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방해죄, 불법파업일 때만 성립
업무방해죄, 불법파업일 때만 성립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03.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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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위력’으로 사업계속 의사 제압·혼란 땐 업무방해
민주노총,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헌법상 단체행동권 제한 않는 게 정의”

대법원이 예외적인 위력의 경우에만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여전히 헌법이 인정한 단체행동권을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제한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지난 17일 열린 상고심에서 2006년 철도파업과 관련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김영훈 전 철도노조 위원장(현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쟁의행위로서의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면서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비로소 그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가 위력에 해당하여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근로의 제공을 거부하여 사용자의 정상적인 업무운영을 저해하고 손해를 발생하게 한 행위가 당연히 위력에 해당함을 전제로 하여 노동관계 법령에 따른 정당한 쟁의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가 아닌 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기존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이를 변경한다”고 밝혔다.

즉, 기존의 판결에서는 파업이 당연히 업무방해에 해당된다는 전제 위에서 합법파업인 경우에는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반면, 이번 판결에서는 불법파업인 경우에만 업무방해죄를 적용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기존의 판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취지에 따라 대법원은 2006년 철도파업의 경우 중앙노동위원회가 구 노조법에 따라 직권중재를 결정해 쟁의행위가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이 파업을 강행함으로써 철도공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점을 인정했다.

단체행동권 제한 근거 될 수도

반면 박시환 대법관 등 5명의 대법관은 “쟁의행위로서의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파업이라 하더라도 그 실질은 근로자단체와 사용자 또는 사용자 단체 사이의 집단적 근로관계에서 근로자단체에 요구되는 의무를 불이행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며 “누군가의 의사를 제압할 만한 위력의 행사는 될 수 없다”고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박시환 대법관 등은 또 “단순 파업의 경우도 그것이 쟁의행위로서의 정당성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개별적 근로관계의 측면이나 집단적 근로관계의 측면에서 모두 근본적으로 근로자 측의 채무불이행과 다를 바 없으므로, 이를 위력의 개념에 포함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죄형법정주의의 관점에서 부당하다”며 “과연 어떠한 경우를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인지, 어느 범위까지를 심대한 혼란 또는 막대한 손해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인지 반드시 명백한 것은 아니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정당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쟁의행위에 대해서만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데 이어, 그동안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파업권을 제한했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18일 논평을 내고 “이번 판결은 업무방해죄는 예외적인 위력의 경우에만 파업권을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진전이 있다”면서도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지 않는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에 비해 우리의 현실은 매우 후진적”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이에 따라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헌법상 기본권인 파업권을 속박하지 않는 것이 정의”라면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파업권에 남용 적용되는 업무방해죄의 문제를 거듭 ILO에 제소할 것이며, 우리의 노동기본권이 최소한 선진적이고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그동안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던 관행에는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앞으로 있을 법원의 판결에서 이른바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여전히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단체행동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검찰이 파업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한다는 명목으로 합법파업에 대해서도 수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둠으로써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법원은 그동안 파업의 정당성을 극히 협소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가 단순히 기우는 아닐 가능성도 높다.

또 소수의견이기는 하지만 일부 대법관들이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의 적용은 상반된 이해관계를 갖는 노사관계에서 노동자 일방의 ‘채무이행(노동)을 형벌로 강제하는 것’으로서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법리해석을 놓고도 논란의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