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빌딩은 용역노동자를 외면했다
63빌딩은 용역노동자를 외면했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1.02.2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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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경비 노조, “고용·단협 보장하라”…63시티, “업체 바뀌었으니 책임 없다”
‘한해’살이 용역노동자, 법적 보호망 없어 해마다 해고사태 반복

여의도 한 가운데 우뚝 솟은 63층의 황금색 빌딩은 한국을 소개하는 많은 영상에도 나타났듯이 한국 경제 성장의 표상이다. 지금은 국내에서 다섯 번째(층수로 계산, 가장 높은 층수의 건축물은 서울 양천구 목동 현대하이페리온과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높은 빌딩인 63빌딩의 정식명칭은 (주)한화63시티이다.

업무시설과 함께 전망대, 수족관, I MAX 영화관 등 다양한 부대시설로 방문객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아온 63빌딩이지만 방문객이나 입주사들에겐 잘 보이지 않는 화려함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쓸고, 닦고, 지켜줬던 청소·경비 업무 노동자들이 있었다. 굳이 홍익대 사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청소·경비·주차 용역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해가 갈수록 더하고 있는데 한국 경제 성장의 상징인 63빌딩에서도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참여와혁신>이 직접 찾아가 봤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63빌딩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63빌딩주경시설환경노조는 주차와 보안(경비) 업무 종사자 79명으로 구성돼 있다. 조합원들은 지난 2월 1일부터 63빌딩 지하주차장 한켠에 마련돼 있는 노조사무실과 안전보안실, 여직원 대기실 등을 밤낮으로 지키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촛불 서너 개로 어슴푸레 밝혀 놓고 몸을 녹이던 조합원들은 기자가 들어서자 피곤한 얼굴이지만 밝은 목소리로 하나둘씩 인사를 건넸다. 박상옥 63빌딩주경시설환경노조 위원장은 기자에게 확인시켜줄 서류 뭉치를 찾아 들고 “여긴 너무 어두우니 다시 밖으로 나갑시다”라고 권했다. 매일 이 어둠에서 몇 명이나 상주하고 있냐는 질문에 한 조합원은 “복용하는 약이 떨어졌든지 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사람만 잠시 나갔다 오고, 사실상 전 조합원이 숙식투쟁을 이어오고 있다”고 답했다.

잠시 풀렸던 날씨가 영하 6도로 내려갔던 지난 2월 9일에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63빌딩을 방문했기 때문에 전 조합원이 동문 앞 주차장입구에 모여 피켓팅을 전개했다. 노조 박래길 사무장은 “결국 원청인 한화63시티가 고용과 단협승계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노조 설립 이래 14년간 별다른 노사 갈등 없이 지내왔지만 최근 일련의 움직임은 노동조합 활동 자체를 봉쇄하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63빌딩은 1985년 첫 개관을 시작한 이래 신동아 그룹의 자회사인 (주)대생개발이 관리를 맡아왔다. 지난 1999년 그룹의 주축인 대한생명보험의 부실금융기관 지정 및 감자명령으로 예금보험공사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경영진이 교체돼 신동아 그룹이 해체됐다. 따라서 2000년에 (주)63시티 통합법인이 설립됐다가 이는 다시 2002년 한화그룹에 편입돼, 현재 63빌딩은 (주)한화63시티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주차와 보안 관리 업무는 그동안 대생개발과 대한생명보험의 자회사인 명우실업의 직원들에 의해 이루어지다가 (주)한화63시티의 설립 이후 아웃소싱이 진행됐다. (주)MPS가 1년, 대한제당의 계열사인 (주)티에스우인이 5년, (주)TK태경산업이 3년간 외주업체로 선정돼 주차 보안 관리 업무를 진행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 1월 초 한화63시티가 주차·보안 관리 용역입찰을 실시해 (주)하이파킹을 관리업체로 선정하면서부터다. 그간 용역업체가 교체되더라도 고용과 단협승계가 보장됐던 것과 달리 이를 인정하지 않고 기존 직원들 중 선별적 신규채용을 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노조는 이에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 연합노련

고용·단협 승계 두고 노조와 회사 첨예한 대립

노조는 1월 29일 총회를 열어 90% 찬성률로 파업을 가결하고 (주)하이파킹의 업무가 시작되는 2월 1일부터 전 조합원이 63빌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투쟁하기로 결의했다. 길게는 25년간 63빌딩에서 근무해 온 조합원들은 관리업체인 하이파킹과 원청인 한화63시티의 행보에 매우 분개하고 있다.

