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은 ‘인생 2막’, 절망을 극복한 웃음
의도하지 않은 ‘인생 2막’, 절망을 극복한 웃음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1.02.2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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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찾아온 실명…‘바닥까지 떨어진 내 삶’
장애를 받아들이고 가족과 일에 대한 사랑 느껴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었다. 수학여행을 가서 장기자랑 순서가 오면 각 반마다 빠지지 않고 남성 5인조 팀이 등장했다. 바로 ‘틴틴파이브’를 흉내내기 위해 올라온 친구들이었다. 개그와 댄스, 음악 등을 섞어 당시로는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인기를 누린 틴틴파이브의 멤버들은 각자 다양한 영역에서 방송활동을 계속하며 가끔씩 근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주로 보컬을 담당했던 개그맨 이동우의 소식은 한동안 접할 수 없었다. ‘이 사람 지금 뭐하지?’하고 궁금해질 무렵 그는 방송을 통해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병에 걸렸다고 공개했다. 연예인으로 살아온 지난날이 1막이라고 하면 2막의 삶을 살고 있다고 표현한 이동우에게 어떤 사연을 들을 수 있을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3개월 신혼에 찾아온 희귀 질환…현재는 실명 상태

이동우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 질환을 최초로 진단받았던 것은 2004년 봄이었다. 눈의 망막 세포가 퇴행하면서 바깥쪽의 시야가 점점 좁아지며 터널처럼 가운데 부분만 보이다가 결국 시력을 잃게 되는 병이다. 3개월차 신혼의 단꿈을 누릴 무렵 점점 야맹증이 심해지는 증상을 보였고 급기야 야간에 운전이 힘들 정도가 되자 병원을 찾았다.

모든 환자들이 그렇듯이 그도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야맹증에 좋은 약을 처방받으면 상태가 금방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원인이나 치료 방법도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얘기는 청천벽력 같았다.

충격으로 인해 공포에 질려 있다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정하게 되고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게 된 것에 대해 분노하던 시절을 이동우는 ‘바닥까지 떨어졌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숨을 쉬는 것만큼 눈을 뜨면 볼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 ‘앞으로 볼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어려웠다. 수년에 걸쳐 몸과 마음이 매우 피폐해진 시기였다고 한다.

현재 그는 완전한 실명 상태이다. 보통 정상인들은 ‘실명’이란 단어를 접하면 눈을 감은 것처럼 암흑천지인 ‘전맹’ 상태를 떠올리게 되지만,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정도의 시력, 시야가 10도 이내로 극단적으로 좁은 경우 등을 비롯해 의학적으로 실명의 정도는 다양하다. 이동우의 경우 광각 세포가 살아 있어 빛이 들어오는 한낮의 경우 사물의 윤곽을 정상에 비해 1/10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 이동우

“난 별다른 재주 없는 사람”…방송 일은 그에게 전부

대중들의 관심으로 살아가는 연예인답게 시각 장애를, 그것도 멀쩡히 비장애인으로 30년 넘게 살아오다가 중도에 맞게 된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은 사람들의 ‘관심의 시선’이었다고 이동우는 말했다.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외로움을 느끼게 되지만 연예인이라서 그런지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나서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잡아준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동우는 스스로를 ‘딱히 별다른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고 잘라 말했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개그맨을 연예계의 ‘멀티플레이어’로 각인시켰던 틴틴파이브의 멤버 출신이면서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방송 일을 너무 좋아했던 것은 물론이고, 방송 일 외에 다른 재주가 없다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병을 진단받고 더욱 막막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고 한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선 일이 끊어질까 두려운 나머지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심스레 활동을 계속했다. “생계때문이지요. 생계는 누구한테나 중요한 것이니까요”라고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시력은 점점 더 떨어져갔고 급기야 방송 프로듀서로부터 ‘어눌하다’, ‘어딘지 불편해 보인다’는 지적을 받는 경우가 잦아지자 조바심으로 미칠 지경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이동우는 자신의 장애를 방송에서 공개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시각장애인으로 일상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여주는가 하면 틴틴파이브 멤버들과 앨범을 발매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를 맡는가 하면, 얼마 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연극 ‘오픈 유어 아이즈’에서는 시각장애를 겪는 주인공 역을 맡아 호평 받기도 했다.

