사는 전 조합원의 고용을 승계하고 향후 3년 이내에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며 불가피한 사유로 인해 구조조정을 하고자 할 때에는 노동조합과 합의해 시행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오션링크 측은 인수 8개월 만인 지난 10월 31일, 이 합의를 깨고 임시주총을 열어 CRT사업부 청산을 일방적으로 결의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장화식 운영위원은 “오션링크는 자본금 1800만원에 영업실적이 전무한 페이퍼컴퍼니(종이회사)로서 두 회사의 법정 대리인이 동일한 것으로 볼 때 사실상 매틀린패터슨이 청산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매틀린패터슨은 오리온전기의 OLED사업부문과 PDP사업부문만을 인수하고 싶어 했지만 매각조건이 일괄매각이었기 때문에 일괄인수→분할매각→CRT부문 청산이라는 수순을 밟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리온전기 CRT 사업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1250명의 일자리는 하루아침에 공중 분해됐다.
 
유형 3 국내기업 간 M&A, 후유증 시달려
다행히 국내의 인수자가 나서 해외매각은 피해간 기업들도 부적절한 M&A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IMF 이후 산업구조조정 차원에서 정부 주도로 추진된 현대전자-LG반도체 간 합병은 국내 M&A 역사상 가장 큰 실패 사례로 꼽힌다.

 

과도한 차입과 중복투자를 없애고, 시너지 효과를 내 합병회사를 세계 2위의 반도체업체로 육성한다는 목표였지만 합병회사인 하이닉스는 LG반도체에 지불해야 하는 인수대금 2조6000억원 등 총 6조5000억원의 자금부담을 안고 출발해 처음부터 불안하게 뒤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제품수명 주기가 짧은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방식과 생산시스템이 상이한 두 업체를 통합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 합병 후 반도체가격이 하락하면서 하이닉스는 곧바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합병 당해연도에 2조2000억원의 흑자를 보였던 이 회사는 2000년, 2001년 각각 5조원, 2조원의 적자를 기록해 이듬해인 2002년 중국 BOE그룹에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등 또다시 혹독한 구조조정에 들어가야만 했다. 

 

유형 4 재벌기업 매각, 무리한 차입…  내부 이권 다툼에 ‘휘청’
국내 재벌가에 매각된 기업들의 미래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 대표적인 사례가 2001년 한국중공업 사례다. 두산그룹의 경우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후 회사를 조각내 분할 매각하는 방식으로 인수 자금 회수에만 급급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 두산그룹은 지난해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하면서 1조 6800억원의 인수 금액 가운데 8000여억원을 차입해 출자총액을 초과했다는 형평성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최근 들어 증권가에서는 두산그룹이 대우종기 인수때 차입한 금액 부담 때문에 부실화 우려가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대우종기 인수로 한해 두산이 부담해야 하는 이자비용만 300~400억원. 무리한 기업 인수가  기업 부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최근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이 터지면서 재벌 인수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더욱 확산되고 있다.

 

유형 5국내 ‘큰손’에 매각됐다 다시 그룹사 품으로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국내 자본시장의 ‘큰손’인 공제회 등에 인수됐다가 성공적으로 그룹사로 ‘유턴’한 경우도 있다. 금호그룹은 지난 2002년 지독한 자금난 때문에 주력업체인 금호산업의 타이어사업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엔 외국투자 기관인 칼라일 및 JP모건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실사 과정에서 가격에 대한 견해차로 합의가 결렬됐다. 그때 군인공제회가 대안으로 등장했다. 양측은 2002년 9월 협상을 개시했고, 11월 MOU를 체결했다. 이렇게 되살아난 금호타이어는 올해 2월 국내기업 최초로 런던과 서울에서 동시 상장했다.

 

상장주식은 신주 1800만주와 군인공제회 보유주식 749만주 등 모두 2549만주였다. 군인공제회는 동시에 구주 750만주를 미국 타이어 업체인 쿠퍼사(社)에 주당 1만4650원에 매각했다. 수익을 거둘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때 군인공제회는 또 다른 750만주 매각을 위해 금호측에 ‘우선매수권’을 부여했다. 시장에 팔기 전에 먼저 금호측의 매수 의사를 물어보겠다는 것.


이에 지난달 금호산업은 750만주에 대해 우선매수권을 주당 1만3600원에 행사했다. 결국 금호산업은 지분 32.14%를 가진 1대 주주로 2년여 만에 복귀했고, 군인공제회는 14.30%로 2대 주주로 내려갔다. 군인공제회는 총 1239억원의 시세차익에다, 2003~2004년의 배당수익 385억원을 합쳐 모두 1624억원을 벌었고 금호그룹은 소유권을 되찾았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매각은 성공보다는 실패와 국가경제 피폐화를 불러온 경우가 많았다. 이런 가운데 현재 매각 대상 기업의 시가 총액은 50조원을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자본이 이들 기업들을 인수할 수 있는 여유자금 규모는 20조원 남짓.

 

결국은 대규모 외국자본의 참여와 재벌기업의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지만, 과거 알짜기업 매각의 실패 사례를 평가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