박상옥 위원장은 “10년 전 관리업체 아웃소싱이 진행될 당시, 업체가 바뀌더라도 고용과 단체협약의 승계가 보장된다는 조건 아래에서 노조도 이에 합의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하이파킹의 이광근 부사장은 “이전 계약업체인 TK태경산업과 합의한 부분은 하이파킹과 무관하다”며 “지난 11월부터 기존 직원들을 최대한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하고 채용공지를 한 뒤, 서신을 보내거나 만나서 취지를 설명하려 했으나 그걸 가지고 회유한다고 몰아세우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고 밝혔다.

노조는 전원 고용 보장과 호봉제의 현 임금 보전, 정년을 55세에서 57세로 연장한 단체협약의 승계를 요구하고 있으나 하이파킹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또한 노조는 고용노동부와 하이파킹, 한화63시티 4자가 참여하는 교섭 자리를 갖자고 제안한 반면, 하이파킹은 고용과 단협의 무조건 승계를 노조측에서 주장하는 와중에 더 이상의 교섭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이 부사장은 “2월 8일까지 채용기간이 만료됐지만 근무를 원하는 사람은 채용 의사가 있다”며 “소위 ‘사람장사’하는 용역업체가 아니니만큼 그런 부분에서 대화 채널은 열어 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주차나 보안 등 단순 관리 업무에 대해 호봉제를 적용해 근무년수에 따라 고임금을 받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덧붙였다.

그간 근무해온 조합원들은 현재 해고된 상태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비록 열쇠가 없어 보안초소 안에 들어가진 못하지만 점거농성을 지속하면서 평소의 근무 교대 순번에 따라 자체적으로 근무를 계속하고 있다.

ⓒ 연합노련

원청은 책임이 없나?

한편 노조는 원청업체인 한화63시티에 대해서도 압박의 수위를 높여갈 예정이다. 하이파킹이 최저가로 입찰에 참여해 낙찰 받게 된 과정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한화63시티 역시 조합원들의 고용과 단협 승계 보장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박 위원장은 “기존의 입찰액 평균보다 1억5천여만 원이나 적은 액수로 낙찰 받은 이면에 한화63시티와 하이파킹 사이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모종의 협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화63시티는 공식입장 발표를 통해 “협력업체 평가결과, 고객서비스 품질저하, 잦은 이직으로 인한 인력관리 전문성 결여, 고객 서비스마인드 부족 등의 이유로 TK태경산업이 관리를 담당하기 부적절하다고 판단됐다”며 “법적절차에 따라 1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28일 계약해지 통보를 하고, 1월 31일 계약만료를 대비해 1월 11일에는 새로운 협력업체 선정을 위한 공개 현장설명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또한 “입찰 참여 5개 업체 중 업체의 인력운용 및 교육계획, 제안 내용의 충실성, 입찰금액 등을 고려해 일체 경영진의 관여 없이 객관적인 평가기준에 의거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입찰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노조는 지난 2005년 진행됐던 용역업체 입찰 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고용과 단협 승계를 보장한다’는 부분이 입찰 조건으로 명시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입찰 설명회에선 이와 같은 내용이 조건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한화63시티측은 “이번 입찰 설명회에서 고용과 단협승계 조건은 없었으나, 낙찰 업체가 고용 보장을 할 수 있도록 ‘협조’는 해줬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협조’는 고용과 단협승계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이나 조건은 아니고 ‘그랬으면 한다’라는 정도의 입장을 밝힌 것이라는 게 한화63시티 측의 설명이다.

ⓒ 연합노련

현행법 사각지대 용역노동자…해마다 해고사태 반복

63빌딩에서 일어난 비정규 노동자들의 해고 사태는 지난 2월 20일 전원 고용승계를 합의해 극적으로 타결된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홍익대분회 사태와 매우 흡사하다.

홍익대의 경우, 지난해 12월 2일에 설립된 노동조합과 시설·청소·경비 부문의 용역업체인 향우종합관리, 인광엔지니어링 사이에 8일부터 24일까지 3차례의 임단협 교섭이 진행됐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또한 홍익대측과 두 업체의 용역계약 갱신 협상도 무위로 돌아가자 12월 31일부로 용역계약 기간이 만료됐고, 학교는 올해 1월 28일 시설부문의 백상기업, 2월 7일 청소부문의 아이비에스인더스트리, 2월 10일에 경비부문의 용진실업과 1년간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140명의 조합원을 비롯해 174명의 홍익대 용역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해고자로 전락했으며 노조는 1월 3일부터 홍익대 본관 사무처와 로비에서 교대로 철야농성을 지속하다 조합원 전원 고용승계, 하루 8시간·주5일제 실시, 노조 전임자 인정 등을 노사 간에 합의함으로서 극적으로 해결됐다.