대본을 읽으며 진행해야 하는 라디오 방송은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둘이서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대본에 따른 진행은 다른 DJ에게 맡기고 난 주로 애드립으로 승부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증세를 숨기고 있을 때에는 어색해 보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서 늘 감사하다고 덧붙인다.

자신의 증세가 알려지게 될 경우 혹시라도 방송계에서 퇴출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스탭들을 비롯해 동료 연예인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도 말했다. 밖으로 나오게 되면 항상 따라다니며 손발이 돼 주는 매니저를 비롯해 특히 동료나 친구라기보다 거의 가족처럼 느껴지는 ‘틴틴파이브’의 멤버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5인 5색’이라는 수식이 적합하리만큼 각자의 장기와 캐릭터가 분명한 멤버들이었지만 앞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똑같은 반응을 보여서 얘기를 꺼낸 이동우 스스로가 신기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장애를 공개하고 방송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가슴 뭉클한 에피소드도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루게릭병을 앓는 한 남자분이 자신의 눈을 이동우에게 주고 싶다고 제안을 한 일이다. 그 얘기를 듣고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한다. 자신은 열 가지를 갖고 있다면 눈이 보이지 않는 것 하나만 불편할 따름인데, 전신을 움직일 수 없고 오직 눈이 보이는 것 하나만 정상인 분이 생면부지의 자신에게 그런 제안을 한 것에 대해 감격스러움을 넘어 한 차원 높은 경지의 감정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의학적으로 안구의 이식이 가능하지도 않고,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을 받을 수는 없지 않겠냐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이동우는 이후 그 분과 연락을 취해 지금도 가끔 만나며 가깝게 지내게 됐다고 미소 지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가족 가장 큰 힘…진짜 사랑 알게 돼


불치의 질환을 진단받고 ‘나락으로 떨어졌던 장애의 과정’을 겪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이동우는 단언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며 극단적인 분노를 표출하던 시절에도 늘 자신을 감싸던 것은 아내였다.

“아내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 이전에는 진짜 사랑에 대해선 몰랐어요. 사실 기쁠 때나 달콤한 시절을 함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선택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란 것은 인간의 최대 화두인데 진짜 사랑은 힘들고 고통스런 희생이 함께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안 하거나 혹은 못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런 아내가 청신경 종양 판정을 받으며 이동우에게 다시 한 번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닥치게 된다. 일종의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데다가, 그 수술이라는 것도 단지 생존을 위한 방편이지 어떤 후유증이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앞을 볼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던 당시에는 자살에 대해 자주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의 상황을 접하자 더 이상 자살할 기운조차 없었다. ‘죽을 힘으로 산다’는 말이 있듯이 혀를 깨물든 목을 매든, 자살하는 것도 힘이 필요한데 그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수술의 결과는 다행히 매우 좋아서 한쪽 청력에 장애가 왔지만 다른 후유증은 아직 없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언제 어떤 증상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평생을 조심하며 살아야 된다고 한다. 그에겐 간혹 의사들의 설명이 야속하게 들리기도 한다. 누구나 환자라면 ‘앞으로도 조심만 한다면 문제없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사람 심리지만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지만 후유증은 반드시 온다’는 얘기는 가시처럼 아프다.

하지만 두 부부는 현실에 낙담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 애썼다. 이동우는 “이미 상황이 이렇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 다가올 최악의 결과에 대해서도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있는 것에 오히려 감사한다”고 말했다. 대단치 않은 것처럼 말하지만 생각만 바꾼다고 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을까?