한편 홍익대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말로 기존 청소 용역계약 기간이 만료된 한국교원대학교의 경우, 학교와 신규 용역업체 사이에 1월 1일 계약을 체결하면서 전체 직원 33명 중 노조에 가입한 15명이 해고됐다. 특히 해당 용역업체는 전체 조합원 17명 중, 명단이 아직 업체에 통보되지 않은 2명의 경우 재고용하기로 해 ‘노조를 겨냥한 해고’라는 의혹을 노동계로부터 받고 있다. 한국교원대학교노조 신성호 위원장은 “지난 12월 초에 조합원 명단을 통보했는데 당시 조합원이었던 15명은 모두 해고되고 그 이후에 가입한 2명은 재고용이 됐다”며 “이는 명백히 노조를 깨려는 표적 해고”라고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에 단순 업무가 반복되는 각 용역업체마다, 이와 같은 계약해지와 대량 해고는 연중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계약이 만료되는 등의 이유로 용역업체가 교체되는 경우 수년을 한 사업장에서 근무해 온 기존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여러 형태의 간접고용과 관련된 문제 중 그야말로 법의 사각지대라고 볼 수 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의 김형동 변호사는 “이와 같은 경우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상담을 해온 노조에 원청과 업무협조 합의서 등을 통해 고용 등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문건으로 마련하도록 컨설팅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도 여의치 않은 게, 조직률이 미미한 용역노동자들이 원청과 이와 같은 내용의 합의를 실제로 이끌어 내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와 같은 부분이 법적으로 시급히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저임금으로 직원을 고용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용역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막는 등, 용역 자체에 지금보다 폭 넓은 제한을 가하거나 특정 사업장에서 일정 기간 동안 근무하게 되는 경우 계약 만료 등으로 사용주가 바뀌더라도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 등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순 교수는 “용역업체 근로자들이 느끼는 문제점을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계약이 한시적이기 때문에 매번 갱신하는 과정에서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해당 근로자들의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것과, 임금·복지 등의 근로조건이 열악한 점”이라고 정리했다. 그중 근로조건과 관련된 부분이 사회 변화의 흐름에 맞춰 노사가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조정해 나갈 부분이라면 고용 불안정 문제는 제도적으로 한계를 지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특히 “현행법상 용역업체 변경시 근로자의 고용이 승계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이 있다든지, 노조가 결성된다든지 하는 불안 요소가 발생하는 경우 원청에서 이를 걸러내는 장치로 쓴다는 의구심이 든다”고도 주장했다. 제조업, 서비스업 등 산업 전 방위에서 다양한 형태의 아웃소싱 사용이 일반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매번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를 안고 사는 상황이나 다름없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고용 승계가 인정되는 사유나 요건을 최소화하더라도 승계 자체가 법적으로 검토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전향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영국의 영업양도법(TUPE)과 같은 사례를 참고할만 하다”고 밝혔다.

과거 영국에서의 고용계약법은 계약은 사용자와 피사용자간의 ‘개인적’인 것이므로 새로운 사용자가 등장하면 종전의 고용계약은 해지되며, 새로운 사용자는 근로자를 승계할 의무가 없고 근로자는 잔류할 의무가 없다고 하였다. 유럽공동체지침 상의 의무에 따라 1981년 제정된 TUPE(Transfer of Undertakings Protection of Employment)는 이러한 제도에 변화를 일으켰는데, 사용자의 변경이 있는 경우 근로자의 권리는 승계되고 해고로부터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현재 63빌딩주경시설관리노조는 고용과 단협의 조건 없는 승계를 주장하며 매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상옥 위원장이 “적어도 3개월간의 투쟁은 예상하고 있다”고 밝힌바와 같이 또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이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16일에는 한국노총 관광서비스노련 산하 한화63시티노조에서 중재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원청인 한화63시티와 용역업체 하이파킹, 63빌딩주경시설관리노조가 대화를 시도했으나 서로간의 입장차만 재확인하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