오히려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의 희망을 보려 노력하는 두 부부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올해 여섯 살이 된 외동딸 지우다. 12월에 태어나 만 네 살이고 한창 재롱으로 사랑받을 나이이다. 딸 자랑을 부탁하자 여느 아빠들처럼 “정말 예쁘죠”라며 헤벌쭉 웃는다.

이동우는 처음에는 절대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거기다 아내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더더욱 아이를 낳고 감당하는 일은 부담할 수 없는 일로 간주했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혹은 자신보다 훨씬 중증의 장애를 가졌고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도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려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

‘우리가 용기가 없는 일이 아닐까’라며 아내를 설득했고 마음속으로 바라던 바대로 뮤지컬 ‘애니’의 주인공 같은 예쁜 딸아이를 갖게 됐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라서 ‘아주 힘든 고비’는 넘은 셈이지만, 갓난아기를 두 부부가 돌보고 키우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내는 종양이 혹시라도 잘못 될까봐 절대 무거운 것을 들지 말아야 하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데다가 이동우 자신은 눈이 보이지 않으니 아기를 밟거나 깔고 앉는 일도 생겼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큰 탈 없이 잘 자랐고 아빠의 ‘끼’를 물려받았는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 주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혹시 지우 동생 계획은 없냐는 질문에 지우를 간신히 이만큼 키웠는데 둘째는 무리인 거 같다며 고개를 젓는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장애를 극복하고’라는 표현이 거슬렸는지 이동우가 정정해 줬다.

“저는 장애를 ‘극복’한 것이 아닙니다. 극복했다면 제가 병이 낫고, 눈을 떠야지요. 저는 그냥 장애를 받아들인 것뿐이에요.”

그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을 만나 나눴던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엄 대장도 수많은 산을 올랐지만 그 어떤 산도 정상을 ‘정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다못해 동네 뒷산을 올라도 매번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힘이 들게 마련이다. 힘들고 고통스런 과정은 정상을 밟았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는 산악인들의 말처럼 이동우도 장애가 찾아와 장애를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장애를 받아들인다’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수동적인 의미에서 체념하고 포기한다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삶 속에 수용하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과정이 바로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동우는 무엇보다도 시각장애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물론 밖은 두렵다. 여러 가지 위험 요소들도 많고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만 있으면 본인이 괴로운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곁을 지키는 가족들부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피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까운 곳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나 단체·기관 등이 어떤 게 있는지, 그곳에선 어떤 활동을 하며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마음의 벽을 헐고 세상과 자꾸 부대끼는 것이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이동우는 현재 시각장애인협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선천적 장애가 아닌 후천적 장애인으로서 그는 각종 장애인 복지 부문에 대해 아직 스스로의 입장을 확실히 정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다시 말해 장애인으로서 각종 편의나 복지에 대해선 반가운 마음도 있는 반면, 무조건 시혜적인 복지에 대해선 오히려 역차별인 것 같은 생각도 든다고 한다. 어쨌든 시각장애인이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하게 돕는 복지가 필요하지 무조건 발끝에 걸리는 불편함만 그때그때 해소해주는 식의 복지는 한도 끝도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연예인으로서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능한 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꿈’이라고 답했다. 최근 막 내린 연극 ‘오픈 유어 아이즈’의 경우, 전용 극장에서 상설 공연으로 앞으로도 계속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갖고 있다. 너무나도 서 보고 싶었던 연극 무대였을 뿐만 아니라, 남 얘기 같지 않은 내용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더욱 자신에게 의미가 크다고 한다.

고통스러웠던 순간, 암담했던 시절들에 대해서 묻고 많은 얘기를 들었음에도 인터뷰는 시종 비교적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방송을 통해 자신의 장애를 공개한 이후로 지팡이를 짚고 외출할 수 있어서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고 이동우는 껄껄 웃었다. 그는 답답하고 절망적이라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웃음을 되찾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티비 원더처럼…이라고 말하면 너무 과할까요?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